잠실야구장 퇴근길, 정수빈이 또 그곳에 있다
어제 같은 오늘이다. 그곳에 또 정수빈(33·두산)이 있다.
잠실구장 야간경기를 마친 뒤 퇴근길. 선수 및 관계자 주차장과 팬들의 이동 경로가 맞닿은 한 지점에서 선수 한 명이 수 십 명의 팬들에게 하나하나 사인을 해주고 있다.
3루타로 결승타를 때린 지난 27일 잠실 NC전 이후에도 정수빈은 일상인 듯, 그곳에서 비슷한 수의 팬들과 마주하며 사인을 하고 있었다. 야구장 불도 하나씩 꺼지면서 주변마저 어두컴컴해지는 시간. 주차 구역에서의 시선으로는 선수 뒷모습만 희미하게 보인다. 혹여 다른 선수인가 다가서보면 또 정수빈이다.
잠실구장 관계자 주차구역은 넓지 않지만 아주 좁지도 않다. 팬들과 접촉이 부담스럽다면, 조금 더 안쪽에 주차해둘 수도 있다. 그러나 정수빈은 익숙한듯 팬들의 동선과 멀지 않은 곳에 주차를 한다. 퇴근길, 같은 장소에서 사인해주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는 이유다.
정수빈은 지난 28일 관련 얘기에 “사인해드리는 게 힘든지 잘 모르겠다. 야구장 찾아와주시고 이렇게 응원해주시는데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정수빈은 “경기하다 보면, 조금 피곤한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사인을 하다가 중간에 ‘다음에 해드리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대부분 팬분들이 잘 이해를 해주신다”고 말했다.
어쩌면 정수빈은 잠실구장에 깊이 녹아 있는 두산 팬덤에 가장 친숙한 선수이기도 하다. 2009년 프로 데뷔 뒤 2010년대로 접어들어 주축 외야수로 성장한 뒤 곱상한 외모에 재기발랄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잠실 아이돌’이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그렇게 자라난 정수빈은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는 마음에 인색함이 없을뿐더러 그 방법도 잘 아는 표정이다.
정수빈은 잠실구장 바깥 환경보다 그라운드 환경에 최적화된 선수이기도 하다. KBO리그에서 수비 범위 1, 2위를 다투는 중견수로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구장 외야를 안방처럼 편안하게 쓰고 있을 뿐 아니라 2루타성 타구를 3루타로 만드는 재주도 특출하다. 정수빈은 홈런보다 생산이 어렵다는 3루타를 통산 76개(2위)나 기록했다.
그래서 정수빈은 드러나는 기록 이상으로 두산에서 가치 있는 선수로도 평가돼왔다. 정수빈이 2020시즌 이후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 나온 뒤 지방 A구단 등이 적극 관심을 보이자 두산이 앞서 움직여 손을 뻗은 이유이기도 했다.
정수빈은 조만간 또 어느 날, 그곳에 서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왕이면 정수빈 스스로 경기 흐름을 가르는 멋진 3루타나 호수비를 관중석의 팬들에게 보여드리고 그곳에 서기를 바랄지 모른다. NC전을 승리로 이끈 지난 27일처럼.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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