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거침없이 강렬하게… 사진계를 이끈 예술가 '윌리엄 클라인'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 저널리스트 중 한 명인 '슈테판 클라인'(Stefan Klein, 1965년 독일). 우리 시대 최고의 논픽션 작가로 손꼽히는 그는 삶에서 우연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강력하다. 계몽주의자 헤르더는 우연을 무질서의 독재자로 보았으나, 영어권에서는 예부터 우연의 다정한 면모를 강조했다. 영어의 'CHANCE'라는 단어는 우연을 뜻하는 동시에 '기회' 또는 '행운'이라는 뜻을 품고 있으니 말이다." -슈테판 클라인의 저서 (우리가 운명이라고 불렀던 것들)-
슈테판 클라인의 우연처럼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미국, 1926~2022)에게는 사진이 상상 이상으로 강력하게 다가왔지 싶다. 그에게 사진은 기회이자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선구자적 시각 예술가이자 현대 사진의 거장인 윌리엄 클라인은 1926년 미국 뉴욕의 헝가리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예술 인생은 화가로부터 출발한다. 1947년 프랑스 파리의 국립미술학교(에콜 데 보자르)에서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 1881~1955)를 만났고 이것이 계기였다. 군 입대 전(18살)까지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을 드나들며 사진과 회화,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을 보며 안목을 키웠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기존의 예술에 대한 인식, 가치를 부정하며 새로운 개념을 추구하는 예술적 경향을 말한다. 전위예술(前衛藝術)이라고 한다.
청년 시절 윌리엄 클라인은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를 좋아했고 사진 분야에서는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미국, 1903~1975)를 특히 좋아했다. 워커 에반스는 단순함과 간결함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한 사진작가로 창고, 빌보드 간판, 포스터, 가게의 사람들 등 날것 그대로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워커 에반스의 사진 언어를 좋아했던 윌리엄 클라인. 50여 년 동안 화가, 사진가, 디자이너, 책 편집자, 집필가, 다큐멘터리 및 장편 영화 제작자까지 이력이 화려하다. 요즘으로 치면 예술계의 뛰어난 자아실현형 N잡러 아니었을까.
한마디로 전방위적(全方位的) 예술가인 윌리엄 클라인은 패션과 도시 거리의 사진 등 특정 분야에서 혁신에 가까운 시도를 했다. 그 시도는 1956년 뉴욕, 1959년 로마, 1964년 모스크바와 도쿄, 2002년 파리 등 세계를 무대로 펼쳐졌다.
"가장 날것의 스냅 샷을 찍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민족지(誌) 학자(ethnographer)라 여기고, 마치 인류학자가 줄루족(아프리카 원주민)을 대하듯 뉴요커들을 바라보았다." -윌리엄 클라인-
군중 속으로 들어간 윌리엄 클라인. 패션지 '보그(Vogue)'의 초청으로 8개월간 뉴욕에 머물며 작업했다. 가장 날것의 스냅 샷이란 그의 말처럼 풍경과 사람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담았고 피사체는 카메라의 정면을 자주 바라보고 있었다.
"나의 미학적 기준은 뉴욕 데일리 뉴스 신문이었다. 인상 사정없는 레이아웃과 요란한 헤드라인으로 난폭하고 무례하며 거칠고 잉크가 번져 있는 타블로이드 같은 사진집을 만들고 싶었으며, 이런 책이야말로 뉴욕에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윌리엄 클라인-
마침내 그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격식 없고 소란스러운 사진은 세상에 공개되며 큰 성공을 거둔다. 이를 모은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집('Life is Good & Good for you in New York : Trance Witness Revels')은 지금까지도 기념비적으로 여겨진다.
그런가 하면 패션(fashion)지와 작업한 사진도 윌리엄 클라인답다. 사실 당시 패션 사진작가들처럼 윌리엄 클라인도 패션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패션의 실험성과 패션지의 독자층은 매력적이었나 보다. 패션지 보그(Vogue)와 1955년부터 10년간 협업하며 잡지 전성시대를 이끄는데 일조한다. 여기에는 잡지 아트디렉터(Art Director)들의 역할도 컸다. 윌리엄 클라인이 예술을 펼치도록 지면을 먼저 내어주니 어찌 예술 세계를 구현 안 하겠는가.
이에 윌리엄 클라인은 패션모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카메라에 거리의 활기와 사건들을 담으며 두 세계 간의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 점차 사회적인 이슈를 반영하고 모델 주변인들의 얼굴을 지우는 등 패션 이미지 자체에 대한 메시지를 부각한다. 그야말로 패션지는 윌리엄 클라인의 또 다른 놀이터였다.
30여 년간 윌리엄 클라인과 협업한 큐레이터는 그를 이렇게 설명한다.
"클라인이 살던 시기는 카메라, 유성영화, 텔레비전에서 디지털 기술 등장까지 스틸 이미지와 활동사진 관련 수많은 발명이 이뤄졌다. 클라인은 대중을 위한 예술을 수용하고 대중을 겨냥해 활용한 1인이다." -라파엘 스토팽 큐레이터(Raphaëlle, 1978~)-
혁신적이고 비타협적인 스타일로 사진의 역사를 바꾼 예술가이자 현대 사진의 거장 윌리엄 클라인.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회고전이 진행 중이다. 지난 2015년부터 준비한 기획전이라고 한다. 195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까지의 회화, 디자인, 사진, 패션, 영화, 책 등 윌리엄 클라인의 작품 130여 점과 자료 40여 점을 볼 수 있다. 2022년 9월 윌리엄 클라인이 96세로 별세하며 세계 첫 유고전이 되었다. 윌리엄 클라인의 《DEAR FOLKS》 전시는 9월 17일까지이다. 장소는 뮤지엄한미 삼청(서울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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