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마 피게x마블x두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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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오크 콘셉트 ‘스파이더맨’ 투르비용
뜨거운 럭셔리
두바이는 모든 게 컸다. 차는 왕복 16차선의 거대한 도로를 달렸다. 아랍인으로 가득한 라스베이거스를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큰 도로를 빠져나와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최근 문을 연 초고급 호텔 아틀란티스였다. 이곳은 싱가포르의 마리나 베이 샌즈를 지은 쌍용건설의 최신 프로젝트라는 점으로도 유명하다. 도착해보니 마리나 베이 샌즈보다 한층 어렵게 지은 티가 났다. 건물 규모도 넓고 군데군데 구멍처럼 뚫어둔 곳도 많았다.
시계 이야기를 하기 전 장소와 호텔에 대해 적은 이유는 이 모두가 오데마 피게의 의도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오데마 피게 정도의 초고급 럭셔리 브랜드가 행사를 연다면 모든 것이 일맥상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왜 전 세계의 수많은 멋진 도시 중 두바이인가, 왜 두바이의 여러 호텔 중 신흥 고급 호텔 아틀란티스인가. 그나저나 시계는 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두바이에 도착한 5월 24일 밤까지 시계는 나를 포함한 프레스에게도 공개되지 않았다. 시계가 공개될 날은 그다음 날인 25일. 하루 남았다.
최신형 럭셔리
오데마 피게는 앞서 비슷한 행사를 했다. 블랙 팬서로. 코비드-19가 한창이던 2021년 4월 미국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로열 오크 콘셉트 ‘블랙 팬서’ 플라잉 투르비용 시계가 소개되었다. 42mm 티타늄 케이스에 플라잉 투르비용 무브먼트를 싣고, 정밀하게 조각한 블랙 팬서를 다이얼에 배치한 시계였다. 플라잉 투르비용은 블랙 팬서의 양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이 시계는 2백50개만 출시되었고, 더 호화롭게 케이스를 깎은 단 1개의 ‘유니크 피스’는 론칭 행사에서 경매로 판매했다. 유니크 피스가 낙찰된 가격은 5백2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58억원). 오데마 피게 시계 경매 역사상 최고액 기록이었다. 이때는 다른 시계까지 경매에 부쳐져 이날 경매의 총 수익은 6백65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74억원)에 육박했다. 이 금액은 퍼스트북과 아쇼카라는 비영리단체에 기부되었다.
이번 스파이더맨 시계 역시 그 협업의 연장선이었다. 일단 캐릭터가 변했다. 블랙 팬서에서 스파이더맨이 되었고, 무브먼트를 포함한 시계의 세부 요소 상당수가 해당 사양에 맞춰 조금씩 변했다. 그리고 이날도 경매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런 시계는 누가 살까? 어떤 사람이 참가할까? 오데마 피게는 왜 이런 시계를 만들었을까? 모두 근엄한 럭셔리를 원하는 시대에 왜 오데마 피게는 마블 같은 곳과 협업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곧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날 오후에 오데마 피게 CEO 프랑수아 앙리-베나미아스의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이 예정되어 있었다.
거침없는 럭셔리
CEO는 실적으로 증명한다. 프랑수아가 CEO로 재직한 10년 동안 오데마 피게의 매출은 3배 가까이 성장했다. 그런 CEO는 두바이 초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뭘 신고 있을까? 에어 조던 1 하이였다. 세상이 바뀌었다면서 “15년 전에는 이런 자리에선 모두 수트를 입고 있었어요!”라는 말을 하는 사람다웠다. 실제로 그 자리에 수트를 입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타이를 맨 사람은 딱 한 명 있었다. 나였다. 나는 그 자리가 끝난 후 방으로 돌아가 타이를 풀었다. 프랑수아는 스위트룸에서 프레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1시간 내내 거침없었다. 개인적인 생활부터 시계의 미래에 대한 견해까지. 그는 손동작이 컸고 목소리도 자주 커졌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의 프레스야말로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 같았다. 시계 출시 행사나 박람회를 다니다 보면 계속 마주치는 외국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도 이탈리아에서 온 베테랑 저널리스트를 보았다. 그런 옛날 사람들은 프랑수아의 종횡무진 이야기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질문 시간에 물었다. “그래서 지금 오데마 피게의 경쟁자는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프랑수아는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답했다. “시계 브랜드가 아닌, 다른 고가 경험 소비 영역이라 생각합니다.” 옛 시대의 저널리스트에게 보내는 오늘날의 대답이었다. 그 사이에는 팔로워가 몇만 명씩 있는 오늘날의 스타 시계 저널리스트가 있었다. 예를 들어 싱가포르의 시계 잡지 <레볼루션> 발행인이자 인플루언서인 웨이 코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오늘날의 시계 업계였다.
프랑수아가 말만 앞선 건 아니었다. 그는 현대 사회에 대한 나름의 가설과 통찰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스파이더맨 협업을 비롯해 남다른 행보를 보이는 근거였으며, 이 모든 세세한 의사결정은 그의 희망 사항과 맞닿아 있었다. 그 희망 사항은 간단했다. 시계가 계속 쿨해 보이는 것. 그를 위해 마블과 협업한다는 것이었다. 마블 캐릭터와 만든 호화로운 시계 때문에 아이들도 오데마 피게를 알게 되니까. 그는 오늘날 시계 산업이 처한 최대의 잠재 위기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 위기란 사람들이 손목시계에 흥미를 잃는 것이며,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고급 손목시계는 더 넓은 손님이 있는 세상으로 나가야 했다.
그래서 오데마 피게는 힙합 뮤지션과 적극적으로 소통했다. 제이-Z와 협업했다. 프랑수아는 CEO 집무실에 아직도 <파이낸셜 타임스> 기사를 걸어둔다고 했다. 그 기사란 오데마 피게와 제이-Z가 협업했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겁니다”라고 프랑수아는 말했다. 고급 시계는 부자들만 살 수 있는 물건이니 결국 부자 곁으로 가야 하고, 오데마 피게는 제대로 방향을 잡은 셈이었다. 새로운 시대의 부자(힙합 음악인)와 미래에 부자가 될 사람들(어린이)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우리는 진지한 브랜드예요. 그러나 엄숙하게 굴지는 않습니다.” 프랑수아는 21세기 오데마 피게의 방향성을 이렇게 간단한 말로 정리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진지하지만 엄숙하지 않은 오데마 피게의 면모를 볼 시간이 왔다.
프랑수아는 자신이 차고 있던 로열 오크 스파이더맨을 보여주었다. 그의 말대로였다. 세공 기술이 확실하다면 무엇을 세공하는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42mm 케이스 안에 새겨진 스파이더맨 조각이 그 증거였다. 스파이더맨의 모습은 놀랄 만큼 높은 완성도로 제작되었다. 스파이더맨의 빨간 상의와 파란 하의와 빨간 부츠, 빨간 상의와 파란 하의의 소재 차이, 이런 것들이 모두 아주 정교하게 제작되었다. 시계 무브먼트의 뼈대만 남긴 오픈워크 무브먼트 위에 스파이더맨 조각을 얹었기 때문에 실제로 스파이더맨이 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좋아할 시계는 아닐지 몰라도, 누군가는 분명히 열광할 시계였다. 누가 봐도 고급품임을 기꺼이 인정할 만큼 각 부위의 완성도가 높았다. 스파이더맨 조각을 채색하는 데만 50시간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럭셔리의 축제
경매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날은 경매 품목이 총 3개 올라왔다. 1960년대의 빈티지 마블 만화책, 곧 새로 문을 열 오데마 피게 LA 부티크용 부티크 에디션 시계, 마지막으로 나온 게 스파이더맨 시계의 온리 워치 버전이었다. 2백50개 한정판으로 출시될 보통 시계는 스파이더맨이 빨간색, 파란색 옷을 입은 반면 온리 워치는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다. 이 3가지 현대 사회의 보물이 낙찰된 가격 총액은 무려 8백50만 달러. 현재 한화 기준 1백억원이 넘는 돈이 두 시간 만에 모였다. 럭셔리 브랜드가 충성 고객을 만나자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오데마 피게와 경매에 참가한 세계의 VIP 역시 축제 분위기였다.
축제 분위기는 경매가 끝난 뒤 저녁 식사에서도 이어졌다. 호화로움의 수준도 대단했다. 미쉐린 3스타 셰프가 모든 코스를 진행했다. 식사 도중 프랑수아가 가운데에 서더니 마이크를 잡았다. “블랙 팬서 시계를 차고 온 사람들 모여요! 사진을 찍읍시다!” 2백50개만 출시된 그 시계를 차고 온 사람이 놀랍게도 그 자리에만 십수 명은 있었다. 그들은 다 같이 모여서 크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프랑수아의 미디어 라운드 테이블이 있던 날 웨이 코는 바로 자신의 계정에 프랑수아를 칭찬하고 둘 사이의 우정을 자랑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그 게시물에 어떤 사람이 이런 답글을 달았다. “그(프랑수아)는 오데마 피게를 시계 브랜드 이상으로 변모시켰다. 오데마 피게는 이제 일종의 (애호가) 클럽이 되었다.” 그 말대로였다. 오늘날 럭셔리 시계 브랜드는 충성스러운 고객이자 열렬한 친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되어야 했다. 오데마 피게가 만들어내는 초고급 한정 시계는 같은 취미/가치관/미감을 공유하는 클럽 멤버의 전용 아이템 같은 것이었으며, 그게 오늘날의 럭셔리였다. 나는 두바이에서 오늘날의 럭셔리를 본 게 확실했다.
시계의 화제성과 거액의 낙찰 금액만큼이나 어디에 왜 기부하는지도 중요하다. 오데마 피게는 2021년 블랙 팬서 시계 경매에 이어 이번 경매의 수익금은 퍼스트북과 아쇼카에 기부한다. 오데마 피게 재단은 교육 형평성 증진을 위해 고안된 이니셔티브 ‘변화를 위한 시간: 꿈꾸고, 행동하고, 세계를 변화시키다’를 이끌고 있다. 오데마 피게 CEO 프랑수아 앙리-베나미아스는 “마블과의 두 번째 협업을 위해 우리는 마블 세계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슈퍼히어로 중 하나인 스파이더맨에게 찬사를 표하고 싶었다. 스파이더맨은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번 행사를 기념하며 우리의 현실 속 영웅인 젊은이가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힘을 실어주는 퍼스트북과 아쇼카의 활동에 대한 오데마 피게의 헌신을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어 기쁘다”라고 말했다.
Editor : 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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