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도, 퇴직금도 사치"…필리핀 가사도우미의 현실[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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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6개월 동안 한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필리핀 국적의 젬마 바우티스타(Gemma Bautista·51)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그가 싱가포르·홍콩에서 일하던 때와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가사도우미 처우는 문화적 요소뿐 아니라 임금 부분에서도 훨씬 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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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계약서 안쓰고 복지제도 배제 '악용'
"韓, 외국인 가사도우미 문화 보편화 될 필요"
"거주지 마련, 보너스 등 명확한 근무조건 우선"
[이데일리 조민정 기자 김영은 수습기자] “응? 젬마, 우리 계약서 안 썼잖아. 퇴직금이라니?”
5년 6개월 동안 한 가정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했던 필리핀 국적의 젬마 바우티스타(Gemma Bautista·51)는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멍해졌다. 일을 그만두면서 퇴직금을 요청했더니 고용주가 너무 당당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데오 근처에서 거주하던 고용주 A씨는 변호사 출신으로 누구보다 법에 대해 잘 알고 있었지만, 젬마와 일부러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젬마는 “변호사라서 당연히 믿고 계약서도 안 썼는데 완전히 속았다”며 “그 말을 듣고 집에 와서 펑펑 울었다. 고소를 하려고 보니 돈도 너무 많이 들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서울시와 협조해 올해 하반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중국동포(조선족)로 제한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적으로 확대하고 저임금을 적용해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강도를 줄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단 취지다.
젬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싼값에 쓰는’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싱가포르·홍콩에서 일하던 때와 비교하면 현재 한국의 가사도우미 처우는 문화적 요소뿐 아니라 임금 부분에서도 훨씬 낫기 때문이다. 1970년대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한 싱가포르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임금을 본국 수준에 맞추고 있고, 홍콩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최저임금을 내국인과 다르게 책정한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처음 가사도우미로 근무했을 때 시급이 너무 낮아서 생활이 어려웠는데 한국은 그 정도는 아니라 지금 급여와 업무에 매우 만족한다”며 “홍콩은 대가족인 데다 차별도 심하고 영어도 통하지 않아 일할 때 근무 강도가 높은데 한국인들은 영어도 기본적으로 쓰고 핵가족이라 관리 범위가 적은 편이라 선호도도 높다. 한국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문화가 정착한다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늘리고 문화를 정착시키기 전에 제대로 된 처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국적을 가진 자신도 계약서를 쓰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데 제도 개선 없이 무조건 도입만 한다면 ‘을’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비자 문제도 있어서 연장하거나 재발급 받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라며 “함께 거주하지 않는 가사도우미에겐 숙식을 해결할 공간 마련이나 전기세 등 공과금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우리도 명절이나 주말엔 쉬거나 보너스를 받고 싶은데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이라며 “불공정한 처우를 개선해나가야 하는데 급여를 지금보다 더 줄인다는 건 말이 안된다”고 했다.
조민정 (jju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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