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방한 베르베르 “한국 독자는 미래지향적...차기작은 이순신 장군에 영감받아”

김용출 2023. 6. 29.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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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작가 베르베르 9번째 방한
신작 ‘꿀벌…’ 출간기념 4년 만에
“마치 저의 집에 와 있는것 같아
30년간 한결같이 미래 얘기 다뤄
차기작 이순신에 영감받아 집필”

“프랑스 독자들은 과거에 대한 노스탤지아와 집착이 굉장히 강한 반면, 한국 독자들은 미래 지향적인 것을 추구하고 미래에 굉장히 관심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가 낳고 한국이 기른 작가’로 불리는 베르나르 베르베르(62)는 28일 “맨처음 책을 쓰고 나서 프랑스에서 사인회를 했을 때 독자가 아무도 오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제 책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배경엔 한국 독자들이 있다”며 한국과 한국 독자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다시 드러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8일 데뷔 30주년 및 신작 장편 소설 ‘꿀벌의 예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을 찾아온 취재진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최상수 기자
자신의 30번째 책인 『꿀벌의 예언』 출간 기념으로 내한한 베르베르는 이날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일이 아닌 즐거움”이라거나 “마치 저의 집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며 4년 만이자 9번째 방한 소감을 밝혔다.

올해 한국 독자를 만난 지 30년이 되는 그는 한국에서 유독 큰 인기를 누린 작가다. 국내에서 처음 출간된 『개미』가 외국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80만부가 판매된 이래 국내에서 펴내는 신간마다 한 번도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하여 한국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바탕으로 30년 간 30종의 작품을 썼고, 30개의 언어로 번역이 돼 3500만명의 독자를 확보할 수 있었다.

신작 『꿀벌의 예언』은 꿀벌을 소재로 했다. “꿀벌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순간 인간에게 남은 시간은 4년뿐”이라는 아인슈타인의 말로 시작하는 책은 꿀벌이 사라지고 인류 멸종의 위기가 닥친 30년 뒤의 지구를 구하기 위해 주인공 르네가 고대의 예언서 <꿀벌의 예언>을 찾아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펼치는 모험 이야기다.

“여왕벌이 내는 일종의 소리를 들었을 때, 굉장히 놀라웠습니다. 일종의 돌고래 소리 비슷한 큰 소리가 나는데, 그것을 안 순간부터 꿀벌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조사를 하다 보니 살충제 때문에 벌들이 멸종 위기에 처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지요. 꿀벌이 인간에게 굉장히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베르베르는 지난 30년간 한결같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회고했다. 그는 “작가라는 직업이 앞으로 미래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때문에 현황이나 뉴스에 글쓰기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3000만부를 판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문학상과는 인연이 없다. 그는 스스로를 “체제 밖의 작가”라고 규정했다. “출판사에서도 문학상을 추구하든 대중을 추구하든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문학상 수상작은 사실 독자들이 구매는 하지만 집에서 잘 읽지 않잖아요. 저는 그게 문학상의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유일한 관심사는 대중에게 다가서는 거예요. 특히 젊은 대중들에게요.”

그는 그러면서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리를 찾아야 한다”며 “제 자리는 프랑스와 한국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순이 넘어서도 피라미드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그는 지난 30년간 일년 평균 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한국 영화를 보고 자주 한국 식당을 찾는다는 베르베르는 이날 한국을 “영웅적인 국가”라고 극찬했다. “한국의 주변국들이 굉장히 침략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국가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대들과 이웃들 사이에서 항상 균형을 유지해야 하죠. 만약 프랑스 주변국들이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이라면 프랑스는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것입니다. 한국은 어려운 지정학적 조건에도 특유의 차분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아주 큰 장점입니다. 한국 역사를 보면, 한국의 문명이라는 것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기적과도 느껴집니다.”

현재 집필 중인 차기작 『왕비의 대각선』은 이순신 장군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순신이라는 한 인물의 이야기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에 와서 고유의 문화를 발견하고 에너지를 발견하는 건 즐거움이자 놀라운 경험”이라며 차기작 구상의 일단을 전했다.

지난 21일 프랑스 파리에서 가진 윤석열 대통령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윤 대통령이 인공지능(AI) 규제를 위한 국제기구 설치를 제안한 것에 대해 “원자력이 전기를 생성하기도 하지만 핵폭탄을 만들 수도 있듯이 AI도 최후에는 위협이 될 수 있다”며 “향후 위험할 소지가 있는 도구에 대한 규제를 생각한 그의 결단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AI가 창작자에게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미래의 것을 다루는 게 소설가라면, AI는 기존에 존재하는 지식 안에서만 작동한다”며 “AI가 이미 존재하는 『개미』의 후속작을 쓸 수는 있겠지만, 나는 주제도 문체도 전혀 다른 새로운 작품을 쓸 것”이라고 지적했다.

“AI가 발달할수록 우리는 더 창의적으로 변할 겁니다. 모방하는 작가는 점점 자리를 잃게 되겠죠. 모든 작가가 조금 더 과감하고 독창적으로 작품을 써야 할 것이고 SF 장르에서는 특히 그것이 더 유리하게 작용할 거라고 봐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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