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센 ‘친중’ 목적은 장남에 정권 이양[가깝고도 먼 아세안](13)

2023. 6. 29.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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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언급한 대로 중국은 고속도로, 정유공장, 발전소부터 해군기지 정비와 군사 목적이 의심되는 공항건설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캄보디아를 장악하고 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적극적인 친중 행보 배경에는 첫째 아들 훈마넷에게로의 정권 이양이 있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 / VOA 캄보디아판



최고 성적의 국제대회 개최는 총선용 

프놈펜 동남아시안게임 주경기장 건립에서부터 중국 원정 특별 훈련을 거쳐 국제대회 참가 사상 최대 성적을 거둔 캄보디아의 선전(지난 5월 19일 폐막한 제32회 동남아시안게임)은 오는 7월에 있을 캄보디아 총선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초의 성공적인 국제대회 개최와 캄보디아의 사상 최고 성적은 정부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정부는 질서유지를 통한 원활한 대회 운영이라는 명분으로 한 달 동안 전국의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휴교령을 내렸다. 여기에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까지 모든 경기를 무료 관람하게 했다. 해외 TV 중계료에 경기에 참가하는 외국 선수단의 교통편, 숙박비와 식비까지 모두 무상으로 제공했다. 훈센이 통 큰 세계적인 지도자임을 보여주려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이런 선심은 그러나 1인당 GDP 1765달러로 세계 최빈국인 캄보디아로선 상당한 무리수였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경제적으로 뒷받침해준 곳이 중국이다.

캄보디아는 다수당에서 총리가 선출되는 의원내각제 국가다. 2013년 총선 당시 의석 123석 중 훈센이 이끄는 캄보디아 인민당(CPP)이 68석을 획득해 간신히 과반을 유지했다. 30년이 넘는 철권통치에 관권 선거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도 야당의 선전은 훈센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정권교체 여론이 형성되자 다음 선거를 장담할 수 없던 훈센이 정치 공작을 단행하기 시작했다는 의심마저 나오고 있다. 야당의 강력한 차기 총리 후보였던 삼랭시 대표는 2015년 ‘비방죄’로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지금도 프랑스에서 망명 중이다. 그럼에도 2017년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44%의 위협적인 득표를 하자 야당 탄압은 더욱 거세어졌다. 야당 의원 절반 이상이 의원직을 잃거나 도망치듯 해외로 빠져나갔다. 2017년 11월 야당 CNPR은 ‘외부 세력에 의한 정부 전복 혐의’로 캄보디아 대법원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소속 정치인 118명은 5년간 정치 활동을 금지당했다.

훈센 총리는 불법 선거와 야당 탄압을 우려하는 캄보디아 주재 서방 대사들에게 ‘주권 모독’이라고 반발한다. 캄보디아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 EU, 일본이 이러한 정치 탄압에 수입 규제 보이콧 움직임을 보이자 훈센은 적극적으로 친중 행보를 보이고 있다.

2세 세습을 위한 2023년 총선 

2021년 12월 훈센의 첫째 아들이자 캄보디아 왕립육군사령관인 훈마넷은 만장일치로 집권 여당의 차기 총리 후보로 추대됐다. 경쟁력 있는 야당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해 2023년 총선은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가 예상된다. 훈마넷이 언제든지 총리가 될 수 있어 본격적인 2세 세습 정치로의 승계 준비를 마친 셈이다. 1977년생 훈마넷의 이력은 화려하다. 캄보디아인 최초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에 뉴욕대학 경제학 석사와 영국 보리스톨대학 경제학 박사를 받은 엘리트다. 철권통치를 위해 반드시 장악해야 할 군 권력을 위해 일찌감치 육군에 입대한 후 초고속 승진으로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일각에서는 강력한 군 권력과 해외 명문대학 경제학 박사 경력을 바탕으로 캄보디아를 개혁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지일 뿐 야당 탄압에 앞장선 군 정보기관의 움직임에 훈마넷이 일정 부분 관여하지 않았겠냐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높다.

훈센 캄보디아 총리의 아들 훈마넷 / VOA 캄보디아판



캄보디아와 중국의 군사 협력은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캄보디아를 장악한 공산당 무장조직 크메르루주의 폴 포트는 캄보디아인 200만명을 학살한 극악한 인물이었다. 이 폴 포트 정권에 탱크와 무기를 지원한 곳이 중국이다. 호주 국립보안대학의 압둘 아만 야콥은 2023년 3월, 이스트 아시안 포럼(East Asian Forum)에서 1983년 2월 기밀 해제된 CIA 문서를 근거로 중국이 폴 포트에 T-54, T-63 탱크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지원하며 베트남 침공을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폴 포트가 수년간 국지전 형태로 베트남을 공격하고 베트남인들을 살해하자 1978년 12월 베트남은 10만의 군사로 캄보디아를 공격해 2주 만에 프놈펜을 점령한다. 이에 1979년 2월 베트남의 캄보디아 점령을 빌미로 중국군 최정예 부대 20만명이 베트남 북부 지역을 침공했다. 이들은 한 달 만에 패배하고 철수했다. 베트남군은 프랑스, 미국과의 오랜 전쟁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 데다 미군이 버리고 간 최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기에 한국전쟁 이후 전투 경험이 없고 구식 무기를 갖추고 있던 중국군은 베트남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베트남과 오랜 원한이 있는 중국과 캄보디아의 군사 협력이 재개되며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이에 군사적 긴장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2010년 중국은 캄보디아에 각종 소총과 기관총을 포함한 군복 5만 벌을 제공하며 군용트럭 257대를 지원했다. 2012년에는 캄보디아 특수부대가 중국에서 훈련했고, 2013년에는 중국제 Z-9 다목적 헬리콥터도 무상 제공했다. 중국과 캄보디아의 다양한 합동군사훈련도 진행 중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지금 중국의 캄보디아 해군기지 장악에 크게 반발하는 미국이 50년 전 중국과 함께 폴 포트의 캄보디아를 지원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0만명의 자국민을 죽인 폴 포트 정권만이 합법적인 정부라고 옹호했다. 게다가 중국이 베트남을 침공한 1979년 2월은 미국과 중국이 수교한 1979년 1월 1일 직후였다. 중국의 베트남 침공에 미국과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건 이미 알려진 역사적 비밀이다.

베트남이 어느 특정 국가와도 군사동맹을 맺지 않고 모호한 입장의 외교전술을 펼치는 건, 적과 동지가 언제든지 뒤바뀌는 냉엄한 외교 상황을 익히 잘 알아서일 것이다. 베트남의 힘으로 킬링 필드의 폴 포트 정권을 몰아내고 38년 철권통치 중인 훈센이 베트남을 등지는 모습이나, 당장이라도 중국과 전쟁을 할 것 같던 미국이 어느새 중국에 손을 내미는 상황을 보며 국제정치와 외교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호찌민 | 유영국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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