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정의’가 판타지와 만날 때[이주영의 연뮤 덕질기](5)

2023. 6. 29.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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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
뮤지컬 / 오디컴퍼니 제공



베스트셀러 만화를 뮤지컬로 제작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 탄탄한 원작과 팬덤은 흥행의 지름길이지만 줄거리는 물론이고 이미지의 세세한 부분까지 대중에게 각인돼 있어 창의적인 변주가 쉽지 않다. 판타지 장르의 경우 라이브 무대 구현 자체가 더 큰 도전이다.

사신(死神)이 장난삼아 인간계에 떨어뜨린 데스노트(death note)를 주운 야가미 라이토의 독단적 정의 구현과 이를 저지하는 탐정 엘과의 대결을 다룬 <데스노트>는 이런 한계를 거듭 극복한 작품이다. 영화와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으로 제작돼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데스노트’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름이 적히면 죽는다(혹은 어떤 일이나 자리에서 낙마한다)”는 의미의 관용적 표현으로 쓰일 정도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2015년 일본 초연 직후 같은 해 한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시작했다. 일본 오리지널 무대는 원작의 분위기를 그대로 계승한 암울하고 미니멀한 미장센의 치밀한 심리전이다. 대형 구조물보다는 원작의 캐릭터를 살린 분장과 의상, 정의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내세우는 상징적인 넘버들에 정적인 군무를 곁들였다.

2022년 논레플리카(non-replica·라이선스 작품이지만 수정 및 각색 가능) 버전의 한국 오리지널 프로덕션으로 환골탈태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초연과 같은 서사지만 다른 이미지로 수용됐다. 가장 큰 변화는 뮤지컬 <데스노트> 공연장에서 사라진 복잡한 조명기기들. 대신 무대 위와 바닥, 양쪽 벽면 등 총 4면을 1380장의 LED 패널로 빼곡히 둘렀다. 배우들도, 중소 크기의 소품들도 이 LED 패널 위에 배치돼 연기하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무대가 회전하든 갈라지든 파열하든 모든 전환은 LED 패널 위에 영상예술로 구현된다. 멀리서 보면 가상스튜디오에서 홀로그램 배우들이 연기하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죽음의 신들이 토로하는 사신계의 공허함이나 데스노트를 인간계에 떨어뜨리는 장면, 정의에 대한 라이토와 엘, 경찰 등의 입장차가 드러나는 공간 디자인 등은 새로운 프로덕션으로 한층 더 명확해져 호평받는 장면들이다.

LED 무대로 재해석된 뮤지컬 <데스노트>는 원작이 던지는 주된 질문이자 주요 넘버인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동시대 창작자들의 답변이기도 하다. 극중 라이토가 주장하는 ‘나만의 정의’는 모두가 공감하는 정의는 과연 무엇인지를 관객들에게 되묻는다. 미니멀한 과거 프로덕션에서 화려하고 명확한 영상예술로 재탄생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수백명 제작진이 수많은 큐사인을 기반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입장을 조율한 결과물이다. 모두가 동의하고 정의로 거듭날 때 무능한 법이 비로소 제 기능을 찾듯이 말이다.

2023. 6. 30.~7. 16. 계명아트센터

이주영 문화칼럼니스트·영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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