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야비야] 한계점 온 불체포권
與 110명 포기 서약-野 미온적
구차하게 토 달지 말고 퇴출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이슈가 뜨겁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선거 때 단골메뉴로 등장한 문제였으며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 다수가 이에 서약한 단계다. '돈봉투 의혹' 관련 의원들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이 특권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지난 주 국회 연설을 통해 불체포특권 포기를 깜짝 선언했다.
분위기는 물살을 탄 형국이다. 여당은 특권 포기 서약에 110명 참여 기록을 썼고 민주당에서도 당혁신위원회가 국회의원 전원에게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이후 국회로 넘어오는 체포동의안에 대해서도 가결 당론 채택을 요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수석대변인 반응은 지난 26일 나왔다. 체포동의안 부결을 위한 임시회를 열지 않겠다고 했으며 회기중의 체포동의안의 경우엔 당론으로 부결을 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포장에 비해 알맹이 빈약이 확연하다.
현행범이 아닌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회 동의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불체포특권은 헌법적 권리이다. 여기서 중요 키워드는 '국회 동의'라는 네 글자다. 국회 동의 여부에 따라 체포·구금이 갈릴 수 있다는 얘기인 까닭이다. 문제는 국회동의률이 현저히 낮은 국회 현실에 있다. 최근 민주당에 적을 두거나 두었던 인사들의 체포동의안이 연속 부결될 것이 방증한다. 최대 수혜자인 민주당은 거대 의석을 자랑하는 정당이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민주당의 방탄국회를 뚫기가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불체포특권이 오·남용되는 현실은 국민 법감정에 배치된다. 헌법적 권리라는 논리, 그리고 이를 헌법 조항에 명문화한 배경이나 취지 등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이 특권이 편의적으로 활용되는 것만으로도 설 땅 없는 시대착오적 기득권이며 한계점에 다다랐다. 보통의 선량한 국민은 체포와 구금을 두려워할 일이 없다. 만약 그런 요건을 구성하는 중한 범죄를 저지르면 누구든지 수사 단계의 피의자 신분이나 기소된 후 피의자 신분일 때를 불문하고 감수해야 한다.
이 당연한 원칙이 국회의원은 비켜가도록 돼 있다. 최상위법 규정에 근거하고 있지만 현역 의원이 범죄의 중요성에도 불구, 그 뒤에 숨어 드는 모습은 구차하다. 다른 선출직 공무원과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권한 과잉으로 비친다. 대전시장의 경우 대전시 전역이 단일 선거구인 반면, 국회의원 선거구는 7곳으로 나뉜다. 제일 큰 경기도엔 국회의원 의석수가 59곳에 이른다. 선거 구역 크기와 유권자 규모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데도 광역단체장들에겐 체포·구금되지 않을 사법적 장치 따위기 없다. 입법부 본령이자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과 단순 대비하할 성질의 것이 아니긴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국회의원 방어권이 압도적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불체포특권은 그냥 내버려 두면 화근이나 논란이 될 일이 없다. 헌법 44조에 명문 조항으로만 있으면 탈이 날 것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 가부를 놓고 난리 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게 상책이며 그러면 불체포특권은 스스로 활성화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불체포특권을 자꾸 소환하는 주체가 배타적 권한을 누리기 위해 체포동의안을 무력화시키는 정치권이다. 정치자금법, 선거법, 배임, 수뢰, 이해충돌 등이 의심되는 정치인이 여전한 현실이어서다. 그중 사전영장 청구 대상이 두루 섞여있어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해야 하는데 선택적 체포동의안 부결 벽을 넘지 못하기 일쑤다.
이는 불합리하고 공정의 외양과도 거리가 멀다. 주권자인 국민 눈높이와도 충돌하고 갈등하는 현실에서 일과성 이슈로 넘어가면 안되고 국회의원 기득권에서 퇴출되는 정도에 이르러야 맞다. 제도가 좋아도 토양이 안 맞으면 귤이 탱자로 변한다는 고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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