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시간을 얼렸다” 장기 전체 냉동 후 녹여 이식 첫 성공
냉동 중 얼음 형성 막고 90초만에 급속 해동
냉동 은행 생기면 이식용 장기 부족도 해결
”돼지 신장 실험도 성공, 5년 내 인간 적용”
영화에는 수십 년 세월을 동면(冬眠)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40여 년 전 에일리언이나 최근 나온 패신저스에서도 우주인은 늘 캡슐 속에 냉동된 상태로 잠을 자면서 우주여행을 했다. 마블의 영웅인 캡틴 아메리카는 1940년대 지구에서 동면(冬眠)에 들어갔다가 70년 만에 깨어나기도 했다.
잠시 잠든 것 같은데 깨어나 보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면 얼마나 놀라울까. 영화가 그린 미래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과학자들이 처음으로 동물의 신장을 얼렸다가 한참 뒤에 다시 녹여 소생시켰다. 지금까지 수정란까지만 냉동보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엄청난 발전이다.
냉동 보관 연구가 발전하면 당장 만성적인 이식용 장기(臟器)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지금은 장기를 꺼내 환자에게 이식하기까지 몇 시간 여유밖에 없지만, 장기 냉동과 해동이 자유로워지면 시간과 장소 제약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식품에 적용되면 엄청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동면 우주여행의 꿈도 가까워질 수 있다.
◇수정란 넘어 장기 전체 첫 냉동 보존 성공
미국 미네소타대 기계공학과의 존 비숍(John Bischof) 교수와 의대 에릭 핑거(Erik Finger) 교수 연구진은 지난 9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험용 흰쥐의 신장을 100일까지 얼렸다가 해동해 다른 쥐에 이식했다고 밝혔다. 이식 수술을 한 지 45분 뒤 소변이 나와 신장 기능이 정상으로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사이언스지는 최근 특집 기사에서 “냉동으로 시간이 멈췄다(frozen in time)”며 “과학자들이 조직과 장기에 이어 생체 전체를 얼렸다가 소생시키는 방법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실험용 생쥐(mouse)보다 큰 흰쥐(rat)에서 신장을 꺼냈다. 이후 바로 액체질소로 섭씨 영하 148도로 냉동했다. 그냥 냉동하면 장기 안에 있던 물이 얼면서 부피가 늘어나 세포를 파괴한다. 얼음이 얼면 몸에 있던 소금도 한쪽에 농축돼 독성을 낸다. 연구진은 자동차 부동액과 같은 역할을 하는 동결보호액을 넣어 냉동해도 물이 얼지 않고 유리 같은 비결정 상태가 되도록 했다.
바로 유리화 냉동이다. 1985년 미국 적십자의 그레고리 파히(Gregory Fahy) 박사가 네이처에 처음 발표한 방법으로, 이제는 정자나 난자, 수정란 냉동에도 같은 방법이 쓰인다. 해동할 때는 빨대 형태 용기에 수정란을 넣고 0도의 물에 넣으면 된다.
하지만 장기 전체를 유리화 냉동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기 전체에 고르게 동결보호액을 주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짧은 시간에 해동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해동이 늦으면 팽창과 수축하는 부분이 나타나 조직이 찢어진다. 물에 얼음 조각을 넣으면 금이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네소타대 연구진은 2017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철 나노입자와 자석을 이용한 급속 해동법을 발표했다. 동결보존액을 주입할 때 미세 철 입자도 같이 넣는다. 이후 외부에서 자기장을 걸어주면서 1초에 30만 번 방향을 바꿨다. 그러면 신장 안에 있던 철 입자가 회전하면서 열을 낸다.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쥐의 신장 전체를 단 90초 만에 해동했다. 연구진은 이 신장을 이식받은 쥐 다섯 마리는 신장 기능이 일부 저하되기는 했지만, 조직검사를 위해 안락사시키기까지 한 달 동안 큰 문제 없이 생존했다고 밝혔다.
◇병원의 만성적 장기 부족 해결할 수 있어
미네소타대 연구진은 같은 방법으로 돼지 신장 냉동과 해동에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돼지 신장은 사람과 크기가 같다는 점에서 당장 같은 방법이 사람에 적용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왔다. 연구진은 5년 내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하겠다고 밝혔다.
인간 장기를 냉동 보관했다가 안전하게 해동할 수 있다면 만성적인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장기 이식이 필요한 사람 중 10% 미만만 실제로 이식을 받는다고 추산한다. 미국에서만 매일 17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한다. 장기 기증이 적기도 하지만 어렵게 기증받은 장기도 오래 보관하지 못해 폐기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심장이나 폐는 몸 밖에서 4~6시간만 보관할 수 있고, 간은 8~12시간이다. 신장은 적출 뒤 하루 정도 견딜 수 있다. 환자나 의료진이 바로 옆에 대기하지 못하면 이식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실제로 기증받은 심장과 폐의 60%가 제때 수혜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장기를 몇 주, 몇 년씩 냉동 보관할 수 있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의료진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환자에 더 적합한 장기를 찾을 수 있어 이식 수술의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같은 방법으로 항암 치료를 받는 여성 환자가 다시 임신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이미 난소를 냉동 보관하겠다는 회사도 나왔다, 여성이 항암 치료를 받기 전에 난소를 적출해 냉동 보관했다가 치료 후 다시 이식하는 식이다. 이미 양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 성공했다.
◇개구리 동면 모방한 냉동 기술도 나와
과학자들은 다양한 생체 조직 냉동 기술을 개발했다. 미국 하버드 의대 산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 연구진은 동면하는 개구리를 모방했다. 겨울이 되면 개구리는 간에서 포도당을 생산해 부동액으로 쓴다.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항산화 물질도 늘어난다. 혈관에는 얼음 결정의 씨앗이 될 단백질이 나온다. 동면할 때 부피 팽창을 견딜 수 있는 혈관에서만 얼음이 생기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MGH 연구진은 지난 2019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바이오테크놀러지에 개구리처럼 합성 당분을 인간의 간에 주입해 영하 4도에서 27시간 보관했다고 밝혔다. 이는 몸 밖에서 간이 살 수 있는 시간의 2배가 넘는다. 지난해에는 간 냉동 과정에서 부동액인 합성 당분에 스키장에서 인공 눈 결정의 씨앗으로 쓰는 물질인 스노맥스(Snomax)를 추가해 얼음이 혈관에만 생기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냉동 보존 기간이 5배로 늘었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보리스 루빈스키(Boris Rubinsky) 교수 연구진은 냉동 과정에서 압력을 높이면 얼음 형성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어는 점 아래에서도 얼음이 생기지 않는 과냉각 상태를 구현한 것이다.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지난 5월 돼지 간을 영하 2도로 48시간 냉동하는 데 성공했다.
루빈스키 교수의 방법은 냉동 저장고의 압력만 높이면 되기 때문에 이식용 장기뿐 아니라 식품에도 적용하기 쉽다. 루빈스키 교수는 과냉각을 이용하면 식품을 더 높은 온도에서 냉동 보관할 수 있어 연간 60억 킬로와트시의 에너지 소비를 줄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국 농무부 연구진은 이 방법으로 토마토와 블루베리 냉동보관에 성공했다.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부의 이은지 교수 연구진은 올 초 국제 학술지 ‘미국 화학회 저널 골드(JACS Au)’에 세포를 냉동하고 해동할 때 결빙 현상을 효과적으로 제어했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부동액 역할을 하는 단백질 조각을 금속 입자에 결합했다. 나노입자 표면에 배열된 단백질 조각은 물의 어는 점을 낮추고 얼음 형성을 억제했다. 새로 개발한 물질은 기존 동결보호제에 비해 독성이 거의 없고 극소량만 사용해도 효과를 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임상시험 필요, 의료 불평등 가능성 해결해야
과학자들은 영화나 소설에 나오던 일을 현실로 만들었다. 냉동으로 생명체의 시간을 멈추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식용 장기와 식품의 냉동 보관에 이어 우주인의 냉동 수면까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한다. 이번에 장기 전체를 냉동했다가 해동하는 데 성공한 미네소타대의 존 비숍 교수는 의료전문지 스탯(STAT) 인터뷰에서 “생물학적 시간을 멈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인체 대상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러려면 냉동 보관했던 장기를 이식하겠다고 나설 환자가 필요하다. 임상시험이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비용 때문에 장기 이식의 불평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영화에서 그린 미래가 장밋빛 유토피아가 될 수도, 반대로 암울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참고자료
Nature Communications(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3-38824-8
JACS Au(2023), DOI : https://doi.org/10.1021/jacsau.2c00562
Biochemistry and Biophysics Reports(2023), DOI: https://doi.org/10.1016/j.bbrep.2023.101485
Nature Communications(2022). DOI: https://doi.org/10.1038/s41467-022-31490-2
Nature Biotechnology(2019), DOI:. https://doi.org/10.1038/s41587-019-0223-y
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2017), DOI: https://doi.org/10.1126/scitranslmed.aah4586
Nature(1985), DOI: https://doi.org/10.1038/313573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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