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5천만명 앗아간 전쟁…2차대전 때 민간 폭격 횡행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한국에서는 6·25를 겪은 고령 세대와 베트남전쟁 때 파병된 32만여명(연인원)을 제외하면 전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실감하기 어려운 시대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1987, 한국 개봉 기준)이나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 등을 통해 전쟁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도 있지만 스크린에 투영된 전장의 모습은 제한적이다.
전쟁을 방송으로 생중계한 첫 사례로 꼽히는 1991년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 작전' 역시 전쟁의 총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했다.
백악관이 작전 개시를 공식 발표하기 전에 현지에 파견된 기자를 연결한 전화로 사이렌과 폭격 음이 전해져 긴박감을 주기는 했으나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초록색 불빛이 이어지는 폭격 장면은 언뜻 보면 아케이드 게임을 연상시켰다.
정찰·공격용 드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실제 전쟁도 게임과 점점 비슷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은 싸움터에서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며 엄청난 변화를 수반하는 힘의 충돌이다.
특히 전투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이들까지 빨아들이고 희생시킨다.
1914년 이후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는 1억2천만∼1억5천만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군인은 약 4천만명이다. 군인의 배가 넘는 민간인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셈이다.
전쟁사 전문가인 브뤼노 카반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교수는 문학, 역사, 정치, 미술사 등 각 분야 전문가 57명을 모아 신간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을 통해 19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여러 측면을 조명했다.
책에 의하면 전쟁의 양상은 기술의 발전에 의해 크게 변모했다. 무기의 살상력은 향상했으며 전쟁의 상흔은 커졌다.
나폴레옹 군대의 탄알이 100m 정도 거리의 적을 쓰러뜨릴 수 있었으나 그보다 멀리 있는 적은 거의 명중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1914∼1918년 무렵의 기관총 탄은 이보다 4배 먼 거리에서 표적을 효율적으로 맞힐 수 있었고 소총탄의 적중 효율은 6배 정도로 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포병 위력은 나폴레옹이 전쟁하던 시기의 10배 수준이 됐다.
78년 전 당시 일본군 중추인 대본영이 '신형 폭탄'이라고 발표한 히로시마(廣島) 원자폭탄은 윤리적 논쟁을 일으키며 인류 말살 가능성을 일깨웠다.
그런데도 공포의 균형에 기반을 둔 초강대국의 군비 경쟁은 멈추지 않았다.
1990년대에 냉전이 끝나자 낙관적인 이들은 폭력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으나 르완다 내전 중 벌어진 투치족 학살처럼 전쟁은 극단적인 형태의 살인으로 치닫기도 했다.
1995년 7월 벌어진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 때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군대가 이슬람교도 8천명 이상을 살해했지만 현장에 있던 네덜란드 평화유지군은 총을 쏘지도 못하는 등 유엔의 대응은 무력감을 노출했다.
교전국들이 자주 쓰는 전략 중 하나는 굶주림이다.
전쟁 중인 군대는 식량을 약탈하거나 불태워 상대국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적을 복종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민족 집단을 말살하기도 했다.
식량 등 적의 자원을 노리는 군사·경제 전략은 19세기 들어 발달했다.
역사학자 리지 콜링엄은 2차 대전 중 기아로 인한 사망자가 2천만명 정도이며 봉쇄가 이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한다.
봉쇄를 군사 전략으로 가장 잘 활용한 국가는 미국이다.
진주만 공격 직후 태평양 전체를 거대한 봉쇄 구역으로 설정해 일본으로 통하는 수로와 적군이 다니는 주요 해상로에 기뢰를 투하했다. 봉쇄는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제한된 형태였지만 봉쇄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활용됐다.
국가 시스템이 경제적·사회적으로 근대화하면서 20세기 전반의 전쟁은 '총력전'이라는 형태로 변모했다.
전쟁을 위해서 경제적 자원과 노동할 수 있는 인구를 총동원한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총력전을 통해 국가가 진화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20세기 공습의 특징은 전후방 전선의 구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독일은 1915년 체펠린 비행선으로 민간인을 무차별 공격했고 영국과 프랑스 공군은 이듬해부터 2년에 걸쳐 독일의 서쪽 국경 인근 도시를 폭격했다.
민간인 폭격은 2차 대전기에 절정에 달했다.
연합군의 공격으로 독일에서는 민간인이 약 35만명 희생됐고 일본에서는 도쿄 대공습으로 하룻밤 사이에 약 10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두 차례의 원폭으로 12만여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어른들만의 일은 아니다.
유니세프의 추정에 의하면 전 세계에는 국가 간 전쟁이나 내전에 연루된 '소년병', 즉 18세 미만의 소년·소녀가 25만∼30만명에 달한다.
어린이는 전쟁·내전에서 우선 표적이 된다.
아프리카 모잠비크, 앙골라, 시에라리온에서 각각 벌어진 내전에서는 소년·소녀들이 마을 주민 전체에 의해 납치되고, 얻어맞고, 성폭행당하고, 강제로 마약을 복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끝났다고 전쟁이 종료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숙제가 남는다.
프랑스의 역사가 장 자크 베케르는 1차 대전과 관련해 "전쟁을 겪은 세대와 전쟁 직후 세대를 사로잡은 문제는 바로 그 비극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결정하고 그들을 고발하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1945년 2차 대전이 종결한 후 전쟁 범죄 및 독일에 협력한 범죄를 처단한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일본의 전쟁 책임자를 심판한 도쿄 재판에서도 베케르가 지목한 문제가 이슈로 부상한다.
2000년 무렵에는 전투원과 부상자, 포로, 여성, 어린이, 집단학살 등 전쟁 범죄 피해자의 체험에 주목하는 '전쟁에서 벗어나기'라는 개념이 대두한다.
전쟁의 폭력이 신체적·정신적 부상의 형태로 지속된다고 보는 이들은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를 중요하게 다룬다.
유럽에서는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소수민족 학살을 규명하기 위해 1963∼196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아우슈비츠 재판 등 오래된 기록을 다시 꺼내 정리하고 평가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전쟁사의 기능은 '국가의 영광을 드높인 전투의 기억'을 전수하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 책은 다양한 관점에서 전쟁의 양상과 영향을 파고들어 기존의 시각을 벗어나려고 시도한다.
이 책을 기획한 카반 교수는 "전쟁의 종합적 역사를 쓰는 것은 사망자와 생존자들이 서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열린책들. 1권 544쪽. 2권 680쪽.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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