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준공 관리형 토지신탁, 시공사가 독박 쓰는 구조"

정영희 기자 2023. 6. 29.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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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건설동향브리핑 912호'를 발표, 최근 몇 년 간의 부동산 호황기 당시 크게 늘어난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약정을 개정해 지역 중소건설업체의 부도 위험을 낮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 약정 상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의 책임준공확약이 미이행되는 경우 시공사가 대부분의 손해배상책임을 물어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사진=뉴스1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약정이 지역 중소건설업체의 부실위험을 높일 수 있어 제도 개선을 통한 부정적 파급효과를 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2020~2021년 부동산 경기 호황기 당시 부동산 신탁사의 책임 부담이 적은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을 통한 개발사업이 다수 추진됐는데, 지난해부터 국내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며 사업 부실 위험이 급부상했다. 그러나 현행 책준형 관토신 약정 하에서는 손실위험이 일차적으로 건설업체에 집중돼 사업 실패 시 다수의 중소건설업체가 줄도산에 처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건설동향브리핑912호'를 통해 이 같이 밝혔다. 최근 수년간의 부동산가격 급등기에 부동산 신탁사들의 토지신탁 수탁 규모가 크게 증가함.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7년 56조원이던 토지신탁 수탁액은 지난해 101조5000억원으로 두 배 가량 뛰었다.

토지신탁 수탁고 중 가장 비중이 큰 것은 부동산 신탁사가 자금 차입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아 명목적 사업시행자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전체의 89%(90조400억원)를 차지했다. 이 중 대부분이 부동산신탁사가 대주단에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한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이하 '책준형 관토신')이다. 책임준공확약이란 천재지변, 전쟁 등 불가항력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약정된 기한 내에 공사를 완료하고 사용승인 또는 준공인가를 득하겠다는 것을 약정하는 것이다.

그동안 책준형 관토신 사업들은 오피스텔 등 비주택을 주 대상으로 하며 자체 신용도가 낮아 정상적인 사업 수주가 불가능한 지역중소건설사가 시공사로 참여한 사업장에서 주로 보였다. 부동산 신탁사가 대주단에게 책임준공 확약을 제공하는 한편 새마을금고 등 제2금융권에 속한 금융사들이 대주단을 구성, 부동산 신탁사의 신용을 담보로 시행주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공급하는 형태로 추진돼 왔다.

문제는 작년 하반기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냉각되며 시작됐다. 지방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급증한 데 이어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 노조파업 등으로 공사비도 크게 높아지면서 책준형 관토신 방식으로 진행되던 상당수의 PF사업들이 부실위험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신용평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책준형 관토신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 중 시공능력평가 10위 이상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100위 이상 기업이 41%로 가장 많았으며 500위보다 아래인 시공사가 27%로 뒤를 이었다.

부실에 따른 손실 위험을 일차적으로 맞는 건 건설업체다. 책준형 관토신 사업에서는 시공사로 참여하는 건설업체가 먼저 부동산 신탁사에게 사전에 정해진 준공기한까지에 대한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한다. (1차 책임준공확약) 이후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하면 부동산 신탁사가 본래 준공기한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자체 자금투입 등을 통해 책임준공을 시키겠다는 확약(2차 책임준공확약)을 대주단에게 제공하는 구조로 약정이 이뤄진다.

이때 1차 책임준공확약상 정해진 준공기한 내에 시공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원사업주체의 채무, 즉 PF 대출원리금을 중첩적으로 인수하게 된다. 동시에 부동산 신탁사의 2차 책임준공확약 미이행으로 인해 대주단에게 발생한 손해액 모두에 대해서까지 배상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현재 책준형 관토신 사업에 참여한 시공사들의 여건을 고려할 때 신탁사업에 참여한 지역 중소건설업체의 대량 부도사태 발생 가능성이 예견된다는 것이 건산연의 입장이다. 종국에는 부동산 신탁사들과 대주단으로 참여한 금융기관에도 적지 않은 손실 발생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책준형 관토신 약정의 내용 개정 유도를 통한 사업 참여자 간 적절한 위험 재배분 필요토지신탁 약정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문제 제기가 이뤄졌으나 실제로 제도가 개선된 바는 없다.

건산연은 단기적인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기존 사업약정 개정을 유도함으로써 책준형 관토신사업들에서 우려되는 위험을 분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정주 건산연 연구위원은 "지역 중소건설업체의 부실 확대는 지역 경제와 부동산 금융시장에 적지 않은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현재 정부가 운영 중인 'PF 대주단 협약' 프로그램을 통해 책준형 관토신 사업에서의 책임준공 기간을 연장시켜주는 한편 1차 책임준공기한이 도과했더라도 연장된 기간 내에서 시공사가 준공을 완료하면 그 책임 범위를 축소시켜주는 방향으로 약정 내용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정부는 부실·부실 우려 PF 사업장의 정상화를 위해 전 금융권과 만기연장, 채무조정, 신규자금 지원 등 재무구조 개선을 독려하도록 하는 PF 대주단 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선 책준형 관토신을 포함한 토지신탁 전반에 대한 개선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현재 활용되고 있는 토지신탁약정들의 구조와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법원칙이나 '민법', '약관규제법', '건설산업기본법' 등 관련 법률의 취지나 내용에 비춰 불합리한 점들이 적지 않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개발사업 위험이 시공사에게 집중되도록 하는 주된 원인이 되므로 재도개선 노력을 통해 개발사업 참여자들 사이에 적절한 위험 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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