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서 숨지는 소아 중환자…의사 1명이 하루 60명 진료
“위급한 환자 왔을 때 대응 어려워”
신규 소아외과 전문의 2년간 3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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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환자가 많으면 정말 위급한 환자가 왔을 때 대응이 어려울 수 있어요.”
세종특별자치시에서 유일한 소아 전담 응급실을 운영 중인 세종충남대병원 서정호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지난 5일 <한겨레> 취재진과 만나 응급실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날 저녁 7시 이 병원 응급실에선 5개 병상마다 유아부터 중학생으로 보이는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 옆엔 보호자들이 수액을 맞고 있는 환자를 내려다보며 이마에 손을 대 열을 재기도 했다.
응급실 안 분리된 공간엔 환자 없는 병상 3개가 있긴 했다. 의식이 없는 중환자나 코로나19같이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 환자를 위해 비워둘 수밖에 없는 병상이다. 응급실 밖 대기실엔 3~4살로 보이는 어린 환자 네댓명과 보호자들이 치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평일인데다 이른 저녁이라 대기 환자가 적은 편이라고 했다. 호흡기 바이러스 유행이 한창이던 올해 3~5월 주말 밤에는 환자 30~40명과 보호자까지 한꺼번에 몰려 대기실이 북새통이었다.
간단한 처치도 품 많이 드는 소아 환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소아 응급환자를 진료하기 위한 전담 응급실을 24시간 365일 운영하고 이를 위한 의료장비와 의료진을 갖춘 곳이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부터 정부 기준을 충족한 큰 병원을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로 지정해 가산 수가(진료 행위에 대한 가격)와 인건비를 지원하고 있다. 올해 지정된 세종충남대병원을 비롯해 전국 상급종합·종합병원 10곳이 있다.
의료계에선 24시간 응급실 운영을 위해선 최소 5명의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세종충남대병원 센터엔 전문의 6명(계약직 5명), 간호사 10명이 일해 여건이 나은 편이다. 낮엔 의사 1~2명, 야간·주말엔 의사 1명이 하루 평균 40~60명 환자를 치료한다.
성인과 달리 소아 환자는 의료진 지시를 따르지 못하고 움직임이 많아 검사나 간단한 처치를 하는 데 품이 많이 든다. 피하지방이 두껍고 혈관이 약한 어린아이를 의료진이 붙잡고 정맥주사를 한번 놓는 데 1시간 넘게 걸릴 때도 있다. 환자가 10명만 동시에 와도 진료 대기가 1시간씩 발생하는 배경이다.
응급 중환자 집중해야 하지만 경증이 38%
환자가 늘면서 정작 중증 응급환자가 제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상대적으로 증상이 경미한 환자를 보느라 의료진 부담이 가중되면 중증 응급환자가 왔을 때 진료에 지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받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및 소아 전용 응급실 환자 현황’(18살 이상 포함)을 보면, 지난해 내원 환자는 60만1706명(잠정치)으로 2021년(44만3094명)보다 35.8% 증가했다.
의료 현장에선 “올해 특히 소아 환자가 더 몰린다”는 반응이다. 이는 마스크를 벗으면서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이 많아진 탓이다. 아픈 아동은 늘었는데 야간이나 주말에 급히 갈 수 있는 병·의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줄어 당직 인력이 부족해지자, 야간·주말에 응급환자 진료를 하지 않거나 입원 진료를 잠정 중단하는 병원도 생겼다.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는 중증 응급환자 대응을 위한 곳이지만 환자 상당수는 경증인 것이 현실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자료를 보면 지난해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와 소아 전용 응급실 환자 38.3%(잠정치)가 경증에 해당하는 케이타스(KTAS: 한국형 응급환자 중증도 분류도구) 4·5등급이었다. 케이타스는 1~5등급으로 나뉘는데 숫자가 클수록 중증도가 낮다.
소아 중환자 보는 전문 의료진도 부족
중환자를 보기 어려운 진료 여건도 응급실 의료진을 긴장시키는 요인이다. 응급처치와 시술 등 1차 진료를 마치면 환자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진료과로 보내야 하는데 이를 맡을 전문 의료진이 부족하다.
류정민 서울아산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경련으로 소아 환자가 구급차에서 병원을 전전하다 심정지로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다”며 “(경련 치료를 위한) 소아신경과 전문의가 없는 곳에서 환자를 받아주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데 생명과 직결된 다른 분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세종충남대병원엔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고 외과 인력 사정도 빠듯해 장중첩증 환자 진료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다. 서정호 센터장은 “인근 병원도 상황이 비슷해 결국 환자를 서울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의가 부족한 이유는 양성되는 숫자가 적은데다 소아청소년과가 다른 과에 견줘 수익성이 낮아 병원이 의료진을 충분히 고용할 유인이 적기 때문이다. 대한외과학회 설명을 보면, 지난해 배출된 신규 소아외과 전문의는 3명뿐이고 2021년엔 0명이었다. 세종충남대병원 이병국 신생아중환자실장은 “앞으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더라도 낫게 하고 살릴 사람은 필요하다. 그럴 사람이 없는데, 아무도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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