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진 치마카세·신나는 치맥 놀이터…치킨집의 무한변신[New & Good]
교촌 '프리미엄'·굽네 '가성비'…전략은 각양각색
배달 중심 사업 한계…오프라인 사업 기회 모색
이제 치킨도 개성 있게 소비하는 시대다. 치킨업계가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의 취향에 맞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플래그십 스토어(특화 매장)를 속속 개점 중이다. 치킨 브랜드의 이미지를 탈바꿈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서인데 매장 운영 전략은 각양각색이다. 국내 대표 치킨업체 세 곳이 최근 야심 차게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를 직접 찾아가봤다.
①치마카세 즐기는 고급 치맥바…이태원 '교촌필방'
"여기 치킨집 맞아? 간판이 어딨어?" 8일 저녁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번화가. 무심히 길을 지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검은 벽 앞에 섰다. 간판도, 입구도 찾기 힘들어 머뭇대는 사이 누군가 벽에 달린 큰 붓을 힘껏 아래로 당겼다. 그러자 스르륵 문이 열리면서 숨겨져 있던 가게의 복도가 드러났다.
안으로 들어섰지만 마땅히 있어야 할 주방과 테이블은 찾을 수 없었다. 복도 한가운데 계산대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양옆은 소스병이 담긴 선반으로 막혀 있었다. 손님들이 당황한 것도 잠시, 한 직원이 여러 선반 중 한곳을 살짝 밀자 문처럼 열리면서 이윽고 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당 매장은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가 8일 개점한 플래그십 스토어 '교촌필방'. 간판을 찾기 힘들고 내부 공간도 미로처럼 복잡해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고급 치맥(치킨+맥주)바'로 입소문을 탔다. "개방감 있는 공간을 포기하고 들어오는 입구를 어렵게 만들어서 찾아오는 재미를 느끼도록 연출했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397㎡(120평) 규모의 내부는 무형문화재 박경수 장인이 제작한 대형 자개 붓을 설치하고 옻칠 공예작가가 직접 옻칠을 한 한지로 벽을 꾸며 고급스럽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살렸다. 매장 앞에는 교촌 수제맥주 브랜드 문베어브루잉의 맥주병을 재활용해 조명이 반짝이는 미디어월을 배치했다. 이 공간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가변형 테이블도 뒀는데 상황에 따라 공연을 펼치는 'DJ존'(zone)으로도 변신한다.
고급화 전략을 취하는 만큼 메뉴도 업그레이드됐다. 인기 메뉴 네 가지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필방 시그니처 플래터'(3만9,000원), 수제맥주로 마리네이드한 '필방 스페셜 치킨'(2만6,000원) 등 기존 매장에서 접할 수 없었던 메뉴가 눈에 띄었다. 가장 공들인 메뉴는 '치마카세'(치킨+오마카세)다. 별도의 프라이빗한 공간을 마련해 코스별로 닭 특수 부위를 활용한 요리를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가격은 한 사람당 5만9,000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7월 3주 차까지 예약이 찼고, 주말 예약 대기 인원은 하루 최대 90여 명에 달한다.
교촌에프앤비는 지난해 10년 만에 bhc치킨에 업계 1위 자리를 내줘 실적 회복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8.2% 감소했다. 올해는 4월 치킨값을 최대 3,000원 올리면서 불매운동까지 일 정도로 대중의 눈총을 받았다.
교촌필방은 교촌에프앤비가 잃어버린 민심을 되찾기 위해 내세운 '히든카드'인 셈이다. 고급화된 메뉴와 서비스로 주문할 만한 가치를 느끼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진상범 교촌에프앤비 특수사업본부장은 "해당 매장은 신메뉴와 서비스에 대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반응이 좋은 메뉴는 일반 가맹점으로 판매처를 늘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②치킨집 아닌 놀이터로…홍대 '굽네 플레이타운'
교촌치킨이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조하는 사이, 굽네 운영사인 지앤푸드는 가성비를 무기로 Z세대(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 태어난 세대)를 공략하고 나섰다. 15일 서울 마포구 홍대 번화가에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 '굽네 플레이타운'은 기존에 없던 메뉴인 '굽네 통닭구이'를 9,900원에 선보인다. 매일 한정된 시간 포장 전용 메뉴를 할인하는 타임 세일도 진행한다. 고추바사삭 뼈 치킨을 낮 12시에 구매하면 5,000원 할인된 1만3,000원에 판매하는 식이다.
플레이타운의 또 다른 특징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 개수가 적다는 것이다. 앉아서 식사를 하는 치킨집이 아니라 버스킹 공연과 전시를 즐기고,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15일 찾은 플레이타운에서는 손님들이 저마다 서서 댄스와 힙합 공연을 즐기거나 인플루언서들이 영상을 촬영하기도 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벽에 기대거나 돌아다니며 치맥을 즐기는 이들도 많았다. 이날 플레이타운을 찾은 20대 방문객은 "치킨을 먹는다는 목적보다는 무료해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이곳을 찾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총 4층의 플레이타운은 각 층별로 역할이 다르다. 1층 '굽마트'는 테이크아웃 중심으로 운영한다. 치킨 외에 라거맥주인 인천맥주의 '짠하자굽'과 전주 PNB풍년제과에서 나온 매운맛의 '고바삭 초코파이' 등 이색 식품도 살 수 있다. 메인 공간인 2층 '사운드홀'은 무료 이용 가능한 보드게임 등을 비치하고 무대 공간을 마련해 누구나 자유롭게 소규모 공연을 즐기도록 했다. 3층은 인증샷을 위한 미디어아트와 포토존이, 4층은 각종 전시를 즐길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로 운영된다.
판매 중심의 매장이 아닌 놀이 공간을 만든 것은 나만의 콘텐츠를 중시하는 Z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것이다. 지앤푸드는 지난해 '치킨 없는 치킨 팝업스토어'를 열어 방문객을 3만 명 모으고 '바사삭 유니버스'라는 세계관 마케팅을 펼치는 등 Z세대를 새 고객으로 끌어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14일에는 굽네 모델인 걸그룹 르세라핌이 플레이타운에서 소규모 팬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지앤푸드 관계자는 "플레이타운은 단순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 인증샷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며 "누구나 이용 가능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발전시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창출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③브런치와 치맥 한곳에서…송리단길 BBQ 빌리지
서울 송파구 송리단길에 위치한 플래그십 스토어 'BBQ 빌리지'는 낮엔 브런치 카페, 밤엔 치맥바로 변신한다. 치킨 외에도 브런치와 베이커리, 커피, 화덕피자, 파스타 등 190가지 넘는 메뉴가 차려진 복합외식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입맛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게 이 매장의 가장 큰 강점이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매장은 입소문을 타면서 주말이면 많게는 100팀 넘게 대기가 늘어선다. 하루 평균 매출은 개점 직후보다 40% 이상 늘었다. 약 528㎡(160평)의 넓은 매장과 다양한 메뉴로 타깃층을 폭넓게 잡은 것이 흥행에 효과를 냈다. 매장이 석촌호수 인근에 위치해 MZ세대를 중심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것도 고객 유입에 도움이 됐다.
최근에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꼭 들러야 할 명소로 거듭났다. BBQ를 운영하는 제너시스BBQ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이 롯데월드타워를 보러 왔다가 K치킨을 맛보기 위해 인근의 BBQ 빌리지까지 찾아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매장이 넓어 40~50명이 동시에 식사도 가능해 단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특히 BBQ 빌리지는 주력 품목인 치킨 외에 다른 메뉴의 품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냉동 완제품을 데워 주면서 구색만 맞추는 게 아니라 매장에서 셰프가 직접 만들어 전문성을 높인 것이다. 서른 가지가 넘는 베이커리의 빵은 모두 20년 경력의 전문 파티시에가 굽는다. 오픈키친 형태라 수제 화덕피자의 경우 주문 시 반죽부터 피자가 구워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다. 호텔 뷔페에서나 보던 고급 메뉴도 눈에 띈다. 3단으로 구성된 '애프터눈 티세트'와 빵과 샐러드, 커피가 포함된 브런치 세트 등은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차별화한 메뉴다.
제너시스BBQ는 빠르면 올해 안으로 울산 지역에 BBQ 빌리지를 추가 개점한다는 계획이다. 길게는 배달·포장 전문 매장인 BSK 매장을 미국 등에 선보였던 것처럼, BBQ 빌리지 모델을 해외 매장에도 적용하겠다는 그림이다. 한국의 치맥바를 해외에 확대하면서 K치킨의 입지를 탄탄히 다진다는 목표다.
치킨도 개성 따라 소비…플래그십 스토어 여는 이유
치킨업계에 플래그십 스토어가 등장한 건 4년 전이다. 2019년 bhc치킨이 서울시 종로구에 치킨과 맥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비어존' 매장을 내면서 치맥문화를 확대하고 신제품을 테스트하는 전초기지로 삼았다.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외식 사업이 침체기에 들어서며 치킨업계도 배달에 집중했다가, 올해 오프라인 수요가 풀리면서 다채로운 시도가 이어지는 중이다.
치킨업계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개점하는 가장 큰 이유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핵심 고객층인 MZ세대에게 브랜드 정체성을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색다른 경험으로 강렬한 기억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교촌필방은 교촌치킨을 만들 때 일일이 붓칠을 해 소스를 바르는 등 정성을 다해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붓을 매장의 콘셉트로 삼았다. 까다로운 조리 과정을 거친 만큼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여기에 최근 엔데믹(풍토병화)과 배달료 인상 등의 이유로 배달 플랫폼 이용이 준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배달 중심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의도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객이 매장을 방문하면 맥주를 함께 즐기기 때문에 객단가(1인당 평균구매액)가 배달의 두 배 이상은 뛴다"며 "오프라인에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새로운 수익 구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다른 업체와의 차별화를 위해서는 맛을 넘어 또 다른 가치가 더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맛·품질이야 모든 업체가 수준이 높기 때문에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브랜딩이 더욱 중요해졌다"며 "이제 소비자도 단순히 맛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 판단에 따라 업체를 선택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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