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값 인하, 결국 우는 건 소비자다 [경제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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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회사들이 13년 만에 가격을 내리자 속 시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콕 집어 라면값 인하를 압박한 지 9일 만에 이뤄진 라면 업계의 백기 투항이 뒤늦은 것 아닌지 질타도 했다.
정부는 라면값 압박이 한시적 조치라고 항변하겠지만, 가격 통제는 퍼지기 쉬운 데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경쟁 체제를 위협한다.
지출액이 크지 않은 라면 가격을 억누른다고 전체 물가가 확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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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회사들이 13년 만에 가격을 내리자 속 시원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콕 집어 라면값 인하를 압박한 지 9일 만에 이뤄진 라면 업계의 백기 투항이 뒤늦은 것 아닌지 질타도 했다. 정부가 모처럼 '일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물가로 늘어난 식비를 몇 푼이라도 아낄 수 있다니. 마치 정부가 내 주머니 사정을 살뜰히 챙겨준 듯했다. 국제 밀가루 가격이 하락해 라면값 역시 떨어져야 한다는 정부 논리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뒷맛이 영 씁쓸했다.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2%대로 하락할 것이라며 '안정론'을 부쩍 강조하면서 왜 시장에 간섭할까. 그 대상은 460개 소비자물가 품목 가운데 하필 라면일까. 질문이 꼬리를 문다.
민간 시장을 향한 정부의 가격 압박은 지난해 2분기부터 심화한 고물가 국면 속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정부는 올해 3월에도 세금 증가를 이유로 한 소주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걸었지만 이번 압박과는 달랐다. 당시 추 부총리는 "주류업은 국세청에서 관리하는 규제 산업"이라며 가격 개입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규제 산업까진 정부 개입이 허용된다는 말로 읽혔다.
이 발언을 라면에 대입하면 정부는 개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물가가 한참 높게 뛰었을 때도 정부가 좀처럼 시장에 간섭하지 않은 이유는 분명하다.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 기업 활동 보장 등을 뭉갠 가격 개입은 시장 질서를 해칠 수 있어서다.
정부는 라면값 압박이 한시적 조치라고 항변하겠지만, 가격 통제는 퍼지기 쉬운 데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경쟁 체제를 위협한다. 벌써 정부가 라면을 건드리자 빵, 아이스크림 제조사도 가격을 내린다는 업계 소식이 들려온다.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추구하는 보수 정부의 '선택적 통제'가 일으킨 시장 혼란이다.
정부 개입이 물가를 얼마나 진정시킬지도 의문이다. 물가가 3.3% 오른 5월 라면 가격은 13.1% 뛰었다. 상승률만 보면 라면은 고물가 원흉이나, 물가 기여도로 보면 다르다. 본보 계산 결과 라면은 지난달 전체 물가를 0.025%포인트 올리는 데 그쳤다. 지출액이 크지 않은 라면 가격을 억누른다고 전체 물가가 확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가 라면값 인하를 압박한 속내는 체감물가 때문이다. 후반전에 들어선 물가와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라면으로 대표되는 체감물가를 잡아야 한다는 판단이다. 자칫 체감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정부 구상대로 하반기에 수출 등 경기 지표가 좋아지더라도 경제심리는 여전히 바닥에 있을 수 있다.
체감물가를 잘 관리하면 정치적으로 얻을 게 있다는 연관성도 고려했을 법하다. 보수 정부로선 이미 검증한 공식이다. 광우병 사태 등으로 집권 초반 불안정했던 이명박 정부는 라면부터 정조준해 고물가를 완화했고, 이는 지지율 반등의 한 요인이 됐다.
라면값 인하에 따른 득실을 따져보자. 정부는 가격 개입 등 논란에도 웃을 터다. 물가를 제어했고, 덤으로 지지율 상승까지 노려볼 수 있어서다. 라면 회사 역시 밑질 게 없다. 가격 인상 요인이 쌓였다면서 추후 라면값을 왕창 올릴 가능성이 크다. 손해는 만회될 것이다. 소비자는? 물가에 대한 정부 관심이 뜸해졌을 때 '기습 인상'을 맞는다는 걸 이명박 정부 당시 이미 겪었다. 결국 우는 건 소비자뿐이다.
박경담 기자 wa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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