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강남 좌파 ‘킬러 문항’ 이중성 제대로 겨누긴 했는데
카르텔 깨자는 데 공감하지만 느닷없는 수능 변경 방침이 새로운 혼란 부를까 우려도
정책은 속 내용뿐 아니라 전달 방식 따라 평가 좌우돼
첫째가 대입을 준비하던 무렵 논술을 가르치겠다고 기출 문제집을 들여다본 적이 있다. 제시된 여러 지문 속 공통 주제어를 찾아 문제를 푸는 방식이 많았는데, 그 공통 주제어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모범 답안을 읽어 봐도 납득이 안 됐다. 해당 대학 졸업생들이 언론사에 들어오겠다고 제출한 논술 답안지 수준을 뻔히 아는데, 대입 수험생들이 이런 문제를 푼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았다. ‘우리 대학은 이런 수준이야’라고 폼 잡고 겁 주는 느낌이었다.
대학 동기들 단톡방에서 언론에 보도된 수능 ‘킬러 문항’이 화제가 됐다. 마지막으로 본고사를 치른 학번이라 국·영·수 과목의 어렵다는 문제를 많이 경험해 본 세대다. 그런데도 “대입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오느냐”고 놀라거나 “이게 국어 문제냐, 수학 문제냐”고 갸우뚱하는 반응이었다. 수험생들이 시간에 쫓기는 긴장감 속에 처음 보는 전문 용어들을 접했을 때 느낄 당혹감이 짐작이 됐다. 그래서 ‘킬러 문항’이라는 섬뜩한 용어가 나왔나 보다.
“약자인 아이들 데리고 장난치는 것”이라는 윤석열 대통령 분노에 공감한다. 대학에 가려면 학교 수업에서 듣도 보도 못 한 유형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니 수험생들은 사교육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1년에 수십억, 수백억을 번다는 일타 강사들이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대통령 지시에 집단 반발하는 것이다. 강남 학부모들이 주도하는 맘 카페 반응도 험악했다고 한다.
킬러 문항이 사교육을 배양하는 메커니즘은 수험생의 불안과 학부모의 재력이라는 양대 기둥 위에서 작동한다. ‘공포 마케팅’과 ‘강남 때리기’가 전공인 민주당이 마음껏 누빌 수 있는 운동장이다. 수십만 수험생 부모들을 8대2 또는 9대1로 갈라쳐서 총선 표를 챙길 수 있는 기막힌 소재다. 그런데 놀랍게도 민주당은 킬러 문항 폐지를 “최악의 교육 참사”라고 비난한다.
민주당은 특목고, 자사고 육성이나 학력 진단 평가 같은 수월성 교육 정책에 늘 반대해 왔다. 평등을 깃발로 내걸었으니 당연한 선택이다. 그런데 사교육과 수능 출제 경향에서는 이상하게 목소리가 잦아든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EBS 수능 출제 비율을 높이면서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었는데 문재인 정부 때는 정반대 흐름이었다. 그 원인은 86세대 민주당 핵심 지지층이 사교육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 출신 정치인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기도 하다. 국민을 위한다는 정책을 내걸고 뒤로는 자기 진영 먹거리를 챙기는 위선이 여기서도 확인된다.
수험생들의 연약한 심리 상태를 인질 삼아 천문학적 수익을 추구하는 사교육 카르텔 구조를 깨자는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강남 좌파의 이중성을 정확히 겨눴다는 점에서 총선용 적시타가 될 잠재력도 갖췄다.
그런데도 ‘킬러 문항’ 논란을 지켜보는 국민은 미심쩍은 반응이다.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을 질책하자, 교육부 대입 국장이 경질되고, 교육과정평가원장이 물러나는 사태가 급박하게 전개됐다. 국민들은 “수능이 다섯 달 남은 시점에 뜬금없이?”라며 의아해했다. “대통령은 진작에 킬러 문항을 없애라고 했는데, 이 지시가 6월 모의고사에서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명하지만 대입 수험생과 학부모조차 그런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초등학교 입학 연령, 대통령 방미 준비, 탈(脫)원전 폐기 문제 등으로 대통령이 화를 내고 정책 부서 책임자가 옷을 벗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이런 기시감이 ‘킬러 문항’ 사태를 불안하게 느끼게 만든다. 수능 출제 방식을 바꾸라는 대통령의 설익은 지시가 오히려 혼란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한 기업인은 “좋은 취지인 줄은 알겠는데 왜 늘 이런 식으로 정책을 딜리버리(배달)하느냐”고 했다.
국민은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배달되는지 모른다. 또 알 필요도 없다. 그저 국민 삶이 더 행복해지고, 나아지면 그만이다. 좋은 레스토랑은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쁜 모양으로 접시 위에 올린 음식을 내놓으며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면 맛을 보기 전에 이미 군침을 삼키게 된다. 반면 주방에서는 “왜 시킨 대로 하지 않느냐”는 고함이 들려오고, 어떤 음식이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냥 믿고 기다리라는 식이라면 고객은 찜찜한 기분이 든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고민해가며 내놓는 정책을 왜 스스로 흠집 내나.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朝鮮칼럼] 이 대표의 민주주의 對 재판부의 민주주의
- [태평로] 6개월 되도록 연금 논의기구도 못 만든 국회
- [데스크에서] 한국은 ‘트럼프 취약국’ 아니다
- [김윤덕이 만난 사람] 끝나지 않은 ‘정율성 공원’… 민주화 聖地가 왜 6·25 전범 추앙하나
- 페이커로 본 리더의 자격 [여기 힙해]
- [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CQD와 SOS… 타이태닉 침몰엔 과학이 숨기고 싶은 얘기가 있다
- [조용헌 살롱] [1470] 일론 머스크의 神氣
-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37] 패자의 승복
- [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45] 가을
- [기고] 자녀 많으면 배우자 상속세 늘어나는 불합리 바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