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없으니… 끝없이 추락하는 여자배구
2021년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썼던 한국 여자 배구가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 올림픽 이후 약 2년간 국제 대회 성적이 1승 25패. 그중 지난해 12전 전패했던 국제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올해도 9경기 모두 패배했다. 특히 지난 27일 한국 홈에서 열린 불가리아전에서도 세트스코어 1대3으로 패배하며 배구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 도쿄올림픽 후 14위까지 올랐던 세계 랭킹은 28일 기준 34위까지 급락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 가능성까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올림픽 4강 진출을 이끌었던 대표팀 주축 김연경(35), 김수지(36), 양효진(34)이 국가대표 은퇴를 한 뒤 세대 교체에 실패했다는 평가다. 현재 국내 리그 대표 선수인 강소휘(26·GS칼텍스), 박정아(30·페퍼저축은행) 등이 대표팀에서 뛰고 있지만 세계 무대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강소휘는 불가리아전 패배 후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 차를 많이 느낀다. 부끄럽다”고 말했다.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46·이탈리아) 감독이 비판 대상으로 떠올랐다. 도쿄올림픽 때 대표팀 코치였던 그는 올림픽 후 감독으로 선임됐는데, 튀르키예 구단 코치직을 겸직하다가 최근엔 프랑스 구단 감독이 됐다. 프로 팀과 대표팀 감독을 병행하는 그는 지난달 대표팀 국내 소집 훈련에 참가조차 하지 않고 화상회의로 훈련을 지휘했다. 국제 대회에서 특별한 전략이나 전술 없이 여러 선수를 돌려 쓰기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을 지낸 이정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한 달 이상 선수들을 대표팀에 차출해도 감독이 훈련에 안 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코치 시절까지 포함해 대표팀에 몸담은 지 5년이 됐는데 아직도 베스트 라인업이 갖춰지지 않아 경기마다 실험적인 선수 기용을 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한 배구 해설위원은 “감독이 어떤 배구를 추구하는 건지 그 색깔이 보이지 않는다”며 “감독이 확실한 전략을 가지고 훈련을 지휘했다면 지금보다는 경기력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세자르 감독은 불가리아전 후 “전술에는 문제가 없다. 선수들이 적응을 못 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감독 겸직 문제에 대해서도 “오히려 (한국보다) 구단이 불만을 가질 일”이라고 했다.
근본적으로 아마추어 배구 침체가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유소년 배구나 고교 배구 등 저변이 약한 구조에서 이례적인 ‘괴물 신인’이 나오기만 기대하다 보니 꾸준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배구계 관계자는 “배구를 배우려는 아이들이 거의 없을뿐더러 배우러 오더라도 기본기를 가르치면 ‘스파이크 같은 재미있는 건 언제 하느냐’며 금방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이정철 위원은 “일본이나 태국은 여자 고교 배구팀이 수백 수천 팀이지만 우리나라는 20팀도 안 된다”며 “프로 여자 배구 인기가 커진 만큼 아마추어 배구에 좀 더 투자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