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2년뒤 토론회, 괴담세력 안나와… 효력 끝났기 때문”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개입하자 그때부터 사람들은 전문가들 말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광기의 태풍이 지나가고 제자리를 찾았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광우병과 천안함, 사드 전자파 등 한때 나라를 뒤덮은 ‘괴담’에 맞섰던 전문가들은 28일 “힘들고 외로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괴담을 무력화하려면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팩트를 말해줘야 한다”고 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인수공통질병연구소장이었던 이영순 서울대 수의학과 명예교수는 ‘관변 교수’라며 제자들에게 손가락질받았다. 과학기술한림원 토론회에 나가 “미국 소고기 먹어도 광우병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미국 소 먹으면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는 괴담에 유모차 부대까지 등장해 광화문 광장이 뒤덮였던 시기다. 그를 비난한 제자 중엔 광우병 촛불 집회에 주도적 역할을 한 우희종 서울대 교수도 있었다. 이 교수는 “작년에 우 교수가 광우병 이후 처음 연락이 와서 식사도 했다”며 “내게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그런 것 같긴 한데 당시 일에 대해 사과하거나 그러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광우병은 이제 국제사회에서 종식됐다고 모두 인정하는데 괴담 세력들은 사과가 없다”며 “오히려 광우병 괴담을 퍼뜨린 세력들이 지금 다시 후쿠시마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했다.
광우병 사태 때 사람들을 두렵게 한 대표적 괴담은 ‘미국인보다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광우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었다.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이 괴담을 반박했다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신 위원은 “황당한 괴담이 유포되는데 유전학 전공자로서 팩트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난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했다. 신 위원은 광우병 괴담과 후쿠시마 괴담이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상황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광우병 때는 과학자나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팩트보다 여론에 휩쓸렸지만 지금은 많은 과학자가 팩트를 말하고 있고 국민들도 이를 신뢰한다”며 “앞으로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식의 괴담이 더 나오겠지만 과학자와 전문가가 정확한 목소리를 내면 괴담은 결국은 무력화될 것”이라고 했다.
양기화 지샘병원 병리과장은 광우병 사태 때 의사협회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광우병 관련 논문 100여 편과 서적 10여 권을 읽고 괴담의 허위성을 지적하는 글을 블로그에 여럿 올렸다. 광우병 세력의 ‘타깃’이 돼 블로그는 악성 댓글로 도배됐고 “길 가다 칼 맞을 수 있으니 가면 쓰고 다니라”는 문자메시지도 받았다. 의협은 그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양 과장은 2010년 “나는 의학자다. 정부를 두둔한 게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두둔했을 뿐”이라고 했다.
광우병 광풍이 사회를 휩쓴 뒤 2년쯤 지나 양 과장은 방송국에서 ‘광우병 안전’ 측 패널로 토론회 출연 요청을 받았다. 양 과장은 출연하겠다고 했지만 토론회는 결국 무산됐다. 방송국에서는 양 과장에게 ‘광우병 위험’ 측 패널로 나올 만한 사람들이 전부 출연을 거절했다고 전했다. 괴담의 시효가 다했던 것이다. 양 과장은 이날 통화에서 “지금도 미국 소가 위험하다고 주장했던 학자들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며 “같은 논문을 보고도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가 의심할 뿐”이라고 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뒤 민군 합동 조사단에 속했던 노인식 충남대 선박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천안함이 어뢰에 폭침된 증거 중 하나가 ‘휘어진 프로펠러’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천안함 음모론자들이 ‘천안함 좌초’의 핵심 증거라고 주장했던 게 휘어진 프로펠러였는데, 과학적 연구를 통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러자 학교에 노 교수의 연구가 조작·날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학교 측도 분위기에 휩쓸려 연구진실성위원회까지 열었다. 2019년엔 대표적 천안함 좌초론자인 신상철씨가 노 교수를 고발하기도 했다. 노 교수는 통화에서 “다 문제없는 것으로 끝났다”고 했다. 그는 “비난이 심했고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과학적 결과가 그랬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 다만 좀 번거로웠다”며 “이제는 대다수 국민이 천안함 폭침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학술적으로 뒷받침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천안함 침몰 직후 원인으로 ‘어뢰 폭발에 따른 버블 제트’를 제시했던 정정훈 한국기계연구원 국방기술연구개발센터장은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천안함 조사 결과가 조작이라고 하는 분들은 주워들은 건 많은데 이해는 못 하는 초등학생’이라고 했다가 험한 댓글이 쏟아졌었다”며 “과학의 문제가 어느 순간 자신이 믿는 게 무조건 옳다는 종교의 문제로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전문가 의견이 실종됐고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닌데도 아무나 방송에 나와 전문가 행세를 했다. 지금도 그런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사드 전자파가 사람을 튀겨 죽인다’는 괴담에 맞섰던 김윤명 전 단국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당시 한국전자파학회에선 사드 괴담에 ‘학회 차원의 대응은 어렵다’고 했다”며 “학회 토론회에서 어떤 교수는 ‘사드 전자파보다 차라리 북한 미사일을 맞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김 전 교수는 당시 이철우 경북지사 등과 함께 사드 기지에서 4km 정도 떨어진 김천시 농소면의 한 주택을 매입했다. 사드 전자파는 인체에 큰 영향이 없다는 걸 직접 보여주기 위한 선택이었다. 김 전 교수는 “어머니는 ‘(고향인) 김천에 오면 사람들한테 맞는 거 아니냐. 조심하라’며 굉장히 걱정하셨다”고 했다. 사드가 문제없다고 하다가 ‘개철우’로 불렸던 이철우 지사는 “지금은 사드 괴담 때보다 김천 혁신도시에 4000명 정도 인구가 더 늘었다. 괴담이 가라앉은 것”이라고 했다. 김 전 교수는 “이제는 선동이 통하지 않고 과학과 상식이 통하는 성숙한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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