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흡혈귀, 차밭 파괴자, 괴물 쥐… 외래 2653종의 습격

조유미 기자 2023. 6. 29.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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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6% 늘어… 대부분 컨테이너선 타고 들어와

지난주 제주 용두암 인근의 숲길. 팽나무 곳곳에 지름 3~5cm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늘소’에 속하는 곤충이 나무 속을 갉아 갱도처럼 구멍을 내 살다가 성충이 되면서 빠져나온 흔적이다. 이 곤충이 머물렀던 팽나무 잎은 시들었다. 국내 서식이 올해 제주도에서 처음 확인된 곤충이다. 원산지는 중국 남동부와 대만이라고 한다. 아직 한국어 이름도 없다. 노란색 반점이 있고 팽나무와 차나무를 좋아해 ‘노란알락 하늘소’ ‘팽나무알락 하늘소’ 같은 임시 이름으로 부른다. 이희조 국립생태원 박사는 “확산할 경우 국내 차 생산의 40%를 차지하는 제주도 차 산업에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지원
그래픽=이지원

외래종 동식물이 한반도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다. 국내 유입된 외래 생물은 2009년 894종에서 2021년 2653종으로 늘었다. 매년 16% 증가한 것이다. 이날 제주도 협재 인근 나뭇가지에는 솜털처럼 보이는 유충이 붙어 있었다. 과일에 붙어 즙을 빨아먹는 ‘갈색날개 매미충’이다. ‘수액 흡혈귀’란 별명이 붙은 해충이다. 그동안 육지에서 발견되다 제주까지 서식지를 넓힌 것이다. 최근 제주 산간에선 외래종 ‘붉은 사슴’ 등이 번식하며 토종 사슴을 몰아내고 있다.

농작물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빗살무늬미주메뚜기’는 울산에서 발견돼 지난 2월 대규모 방재 작업을 해야 했다. ‘미국 가재’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100대 악성 외래종’으로 꼽았다. 작년 전남 나주·함평에서만 1만마리 이상 잡혔다. 4년 사이 5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미국 가재는 물 온도가 올라가면 굴을 파는 습성이 있는데 논둑에 구멍을 내 농사에 피해를 준다. 육식성 어류 ‘큰입 배스’와 ‘블루길’은 토종 물고기는 물론 개구리·뱀까지 잡아먹는 생태 교란종이다. 이제는 ‘낚싯대만 던지면 잡히는 물고기’가 됐다. 한반도 기후변화로 외래종 번식에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큰입 배스와 블루길이 점령한 담수 유역이 매년 넓어지고 있다. ‘괴물 쥐’라 부르는 뉴트리아는 몸길이가 최장 60cm까지 자라는데 한반도 기온이 현재 추세대로 계속 올라가면 21세기 말 뉴트리아 서식에 적합한 습지가 전국 32곳에서 120곳까지 늘어날 것으로 국립생태원은 예측했다.

외래종 식물도 퍼지고 있다. 전국 하천변과 숲에서 매년 대규모 제거 작전이 벌어지지만 역부족이다. ‘가시박’은 식물계의 황소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덩굴을 사방으로 뻗으며 나무 등을 타고 올라가는데 옥수수·콩·호박 등 작물에 엉겨 붙어 생장을 방해한다. 토종 식물을 말려 죽이기도 한다. 씨앗이 하천을 타고 흐르며 빠르게 번식하기 때문에 미국 등에선 ‘악성 잡초’로 분류한다. ‘단풍잎 돼지풀’은 꽃가루 알레르기를 유발하며 최장 1.5m까지 자라는데 이미 국내에 퍼졌다. 해충의 숙주가 되는 ‘도깨비 가지’도 전역으로 퍼졌다.

외래종은 컨테이너선 같은 배를 타고 ‘밀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곤충이 들어오기 쉽다. 지난해 부산항에선 ‘살인 개미’라 부르는 붉은 불개미(독성 해충) 150여 마리가 발견돼 소동이 벌어졌는데 중국 광둥성에서 출발한 컨테이너선에서 발견됐다. 박현철 부산대 생명환경과학과 교수는 “곤충은 철광석 같은 원자재 수입 과정에서 알 상태로 들어올 수도 있다”며 “외래종이 우리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에는 이미 국내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사전 검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검역은 주로 농림축산검역본부가 하며 환경부·관세청·국립생태원은 2019년부터 인천 공항과 인천항에서 외래 생물 검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생태원에서 외래 곤충을 담당하는 총 인력은 5명에 불과하고 검사센터에 파견된 인력은 2명 뿐이라고 한다. 2021년 살아있는 동물 수입 건수는 7930건인데 이 중 검사는 6%(493건)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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