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포스트 세계화 시대의 ‘디리스킹’
완전 결별 ‘디커플링’ 대신 제한적인 ‘디리스킹’ 추진해도 세계화의 유산이 발목 잡아
미·중 경제 분쟁은 세계화와 이별하는 과정이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을 세계 경제에서 떼어내는 작업이다.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디커플링이 본격화된 것은 5년 전이다. 미국의 손을 잡고 세계 시장에 진입한 중국이 일방적으로 과실을 따 먹고, 이를 이용해 군사적으로 전용할 수 있는 고도화된 디지털 제품까지 만들자 미국 내 불만이 고조됐다. 앞서 미국 월가를 초토화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중국엔 과도한 자신감을, 미국엔 경계감을 키웠다. 이런 미국 대중의 위기감에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올라탔다. 트럼프는 2018년 “중국이 미국에서 사상 최대 일자리 도둑질을 자행했다”며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매겼다. 중국 대표 IT 기업인 화웨이·ZTE와 하는 거래도 금지했다.
중국과 일대일로 맞선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동맹국을 끌어들였다. 한국·일본·대만과 ‘칩4 동맹’을 결성해 첨단 반도체 제품과 장비의 중국 반입을 막고,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중국 배터리 기업의 미국 시장 진입을 차단하려 하고 있다. 중국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을 차단하고, 중국이 지배하는 제품에 대해 시장도 열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디커플링을 중국은 ‘쌍순환(循環)’ 전략으로 맞섰다. 국내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다 만들어 독립성을 유지하고, 내수도 키운다는 것이다. 미 국채도 계속 팔아치우고 있다. 지난 1월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은 8594억달러로 지난 12년 새 최저치다.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물건을 구입하고, 대신 중국은 미 국채를 사주는 경제적 공생 관계 ‘차이메리카(Chimerica)’는 급격하게 해체되고 있다.
마주 보며 달려오는 열차처럼 위태롭지만, 미·중의 경제적 이별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난 30년간 세계화가 남긴 유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의 지난해 교역액은 6906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디커플링이 시작된 5년 전보다 많다. 테슬라·JP모건·GM·스타벅스 등 미국 대표 기업들은 디커플링에 반대하며 중국 사업을 더 확대하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선언을 하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금지 조치에 맞서 중국이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제재하자, 마이크론은 오히려 중국 시안에 칩 패키징 공장을 짓겠다며 충성심을 표시했다. 유럽의 중국 의존도는 더 높다. 유럽 상장 기업 수익의 8%는 중국에서 나온다. 중국과 거래가 끊어지면 독일 자동차, 프랑스 럭셔리, 영국 은행들이 타격을 입는다. 중국은 기업과 정부를 분리해 다루는 ‘분할 정복(divide and conquer)’ 전략으로 디커플링 동맹의 틈을 벌리려 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디커플링이 불가능하니까, 대신 중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낮춰 위험을 줄여나가자며 수위를 낮췄다. 하지만 용어만 바뀌었을 뿐 얽혀있는 기업들의 이해관계로 디리스킹 실행 역시 모호하고 아슬아슬하다. 중국 배터리 업체 CATL과 궈시안은 각각 미국 포드, 독일 폴크스바겐과 지분 거래를 통해 국적을 세탁하는 방법으로 디리스킹 전선을 뚫고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포스트 세계화 시대의 세계는 더 이상 평평하지 않다. 정치·안보를 위해서 경제를 무기로 쓰는 지경학(地經學)이 귀환하고, 자국 산업만 챙기는 산업 정책이 자유무역 정책을 억누를 것이다. 상호 의존성은 무기화하고, 누가 더 치명적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협상과 승패가 갈리는 울퉁불퉁한 세계가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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