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현장] 교육개혁, 그 불안한 출발
“평가원 원장으로 검사 출신 오겠어요… 제발 아무 말도 하지말고, 아무 일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발언으로 입시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기에 찾아봤다가 발견한 어느 학부모의 ‘뼈 때리는’ 댓글이다.
수능을 150일 가량 앞두고 교육부 대입담당 국장이 경질되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 모의고사 난이도를 이유로 초유의 감사를 받게 됐다. 평가원 원장은 사임했고,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의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런 난데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정부와 여당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가 아니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지시를 했는데 6월 모의평가에 또다시 킬러 문항이 등장, 원칙이 지켜지지 않자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당하는 학생들, 국민 입장에선 ‘갑툭튀’ 맞다. 갑툭튀가 아닌 이슈를 갑툭튀로 만든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 정부 내 소통, 대국민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교육개혁의 방향은 전문가의 몫이니 차치하겠다. 일각에선 ‘검사가 전문가이면 기자도 전문가겠다’고 비꼬는데 인정할 건 해야 한다. 입시비리 수사했다고 입시의 전문가일 순 없다. 그런 식의 용비어천가는 국민을 더욱 분노케할 뿐이다.
윤 대통령의 문제의식엔 깊이 공감한다. 극단적인 킬러 문항이 사교육 시장만 배 불리고, 사교육은 부모의 경제력에 좌우되기에 공정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책을 끌고가는 방식이 너무 거칠다. 군사 작전하듯, 긴급수사하듯 할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교육당국과 학원을 ‘이권 카르텔’로 규정했는데 명확한 증거가 있어서 나온 말인지, 아니면 일단 규정부터 해놓고 증거를 수집할 참인지도 모르겠다. 유승민 전 의원은 “카르텔의 증거가 없으니 교육부가 나서서 사교육 카르텔 신고센터를 2주간 운영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정밀하고 전문적인 수능 출제 시스템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정치적 입김을 타면 둑이 확 터지듯 출제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는 전직 평가원장의 우려도 나온다.
교육 정책은 정교한 설계와 폭 넓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 킬러문항을 없애면 사교육이 줄어드는지, 변별력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사교육을 없애겠다면서 왜 사교육의 온상인 특목고 자사고는 존치시키는지 수많은 국민의 의문에 설명이 돼야 한다.
왜 지금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최소한 고3은 건드리지 말자고 울분을 토한다. 또 한편에선 그런 말은 개혁하지 말자는 얘기와 같다고 무책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둘 다 일리 있는 얘기다. 교육 개혁을 방치하면서 ‘초등 의대 입시반’ ‘킬링 캠프’ 등 코미디 같은 현실이 생겨나고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아이들은 전 세계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이 됐다. 그럼에도 최소한의 유예기간은 필요하다.
우리가 자랄 때는 적어도 다음 세대는 군대도 안가고 입시 지옥도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런데 그동안 세상은 이렇게 바뀌었는데 우리 자녀들은 여전히 군대 가야하고, 입시 경쟁은 더 독해졌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이 문제가 쾌도난마처럼 풀렸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현실은 쉽지 않다. 아마도 개혁 중에 가장 어려울 교육 개혁을 이루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나치게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개혁의 걸림돌이 돼서도 안되겠고, 킬러문항 배제 등 한 두가지 변화 만으로 문제가 풀릴 것 같은 단순함도 경계해야 한다.
‘공정 수능’이라는 어색한 단어가 등장하고, 수능 모의고사 문항이 브리핑되고 전 국민이 킬러문항인지 아닌지를 감별하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대통령이 강조한 노동 개혁이 노조 때려잡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교육 개혁이 사교육 때려잡기로만 흘러가지 않기를 바란다. 수많은 다음세대들의 인생이 달린 문제이기에 이번에 나온 ‘갑툭튀’ 같은 이슈가 어찌 됐든 제대로 된 해법을 찾아가는 진통의 과정이기를 바라본다.
정유선 서울정치부 차장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