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아영의 레인보] 바보야, 문제는 노동시간 단축이야

임아영 기자 2023. 6. 2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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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에서 한 거야.”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집안일 백과사전’이라는 활동지를 내밀었다. “집에서 누군가 해야만 하는 집안일들입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주로 누가 하고 있을까요?” 장보기, 빨래 널기부터 식사 준비, 설거지하기 등 15가지 집안일이 정리된 활동지였다. 아이의 눈에는 어떻게 비쳤을까. 중복 답변 결과 엄마 5가지, 아빠 5가지, 할아버지 6가지였다. 식물 기르기 등 할아버지가 단독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표시한 것이 많았다. 아이의 눈은 정확했다. 우리 부부는 9년간은 친정 엄마 도움으로,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는 아버지와 합가를 하면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들을 키웠다. 운이 좋은 케이스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27일 통계청이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해 발표했다. ‘무급 가사노동 평가액의 세대 간 배분 심층분석’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 노년층(65세 이상)의 가사노동 생산액은 80조9000억원으로 2014년(49조2040억원)에 견줘 크게 늘었다. 인생을 쉬엄쉬엄 보내야 할 시기에 조부모가 손자녀를 돌봐주는 이유는 명료하다. 한국 사회는 부부의 시간만으로 육아를 하기 어렵게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통계에서 1인당 가사노동 생애주기적자를 성별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 여성은 25세부터 가사노동을 ‘공급’하다 84세가 되어서야 가사노동의 ‘수혜’를 입는다. 무려 59년간 가사노동을 공급하는 셈이다. 남성이 가사노동으로 가정에 기여하는 기간은 31세부터 47세까지 17년에 그쳤다.

여성 고용률 그래프는 ‘당연하게도’ 반대 양상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 연령별 고용률 분석을 보면 대부분의 국가 여성 고용률은 20대부터 40대까지 계속 상승하다 50대 이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한국만 30대에 크게 하락했다가 40대에 다시 상승한다. 한국만큼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이 많은 국가는 없다는 뜻이다. 이제 2030 여성들은 이러한 그래프를 거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이 ‘페널티’가 되는 구조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1970~1980년대 서구 많은 국가에서 여성 고용률이 증가하면서 일시적으로 합계출산율이 하락했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 노동시장 참여와 출산·양육을 지원하는 일·가정 양립정책 모두를 활성화하면서 여성 고용률과 합계출산율은 함께 증가한다. 한국은 다르다. 1980년대 이후 여성 고용률도 크게 증가하지 않고 여성들의 경력단절 현상이 장기간 뚜렷하게 나타나며 합계출산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남성’을 전제로 한 노동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이런 구조에서 가사노동을 떠안은 여성들은 ‘2등 직원’에 머무른다. 정부 누리집 근로시간 지표를 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1904시간이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는 1400시간 미만이고, 한국 다음으로 긴 미국도 1822시간에 그친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 손대지 않고 저출생 문제를 풀 순 없다. 지난 10여년간 저출생이 심해져 사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목소리는 컸지만 우리는 위기의식만큼 일과 가정, 일과 생활이 양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했다.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늘었지만 중소기업 등 사각지대는 여전하고 육아기 단축근로 제도는 공무원들만 쓸 수 있는 제도라는 아우성이 여전하다. 그동안 국공립 어린이집, 초등 돌봄교실 등 돌봄체계를 내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장시간 노동 문제를 내버려 두고 돌봄정책으로만 해결하려 하다 보니 정부의 선한 의도와 다르게 결과는 ‘땜질’이 되었다. 육아기 단축근로, 유연근무제, 재택근무 등을 실효성 있게 만들어왔다면 밤 8시까지 돌봄의 수요가 얼마인지 따져야 했던, 돌봄이 교육인지 보육인지 논쟁해야 했던 ‘늘봄학교 이슈’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이슈는 더 최악이다. ‘주 69시간 논란’과 아울러 현 정부가 자본과 한 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기업들이 계속 요구해왔던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노동’을 거론하며, 절대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의지가 없는 정부가 ‘차라리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들여올 테니 돌봄 문제는 외주화하라’고 말한 것이다. 실효성을 떠나 문제의 근원을 모른 척하는 아둔함에 씁쓸하다.

그래도 아이가 가사노동에 대해 ‘누군가 해야만 하는 많은 집안일들’이라고 배웠다는 것이 희망이다. 활동지는 아이에게 묻고 있다. “여러분도 이 일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나를 돌보고 나보다 작고 약한 존재를 돌보는 일을 모두 함께 나누는 삶이 훨씬 가치 있다는 것을 가정에서도 이어 가르치려 한다. 안타깝게도 구조적 원인은 모른 척하고 자본에 유리한 구조를 만들며 포퓰리즘적인 적을 만들어 대중의 분노를 향하게 만드는 데에만 능한 정부에는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임아영 소통·젠더 데스크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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