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괴담정치조차도 위대했던 세종

김종구 주필 2023. 6.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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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와 도모, 6진 개척 쾌거로
논쟁은 과학으로, 목적은 국민에
원칙 잃는 순간 후쿠시마도 괴담

명 나라 사신이 세종께 고한다. 북방에 사람 만 명 잡아 먹는 뱀이 있다. 배 속 창자에 사람 피가 엉겨 붙는다. 점차 돌처럼 굳어 딱딱해진다. 만인혈석(萬人血石)이다. 사람들이 그걸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다. 사람들 눈에는 안 띈다. ‘관(鹳)’이라고 불리는 새가 필요하다. 그 새가 만인혈석을 품은 뱀을 잡아먹는다. 그 후 알을 세 개 낳는다. 그중 하나가 만인혈석이다. 참 황당한 괴담이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실록(實錄)에 실렸다.

세종 19년(1437년) 11월22일 두 번째 기사다. 왕이 먼저 괴담을 얘기한다. ‘함길도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명하는 왕은 세종이다. 명 받는 도절제사는 김종서다. ‘북방을 뒤져 은밀히 만인혈석을 알아보라.’ 김종서가 함길도를 조사했다. 여진족을 특히 뒤졌다. 여진인 마파라, 귀화 여진인 마변자, 그의 숙부 마자화.... 여진 인맥을 총동원했다. 궁금하다. 세종은 왜 뻔한 지시를 했을까. 왜 명장 김종서를 투입했을까.

21세기에도 괴담은 있다. 그걸 쓰는 게 괴담 정치다. 광우병 소고기가 그중 하나다. ‘소를 이용해 만드는 생리대로도 전염된다.’ ‘전화선을 타고도 광우병이 전염된다.’ 살필 것 없는 헛소문이었다. 당연히 출처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 걸 일부 언론이 증폭시켰다. 인용 부호(‘’) 붙이며 퍼 날랐다. 정치가 올라탔다. 괴담이 놀도록 멍석을 깔아줬다. 촛불 혁명이라며 군불도 지폈다. 이명박 정부를 포위한 힘이 됐다. 괴담이 됐다.

사드(THAAD)도 그렇게 갔다. 이번엔 정치가 괴담을 선창했다. ‘3.5㎞ 이내 사람 못 다닐 정도의 전자파다.’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다. ‘치명적 영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현 민주당 대표다. ‘전자파에 내 몸이 튀겨질 것 같애.’ 민주당 의원이 부른 개사 노래다. 반미 감정이 불을 지폈다. 중국에서 혐한 정서가 확산됐다. 박근혜 정권이 휘청했다. 훗날 탄핵의 작은 시작이 됐다. 6년 지나 결과가 나왔다. ‘인체에 무해합니다.’

사무실 건너 저기, 현수막이 보인다. 욱일기, 방사능 해골, 핵 폐기 드럼통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웃고 있다. “후쿠시마 핵 오염수, 정말 마실 수 있나요”. 이런 현수막이 전국에 깔렸다. 명분은 소고기·사드 때와 같다. 국민 생명 보호다. 정치인 단식이 이어진다. 정의당 대표, 민주당 의원 등 여러 명이다. 승산 있다고 판단이 선 모양이다. 맞은편에선 국민의힘이 소리친다. 괴담 정치 멈춰라. 사드 괴담 사과부터 하라. 옳은 쪽은 어디인가.

괴담 정치, 누군가에겐 절규다. 괴담 공포, 누군가에겐 진심이다. 후쿠시마 반대도 그렇다. 함부로 괴담이라 몰 건 아니다. 충분히 논의되지도 않았다. 다만, 미리 정해 놔야 할 한계 괴담은 있다. 하나가 ‘논쟁의 소재가 과학인가’다. 상대 과학을 돌팔이로 몰 순 있다. 그랬으면 그 근거도 과학이어야 한다. 못 하면 괴담이다. 다른 하나는 ‘투쟁의 목적이 국민인가’다. 정치로 싸울 순 있다. 하지만 목적은 국민 건강이어야 한다. 아니면 괴담이다.

1437년 11월22일. 세종의 그날은 괴담 정치였다. 의약 관리가 아닌 충신을 불렀다. 거대한 북벌 정치의 시작이었다. 백성 동요를 걱정하는 위민 정치, 여진족 동태를 탐문하려는 정보정치였다. 김종서 최종 보고에 그 뜻이 담겼다. ‘여진에 만인혈석은 없고, 내부 형세는 열악합니다.’ 그 후 실록에서 만인혈석은 사라진다. 대신 위대한 역사가 등장한다. 북방 6진 개척, 두만강 영토 확장... 성군(聖君) 세종은 그렇게 괴담 정치조차 교훈으로 남겼다.

김종구 주필 1964kj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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