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선의 깊은 호흡] 쉼의 어려움

기자 2023. 6.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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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와 더위, 신경 쓸 일들로 몸 컨디션이 나빴던 한 주였다. 이럴 때 듣게 되는 말은 ‘쉬엄쉬엄 일해’인데 나는 이 말이 여전히 무슨 뜻인지 감이 안 온다. 형용모순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뭐, 나만 힘든가? 한국에서 일하며 먹고사는 것은 일반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봐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임경선 소설가

다만 저마다의 개별적인 특수성은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면 나를 내과 수액실로 보내는 결정적 원인은 바닥을 칠 때까지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습성이다. 배터리로 비유해서 한가득 에너지가 채워진 상태를 100%라고 해보자. 배터리가 20% 정도 남았을 때 잠시 멈추고 충전을 한 후 다시 달리면 바람직할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0% 앞에서 멈춰도 그 역시 감당 가능하다. 그 지점에서 다시 한가득 에너지를 채운 후 달리면 되니까. 한데 일하는 동안에 남아 있는 에너지 정도를 가늠하지 못해 멈추면 좋을 타이밍을 놓치고, 그러는 와중에 일에 몰입하니 더한 일 욕심을 부리고, 타의에 의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생기기라도 하면 에너지는 0%에서 -40% 지점으로 훅 떨어진다. 그때는 이미 피로가 극심해서 일할 수 없어 강제로 쉴 수밖에 없다. 아니, 몸이 아파야 비로소 아무 생각 없이 쉬게 되는 것이다.

이 고질적 습성으로 고생하고 있음에도 에너지를 바닥까지 소진시키려는 충동을 참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몰아치기 대신 모든 일을 조금씩 천천히 하고 조금이라도 피로를 느끼면 일을 멈추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가. 그것은 성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성격이 조급하고 통제욕구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일, 타인·타 조직과 얽힌 일들을 어서 빨리 초스피드로 해치워버리고 싶어 한다. 그래야 기분이 개운하다. 나중으로 미룬다? 마음이 부대껴서 견디질 못한다. 그러고서 ‘원래 내 일’에 착수하는데, 중간에 끼어든 다른 일들로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면 내 일을 미루거나 잠시 쉬어가도 될 터.

한데 어쩐지 내 일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싫다. 어느 정도 원스케줄대로, 제 페이스를 유지해줘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하지 않았다고 해서, 천천히 한다고 해서, 뭐라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고 쫓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말이다. ‘해야 한다’고 나를 몰아세워오던 습성이 한편으로는 동력이 되어 그간의 성과를 만들어준 부분도 있었으니 몸에 지독하게 박힐 만도 하다. 그러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던 관계가 영원하기는 힘들 것이다.

쉬는 것을 어려워하는 기저에는 불안증도 한몫을 한다. 쉬거나 노는 것에 소질이 없는 사람들은 대개 가만히 있으면 불안감을 느낀다. 삶이 공허하게 느껴지고 애써 외면하던 본질적 고민들이 불쑥 튀어 오른다. 사실 지금 같은 세상에서 불안하지 않기가 더 어렵지 않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인정하되 바라보는 방식을 바꿔볼 뿐. 요 며칠도 걱정거리가 몇 가지 있어 신경 쓰고, 순간순간 미쳐버릴 것 같고, 눈을 감고 있어도 불안해서 힘겨워하다가 문득 동네 카페 ‘사직동 그 가게’의 대문 팻말에 쓰인 티베트 속담,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질 것 같으면 걱정할 일도 없겠네’가 떠올랐다. 팽팽한 기타 줄처럼 신경이 날이 서면 이 티베트 속담을 만트라처럼 외우며 심호흡을 반복한다.

쉬는 방법과 마음의 평화를 찾는 방법은 결코 외부에서 먼저 주어지지 않는다. 스스로 배우고 부단히 훈련할 수밖에. 변수가 끼어들 틈을 유연하게 마련하며 20% 정도의 에너지는 항시 비축해둘 것. 조급하고 불안한 성정을 자각하고 내가 모든 상황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비울 것.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힘이 들지’ 않게 하려면 ‘힘을 빼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쉬는 걸 잘 못하는 나를 두고 한 동생이 한심해하며 “언니는 지옥에 가면 지옥불에서 영원히 쉬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영원히 쉰다니, 아직은 상상조차 끔찍하지만.

임경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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