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일단 멈추라

기자 2023. 6.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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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속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것은 ‘정치적 후견주의’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도다. 정치적 후견주의란 점잖은 표현인데 속된 말로는 ‘정치적 장악’이다. 공영방송을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계획이다. 그것이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의 본질이다. 그러니 이 정부가 말하는 이유가 타당하냐 아니냐를 가지고 떠들 필요도 없다. 공영방송 길들이기가 KBS 수신료 분리징수 추진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김태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정치적 후견주의란 이런 거다. KBS 이사회 구성은 11명인데 여당이 7명, 야당이 4명 추천한다. 정확히 여야가 이 비율을 ‘나누어’ 가진다. 이렇게 구성된 이사회가 사장, 감사도 선출하고 최종 경영책임을 진다. 문제는 이사와 사장, 감사의 임기 중 정권교체가 되는 경우다. 여야 정당이 바뀌었는데 비율은 과거 그대로이기 때문에 새로 여당이 된 쪽이 유혹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경영진을 다양한 방법으로 흔들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재구성하려는 ‘악마의 속삭임’이다. KBS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의도는 그런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후견주의 때문에 KBS 경영은 정파적 시비가 멎을 날이 없다. 내부 구성원들은 편이 갈려 늘 시끄럽다. 파쟁이나 편갈림은 정치적 후견주의의 소산(所産)이다.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이라는 뜬금없는 일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처럼 수신료를 전기요금에 포함해 징수하는 방법은 오랫동안 공영방송 재원 확보를 위해 지속해온 정치·사회적 합의다. 공영방송 재원을 조달하는 방법은 나라에 따라 다양하나 우리가 이런 방법을 택한 이유는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적절한 방법이라는 정치·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가 이런 사회적 합의를 깨면서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겠다고 나오는 까닭은 공영방송 지배체제를 흔들어 무력화하고 그것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처럼 느닷없이 수신료 분리징수를 몰아붙일 수 있을까?

수신료 징수 방법은 현행이 절대적인 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바꾸려면 새로운 정치·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이 꼭 필요하다. 그것 없이 이렇게 난리가 난 듯 분리징수를 재촉해서 안 된다. 대통령실의 권고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5명의 위원 가운데 민주당이 추천한 위원장은 면직되고, 역시 민주당이 추천한 위원 한 명은 임명이 보류되고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3명이 모여 수신료 분리징수 입법예고를 결정했고,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의 입법예고를 거친 후 다음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렇게 허술한 과정 때문에 법적 다툼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신료 분리징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내고 있다.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형식을 통해 수신료 분리징수 의제를 올리는 절차도 문제였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압도적 다수가 수신료 분리징수에 찬성했다고 하면서 그 조사결과를 국민제안 채택의 근거로 제시한 바 있는데 그 조사는 대통령실 홈페이지를 방문해 찬성을 누른 사람들을 집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엄격한 절차에 따라 표본을 추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표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중복 투표도 많이 발견되는 등 데이터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다. 그런 조사결과는 제한된 조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참고자료일 수 있으나 어떤 결정의 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그것을 근거로 국민제안을 성립시키고, 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것일까?

KBS 수신료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료가 아니라 공영방송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국민이 부담하는 것이다. KBS는 여러 방송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적 가치를 실현하는 특별한 ‘공영’방송이다. 이 비용을 국민이 부담하는 이유는 공영방송이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게 활동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수신료를 분리징수하게 되면 징수율이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면 공영방송은 물적 기반이 흔들리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고시장에서 돈을 얻기 위해 기업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권력기관의 간섭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되면 공영방송은 무너지게 된다. 윤석열 정부는 공영방송을 정치적으로 쉽게 관리할 수 있는 상황으로 만들고 싶어 수신료 분리징수를 추진하겠지만 그것이 낳을 부작용은 너무 크다. 윤석열 정부에 바란다. 일단 멈추라.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공론을 시작하자.

김태일 몽양 여운형 선생 기념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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