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쉬엄쉬엄
툭툭도 탔지만 밤낮으로 쉬엄쉬엄 걸었다. 애정하는 리스트의 명곡 ‘순례의 해’. 집에서도 즐겨 듣지만 여행 중에도 꺼내 듣는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집들도 이곳엔 많이 남아 있는데, 리스트의 고향 헝가리나 어디 <오즈의 마법사> 동네만 같아라. 소녀 도로시는 토네이도에 휩쓸려 강아지 토토와 멀리 오즈라는 곳에 추락해. 오즈(Oz)란 당시 사용하던 화폐단위 온스(Ounce)에서 작가가 착안했는데, 그야말로 뒤죽박죽 물신의 나라. 허풍선 자본주의와 반인반수의 신화 속 양철 나무꾼 로봇의 시대가 펼쳐진다. 여기에 흘러나오는 노래 ‘오버 더 레인보’는 이 난리통을 정리해주는 사운드 트랙. 도로시는 토토를 앞세우며 한없이 걷고 또 걸어. 우리 모두 걷다 보면 뾰족한 수가 나겠지. 걷지 않으면 답이 없어.
쉬엄쉬엄이란 말을 좋아한다. ‘놀멍쉬멍’ 제주 친구는 그리도 말하덩만. 전라도에서는 ‘싸쌀 해찰해감시롱’이라고 한다. 뽈깡, 후다닥, 반짝하지 말고 아주아주 차분히 천천히 두리번거리면서 가자는 말. 요새 사람들은 글이 재미없다며 지면을 멀리하고 틱톡, 짤, 너튜브의 호들갑 화면들에 정신이 팔려 산다. 음악도 그저 카페에서 틀어 놓은 생활 소음 대접이야.
집에 돌아가면 호박잎 썰어 된장국을 보글보글 끓여 먹어야지. 벗들과 포도주 나누며 쉬엄쉬엄 여행 이야기나 할까. 인연하여 지내는 음반사에서 최근 임윤찬의 신보를 발매했다. “요새 클래식을 누가 들어야죠~” 대표님의 염려. 평생 순례하며 산책했던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손과 발로 사유하는 인생 철학이야. 걸으면서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를 듣기도 했다. 순례자 리스트와 한국 청년의 만남, 영민하고 뜨거운 연주였다. 쉬엄쉬엄 멀리, 우리 겨레의 혼이 실린 연주 여행이길.
임의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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