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소년’이 온다
세계 곳곳 폭우·가뭄으로 몸살
화석연료 의존 기후위기 초래
에너지 전환 더는 미룰 수 없어
매년 헷갈리는 현상이 있다. 엘니뇨와 라니냐가 그것. 어떤 게 소년이라 더워지는 현상이고 어떤 게 소녀라 시원해지는 현상인지 가물가물하다. 하나만 기억하자. 엘(el)과 라(la)는 각각 남성과 여성 관사다. 딱 봐도 엘은 남성이고 라는 여성 느낌이다. 이것만 기억하면 나머지는 자동이다. 각각 엘+니뇨, 라+니냐다. 니뇨는 소년이고 니냐는 소녀다.
매년 지구가 점점 더 더워지지만 작년 2022년이 가장 더운 해는 아니었다. 라니냐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라니냐 덕분에 우리가 한숨 돌릴 겨를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올해 들어 내내 관측 이후 가장 뜨거운 평균 해수면 온도가 유지되고 있는 데다가 원래 4월이면 그 기세가 꺾이기 마련인데 내려가지 않고 있다.
지구는 무한하지 않다. 한쪽에 공기가 많으면 다른 쪽은 공기가 적어지고 한쪽에 비가 많이 내리면 다른 쪽에는 비가 적게 내린다. 동태평양지역에 고기압이 강하면 서태평양지역에 고기압은 약하고, 동태평양에 가뭄이 들면 서태평양에 홍수가 난다. 마치 풍선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다.
태평양은 넓고 엘니뇨 현상은 지역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경우 엘니뇨 현상이 발생하면 장마가 길어진다. 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약해져서 장마 전선을 북쪽으로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보에 따르면 7월에는 나흘을 제외하고는 비가 올 거라고 한다. 특히 남부 지방은 큰 비 피해가 전망된다.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페루나 에콰도르에는 큰 가뭄이 예상된다.
올해 엘니뇨 현상은 역대급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차피 매년 더워지고 있는 기온은 차치하고라도 한쪽에서는 홍수로 다른 쪽에서는 가뭄으로 농작물 생산량이 크게 줄 것이다. 해충과 전염병 피해도 심각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는 내년 식량 사정이 걱정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다.)
엘니뇨는 국제 정세의 안정을 해칠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있다. 프랑스혁명이나 아랍의 봄은 단지 민중들의 의식이 바뀌어서 발생한 것은 아니다. 1783년부터 1784년까지 2년간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하면서 유럽의 농작물 생산량이 급감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원인이 되었다. 아랍의 봄은 벨라루스와 러시아 여름이 더워지면서 밀 생산이 급감하자 수입 밀가격이 오른 데 대한 분노로 발생했다. 압제는 참아도 배고픈 건 못 참는다.
우리는 태평성대에 살고 있다. 전쟁을 경험해 본 사람이 거의 없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열 살이었던 사람은 이미 80세다. 대한민국 공무원 가운데 한국전쟁을 경험해 본 사람이 이제 한 명도 안 남은 것이다. 앞으로도 태평성대가 이어질까?
석탄과 석유라고 하는 싸고 강력한 화석에너지를 마음껏 써서 인류는 경제 혁명을 이뤘다. 그 결과 우리는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지구라도 좀 협조해 주면 좋은데 우리는 올해부터 몇 년간 엘니뇨를 겪으면서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엘니뇨를 막겠는가? 하지만 대책은 세워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은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엘니뇨와 라니냐는 지구과학1 교과서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수능에 이 주제로 문제를 내도 질책받거나 잘릴 일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올해는 정말 심각한 엘니뇨 현상을 겪을 테니 수능에 나올 확률이 매우 높다. 한 번 더 살펴보시라. 그리고 수능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니 올해 여름을 견뎌 내는 것이다. 역대급 소년이 온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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