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셴코, '러 호의·위기차단' 일거양득…바그너 행보는 변수
프리고진 신변안전 불투명…자국 내 바그너그룹 예의주시할 형편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러시아 용병단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 사태를 해결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흡족한 정치적 이익을 챙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지난 23일 용병단을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하며 반란을 개시하자 러시아 정부와 프리고진 사이에서 중재자로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반란을 엄단한다는 뜻을 분명히했고, 바그너그룹은 모스크바 인근 200㎞까지 거침없이 진격하는 등 안보 위기가 극단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이 기민하게 양측의 꼬인 매듭을 풀었다는 평가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서두르지 말 것을 제안했다"고 떠올렸다.
반란을 이끈 프리고진에게 형사 처벌 방침을 철회할 것을 약속하고 바그너그룹을 벨라루스로 철수하게 하는 선에서 발발 하루 만인 24일 반란은 종료됐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가 루카셴코 대통령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반란 종료 후 TV 연설을 통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한 데 대한 그(루카셴코)의 기여에 감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러시아가 감사 표시를 아끼지 않은 벨라루스 정권의 중재는 루카셴코 대통령 자신에게 적지 않은 이득을 선사했다고 로이터통신은 28일(현지시간) 분석했다.
각종 자금과 석유·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심지어 최근 배치 작업이 진행 중인 핵무기까지 루카셴코 정권은 러시아로부터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데, 이번에 러시아를 대혼란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우면서 체면을 크게 세웠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호의를 얻음으로써 루카셴코 정권은 향후 러시아에 경제·군사적 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청구서'를 넉넉하게 확보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1994년 이후 권위주의 통치를 유지하며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로 불리는 루카셴코 대통령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러시아와 밀착하지 않고서는 독자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런 취약성을 지닌 루카셴코 정권에게 러시아가 무장 반란 사태를 계기로 적지 않은 빚을 지게 된 셈이다.
망명 중인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의 측근은 로이터 통신에 "루카셴코는 푸틴에 너무 의존하고 있었다"며 "루카셴코는 푸틴을 구한 게 아니라 자신을 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장반란 사태 해결은 루카셴코 정권에게 안보 측면에서도 큰 이득이 됐던 것으로 분석된다.
만약 무장 반란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러시아가 심각한 내전 상황을 겪었다면 그 여파는 벨라루스의 안보 위기로 확산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루카셴코 대통령 자신도 국영매체에 "러시아 전역에 혼란이 퍼졌다면 그다음 차례는 우리가 됐을 것"이라며 "러시아가 무너지면 우리 모두는 그 잔해 아래에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처럼 루카셴코 정권이 반란 사태 중재로 유무형의 이득을 챙긴 것이 사실이더라도 바그너그룹을 자국 내에 주둔할 수 있도록 한 점은 변수로 남는다는 지적도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자국 매체에 "용병단의 존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바그너그룹의 전투 경험을 공유하면 벨라루스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지만, 벨라루스로서는 자국으로 망명한 프리고진의 향후 행보를 예상하기 어렵다.
프리고진에 대한 처벌 취소가 반란 종료의 조건이었다지만 그의 신변 안전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많다. 프리고진이 추종 세력을 이끌고 또다시 돌발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벨라루스는 중장기적 안목으로 바그너그룹의 주둔을 허용한 게 아니기 때문에 루카셴코 정권은 자국에 머무는 프리고진과 바그너그룹의 동향에서 당분간 눈을 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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