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단상]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보며

이욱환 2023. 6. 2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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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군청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특별한 볼일 없이 군청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현관 제일 가까운 곳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라는 문구가 반듯하게 적힌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었으며 청사 벽면에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새롭게 설치한 현수막에는 '위대한 헌신, 영원히 가슴에'라고 새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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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환 평창문화원장·평창군 보훈단체협의회장

평창군청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새롭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특별한 볼일 없이 군청 주차장을 둘러보았다. 현관 제일 가까운 곳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라는 문구가 반듯하게 적힌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었으며 청사 벽면에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새롭게 설치한 현수막에는 ‘위대한 헌신, 영원히 가슴에’라고 새겨 있었다. 작은 배려에 가슴이 메는 순간이다.

노을이 붉게 물든 저녁 무렵 꼬리를 물고 퇴근하는 차들 사이로 훤하게 불을 밝힌 군 청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춥고 어두웠던 지난 시절을 겪어온 우리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우리 세대의 뜨거웠던 젊은 시절도 이제는 저물어 간다.

며칠 전 현충일 행사에서 목격한 전쟁 미망인의 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흰색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부인은 현충탑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 석자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당신을 만나러 내년에도 올 수 있을까?’

올해가 6·25전쟁 73주년이니 국가유공자와 보훈가족의 나이와 건강상태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평창군내에도 상이군경회, 전몰군경미망인회, 전몰군경유족회, 6·25 및 월남참전유공자회 등 7개의 보훈단체가 있고 그 회원들의 연령은 대부분 평균 76세가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해마다 접하는 회원들의 사망 소식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건강 악화로 병원에 입원하시는 분들이 나날이 늘고 있는 현실도 매우 안타깝다.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기억해야 하는 보훈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가보훈은 나라의 정신적 근간이자 주춧돌이다. 국가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선조들은 초계처럼 일어나 확고한 신념으로 하나뿐인 목숨을 나라에 바쳐 조국을 구했다. 지금이야 선진국 반열에 올라 GDP 세계 10위, 무역 규모 6위, 국가경쟁력 19위, 군사력 6위의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지만 정전 후 70년은 우리의 뼈를 깎고 살을 녹여 이루어 낸 기적의 결실이었다.

우리가 살아온 어둡고 슬픈 과거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 땅을 일궜고 우리가 지켜냈지만 앞으로 이 나라의 부흥은 다음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군사원호청(軍事援護廳) 발족 후 62년 만에 국가보훈부로 승격되어 보훈가족들의 오랜 꿈이 이뤄졌다. 국가보훈부의 수장인 보훈부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기념일에만 찾는 일회성 보훈이 아닌 일상 속 보훈문화로 정착시켜 보훈가족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 보훈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했으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존경과 기억, 그리고 배려의 보훈문화 확산을 기대해 본다.

정부에서 보훈연금을 올려주고 바닥 수준인 단체운영비를 현실에 맞게 지원해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의 희생을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우리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해도 우리의 후손들이 자긍심을 갖고 자랑스러운 할아버지로 오래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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