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 볼!] 또 찾아온 ‘1순위 빅맨’에 스퍼스 팬들은 설렙니다

장민석 기자 2023. 6. 29.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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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빅맨 1순위 계보를 잇게 된 웸반야마. 왼쪽은 로빈슨, 오른쪽은 던컨. / 스포팅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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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미 프로농구)에서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을 받는다는 것은 정말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날고 긴다 하는 수많은 유망주 중 첫 번째로 뽑힌 것이니까요. 지난 23일, 2023 NBA 드래프트가 열렸고, ‘세기의 재능’이라 불리는 빅터 웸반야마(19·프랑스)가 샌안토니오 스퍼스에 지명되며 1순위의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웸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웸반야마는 르브론 제임스 이후 최고 재능으로 꼽히는 선수입니다. 르브론이 작년 웸반야마의 경기를 보고 “그렇게 키가 크면서 움직임이 부드러운 선수는 본 적이 없다. 인간보다는 외계인에 가깝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미국 ESPN은 그에 대해 “NBA 역사상 가장 대단한 유망주”라고 평가했고, 영국 가디언은 “천 년에 한 번 나오는 신동”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웸반야마는 1순위 지명 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보지 못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226cm의 웸반야마에게 덩크슛은 식은죽 먹기다. / USA투데이 연합뉴스

자신만만하게 포부를 드러낸 웸반야마의 가장 큰 무기는 신체입니다. 그의 키는 웬만한 센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226㎝. 윙스팬(두 팔을 옆으로 벌렸을 때 길이)은 244cm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신체 조건을 자랑하는 선수죠. 키는 NBA 역대 6위, 윙스팬은 3위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웸반야마의 키와 윙스팬은 종종 그의 몸이 두 개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했죠.

웸반야마는 226cm의 큰 키에도 3점슛이 제법 정확하다. / USA투데이 연합뉴스

그는 그런 큰 키에도 마치 포워드나 가드처럼 드리블을 하고 3점슛을 쏩니다. 스텝백으로 외곽포를 꽂는 장면엔 입이 딱 벌어지죠. 그는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아 상대의 드리블 돌파 등을 막는 ‘가로 수비’에도 능합니다. ‘세로 수비’는 물론 말할 것도 없죠. 달려가서 상대 슛을 쳐내는 ‘체이스 다운 블록’이 일품입니다. 키에 비해 체중(95kg)이 덜 나가는 점이 아쉬운데 점차 체계적으로 몸무게를 늘려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5일 샌안토니오 스퍼스 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웸반야마. / AFP 연합뉴스

◇ 축복 받은 유전자의 소유자

2004년 프랑스 파리 서부 교외에서 태어난 웸반야마는 부모님께 많은 것을 물려받았습니다.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아버지는 키 198cm의 멀리뛰기 선수였죠. 키와 탄력을 두루 갖춘 유전자를 웸반야마는 아버지께 받은 셈입니다.

키 190cm의 어머니는 프랑스에서 농구 선수로 활약했습니다. 축복받은 유전자란 말이 절로 나옵니다. 현재 웸반야마의 누나인 이브도 프랑스 여자 농구 국가대표로 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농구 가족입니다.

11살 때 이미 키가 180㎝를 넘은 웸반야마는 15세였던 2019-2020시즌, 프랑스 프로농구 리그에 데뷔했습니다. 2022-2023시즌엔 34경기를 뛰면서 평균 21.6점 10.4리바운드 3.0블록슛을 기록했죠. 세 부문 모두 리그 1위입니다.

그는 시즌 최우수선수(MVP), 최고의 수비수, 베스트5 등 상을 싹쓸이했습니다. 연령 제한으로 프랑스 리그에서 뛰었던 그는 올해 만 19세가 되면서 NBA 입성 자격을 얻었습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팬들은 지난달 드래프트 순번 추첨 결과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게 되자 엄청나게 환호했습니다.

지난 20일 뉴욕 양키스에서 시구를 한 웸반야마. 손 안의 야구 공이 앙증맞다. / AFP 연합뉴스

2022-2023시즌 정규리그에서 22승 60패로 서부 콘퍼런스 최하위에 그친 스퍼스는 동부 최하위 디트로이트 피스턴스(17승 65패), 서부 14위 휴스턴 로키츠(22승 60패)와 함께 가장 높은 14%의 1순위 당첨 확률을 가지고 있었는데, 피스턴스와 로키츠를 제치고 행운의 주인공이 된 거죠. 당시 피터 존 홀트 스퍼스 구단주는 “기절할 정도로 기쁘다”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1999년 NBA 파이널에서 우승한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 / 조선일보DB

◇ 스퍼스 1순위 빅맨은 성공 보증수표?

웸반야마의 스퍼스 입성은 팀 역사로 볼 때 두 가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우선 스퍼스가 그동안 1순위로 지명한 초특급 빅맨의 계보를 웸반야마가 잇게 됐습니다.

웸반야마는 팀 역사상 세 번째로 1순위 지명이 된 선수입니다. 앞선 두 명은 데이비드 로빈슨과 팀 던컨이죠. 둘 다 스퍼스의 영구 결번 선수(로빈슨 50번, 던컨 21번)이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레전드입니다.

웸반야마가 기대대로 NBA를 지배하게 된다면 스퍼스의 1번 픽은 곧 ‘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빅맨’과 동의어가 됩니다. 로빈슨과 던컨이 그랬으니까요.

1967년 창단한 스퍼스는 20년 뒤인 1987년 처음으로 1순위 지명권을 행사하게 됩니다.

1986시즌 28승54패로 서부 미드웨스트 디비전 최하위를 기록하며 반등이 시급했던 스퍼스는 전미 최고 센터 유망주로 꼽힌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로빈슨을 선택하죠.

1987년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데이비드 로빈슨. / 트위터

미 해군에서 복무한 아버지를 둔 로빈슨은 우수한 성적으로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생도가 되고 나서 키가 15cm 이상 자라 213cm가 되어버렸죠. 키가 컸지만, 운동 능력을 잃지 않은 로빈슨은 대학 농구판을 휘저었고, 결국 스퍼스 유니폼을 입게 됩니다.

로빈슨은 아킴 올라주원과 패트릭 유잉, 샤킬 오닐과 함께 1990년대 4대 센터로 군림합니다. 하지만 이들 중 가장 늦게 파이널 무대를 밟았습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올라주원은 휴스턴 로키츠 유니폼을 입고 1993-1994, 1994-1995시즌 NBA 2연패(連覇)를 달성합니다. 올라주원의 1994년 파이널 상대가 유잉(뉴욕 닉스), 1995년 상대가 오닐(올랜도 매직)이었죠.

반면 로빈슨의 스퍼스는 1994-1995, 1995-1996시즌 정규리그에서 서부 미드웨스트 디비전 1위를 기록하는 등 좋은 성적을 이어갔지만, 번번이 플레이오프 무대에서 고배를 마셨습니다. 로빈슨이 ‘새 가슴’이란 이야기가 나왔고요.

10년 간격으로 1순위로 나란히 뽑혀 최강의 트윈타워를 이룬 로빈슨과 던컨. / 트위터

◇ 우승 청부사 던컨이 합류하다

로빈슨의 스퍼스에 의문 부호가 붙었을 때 든든한 지원군이 팀에 들어옵니다. 합류 과정도 극적이었죠.

스퍼스는 1990년대에 딱 한 번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했는데 그 시즌이 1996-1997시즌입니다. 로빈슨이 부상으로 6경기만 뛴 시즌이죠. 그런데 스퍼스가 20승62패로 처지면서 추첨 끝에 다음 시즌 1순위 지명권을 확보한 겁니다. 90년대를 풍미한 강호가 딱 한 시즌 못하는 바람에 찾아온 거대한 행운이었습니다.

그렇게 선택한 선수가 211cm의 센터 겸 파워포워드 던컨입니다. 대학은 꼭 마치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들어 웨이크포레스트 대학을 4년간 다닌 그는 대학 최강의 빅맨으로 꼽혔습니다.

1997-1998시즌부터 스퍼스에 합류한 던컨은 로빈슨과 함께 ‘트윈 타워’를 이룹니다. 선수 노조 파업으로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1998-1999시즌, 스퍼스는 서부 1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고, 에이스 던컨과 조력자 로빈슨의 활약에 힘입어 파이널에서 뉴욕 닉스를 꺾고 창단 후 첫 정상에 오릅니다.

이후엔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가 이끈 LA 레이커스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2000년부터 3년 연속 우승을 이뤄냈죠.

그리고 2003년. 던컨의 스퍼스는 레이커스와 댈러스 매버릭스 등을 플레이오프에 꺾고 파이널에서 뉴저지 네츠를 만납니다. 스퍼스가 4승2패로 네츠를 꺾으면서 로빈슨은 두 번째 우승 반지와 함께 행복한 은퇴를 맞습니다.

스퍼스에서 1순위 지명을 받은 던컨은 5개의 우승 반지를 끼었다. / 조선일보DB

던컨이 이끈 스퍼스는 2003년에 이어 2005년과 2007년에도 정상에 오르며 퐁당퐁당 우승을 일궈냅니다. 2005년에는 디트로이트 피스턴스를 4승3패로 꺾었죠. 던컨이 1999년과 2003년에 이어 생애 세 번째 플레이오프 MVP를 차지합니다.

스퍼스의 2007년 파이널 상대는 르브론 제임스가 이끄는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스퍼스는 4승 무패로 캐벌리어스를 제압했고, MVP는 토니 파커에게 돌아갔습니다.

스퍼스는 2013년, 6년 만에 다시 파이널에 올랐습니다. 르브론과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이른바 ‘빅3′가 버틴 마이애미 히트가 상대였죠.

이 파이널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승부가 됐습니다. 특히 2승3패로 몰려 있던 6차전에서 패색이 짙던 히트가 종료 5.2초를 남기고 레이 앨런의 극적인 3점슛으로 동점을 만든 장면이 기억에 납니다.

기사회생한 히트는 7차전에서 스퍼스를 물리치고 정상에 올랐습니다. 7차전 막판 2점 차로 뒤진 상황에서 손쉬운 득점 찬스를 날리고 코트를 내려치는 던컨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평소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그였기에 더욱 놀라운 장면이었죠.

2013년 파이널 우승을 히트에 내준 스퍼스는 다음해 다시 히트를 결승에서 만납니다. 그리고 이번엔 4승1패로 눌러버리죠. 플레이오프 MVP는 카와이 레너드였습니다.

스퍼스에서 다섯 차례 우승을 일궈낸 던컨은 2016시즌을 끝으로 19년간의 NBA 커리어를 마무리합니다. 1순위로 지명돼 스퍼스에서만 뛰며 전설이 된 그를 봐왔기에 스퍼스 팬들은 다음 넘버원 픽인 웸반야마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레전드 파커. / 트위터

또 하나 스퍼스 팬들이 기대를 거는 대목은 ‘프렌치 커넥션’입니다. 웸반야마는 프랑스 국적인데요. 스퍼스엔 이미 프랑스 출신 레전드가 활약한 바 있죠. 바로 토니 파커입니다.

파커는 2001년부터 18년을 스퍼스에서 뛰며 4개의 우승 반지를 꼈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 2007년 파이널 MVP가 파커였죠. 그의 9번도 스퍼스의 영구 결번입니다. 파커는 NBA 최정상급 가드로 활약하며 18시즌 평균 15.5점 5.6어시스트의 성적을 남겼습니다.

박찬호와 손흥민으로 인해 LA 다저스와 토트넘이 한국의 ‘국민 구단’이 되었듯 파커 덕분에 많은 프랑스인이 스퍼스를 응원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자란 웸반야마도 파커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퍼스 팬이 되었다고 합니다.

세기의 재능으로 꼽히는 웸반야마. / AFP연합뉴스

웸반야마는 지난 25일 스퍼스의 홈 구장 AT&T 센터에서 입단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로빈슨과 던컨, 마누 지노빌리, 숀 엘리엇 등 팀 레전드들과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며 “그들과 시간을 보내며 NBA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스퍼스는 던컨을 웸반야마의 멘토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풀타임 코치는 아니지만, 던컨이 정기적으로 훈련장을 방문해 웸반야마를 일대일로 지도한다는 것이죠. 파커와 지노빌리도 웸반야마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1984년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올라주원. / 트위터

◇ 환희와 실망이 교차하는 드래프트 1순위

웸반야마 이야기를 하다 보니 NBA 역대 드래프트 1순위의 역사가 궁금해집니다. 저 같은 40대 팬들이 알만한 시대인 1980년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참고로 1979년 드래프트에선 매직 존슨(LA 레이커스)이 1순위로 뽑혔습니다.

1980년대엔 1982년 제임스 워디(LA 레이커스)와 1983년 랄프 샘슨(휴스턴 로키츠), 1984년 아킴 올라주원(휴스턴 로키츠·당시 3순위가 시카고 불스의 지명을 받은 마이클 조던), 1985년 패트릭 유잉(뉴욕 닉스), 1987년 데이비드 로빈슨(샌안토니오 스퍼스) 등이 1번 픽을 받은 주인공들입니다. 모두 NBA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들이죠.

1순위가 곧 성공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에 의외로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한 선수들도 많습니다. 1989년 새크라멘토 킹스가 지명한 퍼비스 엘리슨이 대표적이겠네요. 엘리슨의 커리어 평균 득점은 9.5점에 그쳤습니다.

1992년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샤크. / 트위터

1990년대로 가보겠습니다. 1992년 샤킬 오닐(올랜드 매직)의 이름이 곧바로 눈에 띕니다. 1993년 크리스 웨버(올랜도 매직 지명 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로 트레이드), 1996년 앨런 아이버슨(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997년 팀 던컨(샌안토니오 스퍼스) 등이 향후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입니다.

90년대엔 1순위 실패작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선수가 1998년 LA 클리퍼스의 지명을 받은 마이클 올로워컨디입니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센터로 ‘제2의 올라주원’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올로워컨디는 커리어 평균 8.3점의 초라한 성적을 남기고 32세에 NBA 경력을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드래프트에서 이름이 불린 선수를 보면 마이크 비비(2순위·밴쿠버 그리즐리스), 빈스 카터(5순위·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지명 후 토론토 랩터스로 트레이드), 더그 노비츠키(9순위·밀워키 벅스 지명 후 댈러스 매버릭스로 트레이드), 폴 피어스(10순위·보스턴 셀틱스) 등이 있네요. 클리퍼스의 잘못된 선택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입니다.

1995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선택한 조 스미스도 저니맨으로 12팀을 전전했죠. 커리어 평균 득점은 10.9점. 그 당시 5순위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뽑은 케빈 가넷이었습니다.

2003년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르브론. / 트위터

◇ 듀랜트 거르고 오든? 조던의 흑역사는?

2000년대로 가볼까요? 1순위 10명 중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이는 2002년 야오 밍(휴스턴 로키츠) 한 명뿐입니다. 아무래도 현역 선수가 많아서겠죠.

2003년 1순위인 르브론 제임스(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는 NBA 통산 최다 득점 기록을 세우는 등 리그 역사를 대표하는 수퍼스타가 됐습니다. 2004년 드와이트 하워드(올랜도 매직), 2008년 데릭 로즈(시카고 불스), 2009년 블레이크 그리핀(LA 클리퍼스) 등도 한 시대를 풍미했죠.

2000년대엔 유난히 1순위 명성에 금이 가게 한 선수들이 많은데요. 특히 2005년부터 2007년까지는 ‘1순위 저주’란 말이 나올 만큼 절망적이었습니다.

2005년 밀워키 벅스에 지명된 앤드루 보것은 평균 득점 9.6점의 성적을 남기고 2020년 은퇴했습니다. 2005년 드래프트 최대 아웃풋은 4순위의 크리스 폴(뉴올리언스 호니츠)이네요.

2006년엔 이탈리아 출신 안드레아 바그냐니가 토론토 랩터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는 2016-2017시즌을 끝으로 NBA를 떠났죠. 2007년에는 ‘노안’으로 유명했던 그렉 오든이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1순위 지명을 받았습니다. 당시 보스턴 셀틱스와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오든을 차지하기 위해 고의로 순위를 낮추는 탱킹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트레일블레이저스가 5.3%의 낮은 당첨 확률을 뚫고 1순위를 차지하는 행운을 누렸죠.

이에 열 받은 셀틱스는 대규모 트레이드를 통해 케빈 가넷과 레이 앨런을 데려오며 폴 피어스와 ‘빅3′을 이뤘고, 2007-2008시즌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그렉 오든. / 트위터

어쨌든 NBA 역사를 바꾼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선택은 곧 최악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오든이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코트 위에 서질 못했기 때문이죠. 오든은 NBA에서 겨우 세 시즌 동안 105경기 출전에 그쳤고, 평균 8점을 넣었습니다. 당시 2순위가 케빈 듀랜트(시애틀 수퍼소닉스)였기에 포틀랜드 팬들은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겠죠.

드래프트 흑역사 중 하나로 꼽히는 2001년 1순위 콰미 브라운. / 페이스북

그래도 가장 유명한 실패작은 2001년의 콰미 브라운(워싱턴 위저즈)일 것입니다. 당시 구단주였던 마이클 조던의 눈에 들어 고교 졸업 후 곧바로 1순위를 거머쥔 브라운은 데뷔 첫해 4.5점을 넣었는데 이는 1972년 라루 마틴 이후 1순위 신인이 기록한 가장 적은 평균 득점이었습니다. 그는 7팀을 전전하다 평균 6.6점으로 커리어를 마무리했죠. 브라운은 지금도 조던의 흑역사로 자주 거론되곤 합니다.

2019년 드래프트 1순위로 뽑힌 자이언. / 트위터

◇ 대학 때가 더 유명했던 자이언

그럼 2010년대부터 지금까지 1순위 지명 선수들을 살펴보겠습니다.

2011년 카이리 어빙(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2년 앤서니 데이비스(뉴올리언스 호니츠) 외엔 아직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2014년 1순위 앤드루 위긴스(캐벌리어스), 2016년 벤 시몬스(세븐티식서스) 등은 팬들에겐 익숙한 선수입니다.

2010년대에도 최악의 1번 픽이 있습니다. 2013년 캐벌리어스가 지명한 앤서니 베넷이죠. 커리어 평균 득점이 4.4점으로 겨우 4시즌만 뛰고 NBA를 떠났습니다.

콰미 브라운과 그렉 오든을 능가하는 1번 픽으로도 꼽히는 선수죠. 2013년 드래프트는 전체적으로 흉작이란 평가를 받는데 그래도 수퍼스타는 나왔습니다. 당시 15순위로 벅스가 지명한 선수가 바로 야니스 아데토쿤보입니다.

2019년 드래프트 1순위 선수는 NBA 입성 때부터 수퍼스타였습니다. 뉴올리언스 펠리컨스가 선택한 자이언 윌리엄슨이었죠. 자이언은 듀크 대학 시절 이미 전국구 스타로 이름을 날렸는데요.

2019년 2월 라이벌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과 경기에서 자이언이 드리블을 하다 갑자기 넘어졌습니다. 카메라에 밑창이 찢긴 나이키 농구화가 비쳤고요. 자이언은 무릎을 쩔뚝이며 코트 밖으로 나갔고, 그날 미국 나이키의 주가가 1% 넘게 빠졌습니다.

듀크 대학 시절 경기를 하다가 나이키 농구화가 찢어진 자이언. / 조선일보DB

하지만 기대를 모았던 자이언은 지금 팬들에게 큰 실망을 안기고 있습니다. 2020-2021시즌엔 평균 27점을 넣으며 팀을 이끌었지만, 체중 관리에 실패하면서 2021-2022시즌을 통째로 건너뛰는 등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엔 성실하지 못한 훈련 태도로 지탄을 받고 있죠. 또 하나의 1순위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과연 웸반야마는 1순위에 걸맞은 활약을 펼칠 수 있을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웸반야마의 미래에 낙관적인 이유는 그의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그를 이끌 명장의 존재가 크기 때문입니다.

1996년부터 28년째 스퍼스를 이끄는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NBA 역대 최다승 감독(1366승)이면서 개성 넘치는 선수를 잘 다듬는 데 능한 지도자입니다. 포포비치는 “웸반야마는 훌륭한 기질과 지적 능력, 섬세한 감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며 추켜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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