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땅끝에서 깨달은 한옥의 글로벌 경쟁력

김선미 산업1부 차장 2023. 6. 2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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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게 된 데는 '박하경 여행기'라는 요즘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드라마 주인공이 처음 떠난 여행지가 한반도의 땅끝, 해남이었다.

디지털 소음에 지친 세계인이 원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한옥을 통해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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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산업1부 차장
전남 해남군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게 된 데는 ‘박하경 여행기’라는 요즘 드라마의 영향이 크다.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드라마 주인공이 처음 떠난 여행지가 한반도의 땅끝, 해남이었다.

해남에는 아름다운 사찰 두 곳이 있다. 주인공이 ‘마음 버리며 오르는 108계단’을 올라 템플스테이에 참여했던 미황사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대흥사다. 미황사 가는 길에 대흥사 입구에 있는 유선관(遊仙館)에 들러보았다. 2년 전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한 100년 넘은 우리나라 최초 여관의 안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선관은 한옥의 핵심 구조물은 남기되 각 방 안에 현대식 화장실을 두었다. 특히 창을 통해 두륜산국립공원의 숲을 바라보는 여관의 스파 시설은 주위 풍경을 끌어오는 차경(借景)의 백미다. “가만히 있어도 힐링이 된다”, “계절마다 오고 싶다”는 숙박 후기들이 이어진다.

대흥사 소유의 유선관은 사찰 숙소로 사용되다가 1960년대부터 외부 손님을 받았다. 그동안 수차례 운영권자가 바뀌며 원형을 잃어 약 3년간 폐가로 방치된 적도 있다. 이때 나선 이가 해남 출신 사업가인 한동인 현 유선관 대표다. 젊은 문화기획자, 건축가와 손잡고 유선관을 ‘해남의 감성 숙소’로 탈바꿈시켰다.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위스 건축가들, 아내와 함께 닷새를 묵은 원로 학자, 어렸을 적 가족여행을 왔거나 신혼여행을 왔던 지금의 중년들, 그리고 MZ세대들…. 한 대표는 말한다.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1993년 펴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을 통해 유선관을 널리 알렸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에게 유선관의 요즘 변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기쁩니다. 30여 년 전 유선관은 누추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 유럽의 고성에 묵는 경험과 같은 멋진 한옥 스테이가 된 겁니다.” 왜 젊은층이 한옥의 매력에 빠져드는 걸까. “우리 것에 대한 가치를 알게 된 거죠. 자랑스러운 삶의 체취,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것을요.”

한옥에 대한 젊은 세대와 외국인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내 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전북 고창, 경북 청송, 경남 하동에 이어 최근 전남 강진에 한옥 스테이를 열었다. 이 스테이의 초가집을 작업한 임태희 건축가는 말한다. “검소하고 소박함이 있는 집,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집을 생각하며 디자인했습니다. 전통을 재해석하되 한옥 본래의 정신을 잃지 않도록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 같습니다.”

유선관 툇마루에 앉아 보니 대흥사 계곡의 이끼 낀 바위 사이를 흐르는 물소리, 이마를 스치는 바람, 초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디지털 소음에 지친 세계인이 원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한옥을 통해 풍성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한옥의 마당은 소박한 미의식을 담고 있으면서 한국화의 여백처럼 누구나 ‘○○○ 일기’를 쓸 수 있는 해방의 공간이다. “인간적이고 생태적인 한옥을 세계문화로 발전시킬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김봉렬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제언은 그런 점에서 깊게 새겨볼 만하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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