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엽제 피해는 국가 범죄... 정부가 책임져야”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토론회]

한수진 기자 2023. 6. 28.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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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유증인줄 모르고 원인 미상 고통의 세월... 이제라도 피해보상 이뤄져 억울함 풀어야
파주, 지자체 첫 ‘민간 피해자 조례 제정’ 눈앞... 재발 방지 위해 구체적 실태 조사 ‘시급’
28일 오후 파주시 통일촌 주민대피소에서 열린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고엽제 민간인 피해 구제 관련 의견을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이상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이귀순 파주시 복지정책과장, 황필규 변호사, 서정민 박정 국회의원실 보좌관, 김상래 파주시 대성동 주민, 김영기 강원 철원군 생창리 주민. 조주현기자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전쟁의 상흔과 치유가 대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파주 대성동을 비롯한 비무장지대(DMZ) 일대가 고엽제로 뒤덮인 지 50년이 넘어가면서 고엽제 노출 민간인에 대한 피해 보상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런 가운데 28일 파주 통일촌 주민대피소에선 더불어민주당 박정 국회의원(파주을)과 파주시가 공동 주최하고 경기일보와 강원도민일보가 공동 주관한 ‘고엽제 민간인 피해자 지원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개최돼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고엽제 민간인 피해구제를 위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 김상래 파주 대성동 주민(고엽제 피해자)

수십년 전, 고엽제를 살포할 때는 몸에 어떤 악영향을 주는지 아무도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고엽제를 살포하고 나서 몸이 아팠을 때도 그 원인을 알지 못했었다.

당시 대성동 마을에는 많은 양의 고엽제가 뿌려졌기 때문에 비가 오면 농가와 밭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했고, 식수로도 이용됐을 것이다.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가 깔려 있지만, 옛날에는 흙길이었다. 비포장도로 위에 먼지가 나면 고엽제가 공기 중에 섞여 흩날렸을 텐데,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뛰어다니면서 고엽제 성분이 몸속으로 다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끔찍한 상황들을 우리 대성동 마을 주민들 모두가 겪었음에도 수십년째 이유조차 몰랐고, 이유를 알게 된 이후에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대성동 마을 주민들은 나이 든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까지도 안 아픈 사람이 없고 약을 달고 산다. 병원에 가도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다.

이처럼 우리는 고엽제가 흩뿌려진 마을에서 아파도 그 이유조차 모르고 평생을 살아왔다. 주변에도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돌아가신 주민들도 많다. 이제라도 피해보상이 이뤄져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줬으면 한다.


▲ 김영기 강원 철원군 생창리 주민(고엽제 피해자)

6·25전쟁 이후 DMZ를 중심으로 철책선 부근에 풀이 무성히 나 있었다. 당시 군인들이 와서 마을 주변으로 제초제라며 뭔가를 뿌렸는데 풀이 다 죽는 것을 봤다. 그 모습을 보고 단순히 ‘군인들이 가지고 있는 약은 효과가 좋구나’라고만 생각했다.

하루는 군인 2명이 와서 농약 치는 기계를 빌려 달라고 했다. 그래서 기계 3, 4개를 빌려줬더니 오후에 와서 남은 약을 밭에 뿌리면 잡초가 다 죽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때는 뭔지도 모르고 제초제라는 말만 듣고 남아있는 약을 물에 타서 손으로 ‘휘휘’ 저어 밭에 뿌렸다.

한 해 두 해 지나니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병원에 갔는데 원인을 찾을 수가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 마을 주민들도 같은 증상을 호소했지만 멀리 있는 병원까지 왔다 갔다만 할 뿐,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한 피부질환 탓에 두피에 약을 바르고 있다. 습진 탓에 참지 못하고 긁어 아직까지도 상처가 곳곳에 남아있다.

군 복무도 마치고 애국심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왔는데, 국가에 순응한 결과가 재앙만 가져다줬다는 생각이 든다.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라도 속도가 붙는 것 같아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 이귀순 파주시 복지정책과장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남과 북으로 각각 2㎞씩 떨어져 비무장지대라는 완충지대를 중심으로 북에는 기정동 평화의 마을, 남에는 자유의 마을 대성동이 형성됐다.

고엽제 피해는 고엽제후유의증 등 환자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상 월남전 참전 군인과 남방한계선 인접지역 근무 군인에게만 해당되는 일이라 여겼는데, 대성동 주민들에게도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경기일보’의 첫 보도로 세상에 드러났다.

주한미군은 북한의 1·21사건 이후 ‘식물통제계획’이라는 작전계획을 세워 1967년 시범살포를 시작으로 1968년 5월부터 본격적으로 고엽제 원액 315드럼 분량을 철책선 전방 100m와 전술도로 주변 30m 주변에 집중적으로 살포했다.

이제라도 정부는 이 시기에 남방한계선 인접지역에 거주했거나 거주 중인 민간인들의 고엽제 피해 실태를 조사해야 하며, 이에 상응한 보상을 해야 한다.

이에 파주시는 지난 5월8일 대성동마을 고엽제 피해지원을 위한 정책을 발표했으며, 고엽제전우회 파주시지회에서는 파주시의 정책을 적극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시는 정부의 관련법 개정 후 시행까지는 상당 기간 걸린다는 사실과 피해 주민들의 고령과 질환 등으로 보상의 시급성을 감안, 피해지원을 위한 지원 근거를 조속히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 6월12일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파주시 고엽제후유증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지원 조례’를 제정해 입법예고했다.

국가가 조성한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받은 피해인 만큼 정부가 보상에 적극 나서서 책임져 줄 것을 부탁드린다.


▲ 이상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파주시가 민간인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해 조례제정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나서 시작한 조례가 통과된다면 역사적으로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엽제 피해는 국가 범죄이자 국가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고엽제가 살포된 사실에 대해 국가보훈청(현 국가보훈부)과 한국 정부는 피해사실을 인정하고 지난 1993년에 관련법을 제정했는데, 지원 대상자가 군무원과 군인으로 한정됐다. 민간인 피해자들을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고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우선적으로는 피해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 당시에 고엽제를 얼마나 살포했으며, 지역이 어느 정도이고 그 당시 주민들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까지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 피해자들이 평생 동안 겪은 호흡기질환, 피부병 등에 대해 파악하고 다른 피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번에 파주시에서 추진하는 조례는 이런 사실 확인과 피해 구제를 위한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 고엽제 피해자 중에는 고령인 분들이 많기 때문에 구체적인 조사가 가장 시급하다.

한수진 기자 hansujin0112@kyeonggi.com
오민주 기자 democracy555@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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