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줄일 AI, 환영할 일” “AI가 노동 지식 침범 땐 우려”[2023 경향포럼]

노도현·박순봉 기자 2023. 6. 28.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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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송길영·사이토·파텔·이유진·유정길
송길영 “도래한 것에 대응 모드로 가면 근원적 해결책 안 돼”
유정길 “기후 문제는 미래 세대에게 물어보는 시스템 필요”
이유진 “자본주의 한계 화두 속에 더 많은 공공성 얘기해야”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라즈 파텔 텍사스대 오스틴 정책대학원 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유정길 녹색불교연구소장(왼쪽 두번째부터 오른쪽으로)이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경향포럼>에서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왼쪽)의 진행으로 ‘모두의 번영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성장 일변도의 기존 경제 시스템은 한계에 부딪혔다. 경제 불평등 심화로 정치·사회 갈등이 깊어지고, 기후위기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더 이상 미래 세대의 문제로 남겨둘 수 없는 상태다. 최고 가치로 여겨졌던 ‘성장’의 반대말, ‘탈성장’이 새로운 가치로 주목되는 배경이다.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종합문화연구과 교수, 라즈 파텔 텍사스대 오스틴 정책대학원 교수,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이사, 유정길 녹색불교연구소장은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3 경향포럼>에서 ‘모두의 번영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기후위기 속 새로운 돌파구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진행은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바이브컴퍼니 부사장이 맡았다.

토론자들은 탈성장이란 급격한 방향 전환을 이루지 않고서는 불평등, 기후위기 문제에 대처하기 어렵다고 봤다. 또 챗GPT 같은 새로운 기술을 끌어안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했다.

송길영 = 오늘 다른 연사들 강연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

이유진 = 한국에서 여론조사를 해보면 80% 이상이 기후위기가 심각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그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부담이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야기들은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석탄발전소를 본격적으로 폐지한 적 없고, 내연기관차 관련 기업들이 문을 닫아 실업 문제가 가중되지도 않았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았다. 그 부담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문제가 남는다. 역으로 일본이나 미국에선 사회적 전환 부담과 비용을 치르면서 어떤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쭤보고 싶다.

사이토 = 일본에서 탈성장이 대대적으로 발생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지 질문을 받곤 한다. 안타깝게도 대답은 ‘아니다’이다. 탈성장이 전면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고, 정책으로 구체화되지도 않았고 정치인들은 성장만 얘기한다. 일본 정치인은 대부분 남성이고, 사회는 굉장히 보수적이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한계, 성장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다. 2008년 경제위기 후에 어느 정도 논의가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다시 한번 사람들이 깨달은 것 같다. 그런데 정의롭고 평등한, 다른 사회의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는 게 일본의 문제다.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당면한 이 세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한다. 일본 내에서 구체적인 예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글로벌 사우스(남반구)에서의 운동 등을 언급하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낭만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송길영 = 변화는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사회에 큰 충격이 가해질 텐데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가.

사이토 = 기후위기다. 코로나19처럼 해가 지나 백신이 생겨서 사라지는 위기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만성위기이고 더 악화될 것이다. 여기에 인플레이션, 난민, 전쟁 등 사회경제적 불안정성과 혼란이 점점 더 가중될 것이다. 오늘 오전 강연에서 루비니 교수님의 분석에는 동의하지만, 민주주의적 자본주의라는 결론에는 반대한다. 위기는 인지하고 있는데 해법이 약하다. 위기는 너무 다중적이고 심각하다. 유토피아적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면서 급진적인 표현을 도모해야 한다. 우리가 준비하지 않는다면 상황이 악화되고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

파텔 = 전적으로 동의한다. 기후위기는 ‘아, 접니다. 제가 바로 기후위기예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기후위기는 결국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권력체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010년 러시아에서 큰 산불이 연달아 발생했다. 러시아가 자유시장 방식으로 농업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상기후가 나타날 가능성이 30배 높아진 결과다. 곡물 가격이 급등하면서 밀을 재배하진 않지만 빵을 주식으로 하는 모잠비크에선 폭동이 일어났다. 경찰이 실탄을 발사해 식량배급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던 많은 여성이 사망했다. 이게 기후위기의 모습이다. 기후위기는 젠더, 인종, 식민주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서로 교차돼 있고, 모든 위기는 본질적으로 다중위기다.

송길영 = 젊은 사람이 헌혈을 하고 연배가 높은 분이 수혜를 받는데,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혈액 수급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 나온다. 사회 규칙이 조금만 변하더라도, 어떤 건 예상할 수 있지만 상상 못하는 큰 변화가 올 수도 있다.

이유진 = 사람들이 기후위기를 모르거나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데 우리는 왜 기후위기에 반응하지 않을까, 저의 화두는 이것이다. 우리가 준비해서 전환할 때는 충격과 고통을 줄일 수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딪쳐서 짧은 시간에 뭔가를 해야 될 때는 못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 2050년 전에 60개 가까운 석탄발전소를 줄여야 하는데, 각각 400~500명의 노동자가 있다. 정규직도 있고 비정규직도 있고, 청소하는 지역 여성 노동자도 있다. 우리가 가야 되는 사회로 가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져야 할 짐이 다르다. 감당해야 하는 짐들과 풀어야 하는 숙제가 무엇이 있는지를 써가면서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 사회는 이런 논의를 할 장이 없다.

유정길 = 기후 문제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인들은 선거 기간만 책임진다. 기후·환경 문제는 100~200년인데 선거는 4~5년이기 때문에 개발 공약을 건다. 기업들은 어떤가. 당기순이익에 따라 1년 단위로 움직인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생명을 보전하는 의사결정을 할 것인가. 대의민주주의에서는 현재 살고 있는 성인 남녀의 의사결정에 따라 개발 권한이 주어진다. 미래에서 빌려 쓴다면, 미래 세대에게 물어보고 개발해야 되는데 레토릭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는 그러지 않고 있다. 이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장기성을 보장하는 의사결정을 하기 어렵다.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사이토 = 탈성장에 마르크스 관점이 필요하다. 근로계층 노동자 운동, 노조주의, 환경주의 사이에 연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태적 제품을 구매하고 유기농 채소, 비건 라이프 스타일이 중요하다, 친환경 냉장고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비싸지 않나. 패스트 패션이 나쁘다 얘기하는데 이건 싸다. 환경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건 노동자들이 듣기에 엘리트주의나 중산층 이야기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이런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은 녹색성장, 그린 뉴딜, 그리고 임금을 높이고 노동자들도 더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다면 노동자들과 환경주의자들도 연대할 수 있을 것이고 식민지나 남반구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있다.

송길영 = 최근 생성형 AI가 도래하면서 AI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행하는 게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AI 도래가 성장이나 번영 키워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사이토 = 챗GPT가 화두인데, (AI 기술 발전은) 우리가 더 이상 일을 안 해도 된다는 의미인데 왜 두려워할까. 제도의 문제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무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제도가 아니라면, 무한 이익을 추구하는 제도가 아니라면 우리는 이 기술을 활용해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사람이 필요한 교육, 돌봄, 요리 등 노동집약적인 분야의 일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 화이트칼라 일자리 없어진다면 오히려 사람들이 더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될것이다. 그러면서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AI가 발전하면 우리 데이터를 빼다가 이익 추구를 위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 쓸 것이다. 그건 위험하다.

파텔 = 나 역시 AI 걱정 안 한다. 사이토 교수님 말씀대로 AI가 완벽하게 트레이닝을 받아서 진짜 힘든 노동을 대신할 수 있다. 하지만 (AI가) 카메라가 아니라 엔진이 될 때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할 때다. AI가 농약 뿌리는 일은 잘하면서도 원주민과 농민들의 지식을 침범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사회적인 변화, 우리가 AI에 항복하는 일이 발생할 때 말도 안 되는 경제구조가 생길까 걱정된다.

송길영 = 도래한 것에 대해서 대응하는 모드로 간다면 근원적인 해결책 내기가 어렵다. 30년 전에 했어야 되는 일을 안 하고 미뤘다는 것이다. 30년 후 미래는 어떻게 될까.

사이토 = 더 이상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거다. 기후위기는 불가역적이기 때문이다.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들은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취약계층, 소외계층이 느끼는 건 훨씬 클 것이다. 우리 아이들, 손주들은 어떤 일을 겪을까를 상상해봐야 한다. 총체적이고 효용적인 아이디어가 크게 ‘탈성장’이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더 지속 가능한 삶, 평등한 삶을 위한 방식이 아니다.

이유진 = 오늘의 화두가 자본주의 한계인데, 대통령 연설을 보면 자유가 너무 많고 돌봄 복지도 시장에 맡긴다고 한다. 코로나19 이후 상황만 봐도 그간 간호사들의 헌신에 관해 엄청나게 얘기했지만 지금은 필수노동이 어떻게 대우받나. 한국은 지금 정반대로 가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공공성을 얘기해야 한다. 집, 공공적 교통, 먹거리 등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것들에 대한 공공 정책 자원이 투입돼 안전망을 갖추도록 해줘야지 그다음 단계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유정길 =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좌절과 고통을 겪고 부모와 할아버지 세대를 향한 적개심, 분노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사회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도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명확한 전환을 하지 못한 채 조금씩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다 놓쳤다. 탈성장에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나마 제일 나은 단어다. 단절의 메시지가 이구동성으로 나올 필요가 있다.

노도현·박순봉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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