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비용을 감추며 성장, 상호 돌봄으로 생명 가치 되찾자”[2023 경향포럼]
경제 시스템에 가려진 비용
모든 것이 ‘싸구려’로 전락
돌봄, 약자에 부담 전가 우려
협동조합 등 대안 모색 필요
“자본주의는 제대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라즈 파텔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 정책대학원 교수(51)는 28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성장을 넘어-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열린 <2023 경향포럼>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후위기, 식량물가 상승 등 오늘날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위기는 자본주의가 감춰온 비용 때문”이라면서 “자본주의는 세계를 싸구려로 만듦으로써 작동해왔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간접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를 숨기려 자연·돈·노동·돌봄·식량·에너지·생명 등 7가지 요소의 가치를 저렴하게 후려쳐왔다는 것이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저자이기도 한 파텔 교수는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B), 유엔 등 다양한 국제기구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아왔지만, 결국 제도권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모든 일을 그만두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파텔 교수는 ‘치킨’을 예로 들어 자본주의가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비용에 대해 설명했다. 치킨을 만들려면 공장식 사육으로 ‘자연’을 손상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저렴한 ‘노동력’이 필요한데, 노동자들이 이 과정에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당하게 되면 ‘돌봄’이 필요하다.
또 저렴한 치킨을 만들려면 저렴한 ‘돈’이 있어야 한다. 자본가나 엘리트 계층은 은행에서 거의 무한대로 신용한도를 인정받아 저금리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닭을 키우기 위해 가스와 같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저렴한 ‘생명’도 필요하다. 미국의 치킨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대부분 아프리카계, 라틴계, 아시아계로 백인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파텔 교수에 따르면 이처럼 자본주의는 자연과 노동력을 저렴하게 착취하면서 성장해왔다. 노동력을 더 저렴화하기 위해 저렴한 돌봄과 저렴한 식량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생명이 저렴해져야 한다.
파텔 교수는 이 같은 현실을 바꾸려면 궁극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케어하는 돌봄”이 필요하다면서 “서로와의 관계, 지구와의 관계, 나아가 우리 주변 세상과의 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영국의 국립보건서비스(NHS)를 모범적인 사례로 들었다. 파텔 교수는 “NHS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자들에게 내가 아플 때 국가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준 곳”이라고 말했다. 복지 지출을 큰 폭으로 삭감한 마거릿 대처 정부 이후 잇단 재정 감축의 시기를 겪었음에도 NHS라는 현대 의료 시스템 실험은 여전히 ‘가능성의 신호’로 남아 있다.
파텔 교수는 특히 급속한 고령화를 겪고 있는 한국에서 앞으로 “누가 돌봄을 담당하게 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급 돌봄 노동을 하는 시간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4배 이상 많았다. 돌봄의 문제가 사회적 약자들에게 쉽게 떠넘겨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에는 불평등이 너무 만연해 있다”며 “가부장적 구조가 계속 유지된다면 (돌봄이) 결국 여성의 몫으로만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파텔 교수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상호 돌봄’이다. 그는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로 상호 돌봄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는 자신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친구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으로 일하고 공동으로 케어하며 공동으로 육아시설을 이용하는 등의 예를 들었다. 파텔 교수는 “자본주의에는 대안이 없다고 여겨지지만, 협동조합 등을 통한 상호 돌봄이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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