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세수 부족에도 건전재정 기조 강조… 복지 지출 위축 우려 목소리
정부가 세수 부족이 예상되고 있는 상황에도 국가재정전략회의를 통해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한 것은 국가부채 증가를 억제하지 않으면 향후 재정의 건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현재 국가채무 수준이 선진국 대비 높지 않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을 거치면서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가팔라진 데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 고령화로 향후 재정 여건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28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이날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는 건전재정 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는 가운데 민생회복과 경기 활력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지난 정부에서 국가채무가 400조원 가까이 폭증하고, 올해 말 1101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국가채무의 가파른 증가세가 국가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치기 전에 건전재정 기조를 확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50조원 이상 초과 세수가 발생한 것과 달리 올해와 내년 예상보다 세수가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됨에도 정부는 임기 내내 건전재정 기조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재정전략회의는 내년 예산안과 향후 5년간 재정 운용 방향을 논의하는 정부 최고급 회의체다.
건전재정 기조 안착을 위해 정부는 각 부처의 모든 예산 사업을 ‘제로베이스’에서 심사한다는 계획이다. 도덕적 해이 등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 국고보조금 사업은 내년 예산부터 삭감 또는 폐지하는 한편 재정 투입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도 적극 모색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국비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와 민간 주도로 지역 발전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중앙정부는 규제 완화 등을 지원해 민간 자본 투자를 유인하는 방안이 회의에서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단기적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 과감한 연구·개발(R&D) 투자가 이뤄지도록 국가 투자 전략을 개선하고, 국격에 맞춰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도 확대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에도 꼭 필요한 분야에는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내년에도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겠다”면서도 “국가의 본질적 기능·미래 대비·약자 복지에는 재정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재정운용방침이 장밋빛 청사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건전재정만 강조할 경우 자칫 복지 지출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재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세수입은 134조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33조9000억원 줄었다. 앞으로 지난해와 같은 수준으로 세금이 걷힌다고 해도 올해 세수는 362조원으로 당초 정부가 세운 세수 전망치(400조5000억원)에 39조원 가까이 모자란다.
문제는 법인세 인하 등 지난해 세제개편과 올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 등을 통해 실시된 각종 감세 효과로 내년에도 세수 여건이 좋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통과된 개정세법에 따라 2023~2027년 동안 64조4081억원(연평균 12조8816억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또 국가전략기술 사업화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15~25%로 상향되는 등의 영향으로 2027년까지 연평균 7624억원의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정부의 예측대로 ‘법인세 등 감세 정책→기업 투자 확대 및 이익 증가→세수 확충’의 선순환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세수 부족이 만성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덜 걷히면 복지 확충은 사실상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 등 14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성명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자산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는 우리 사회에 적극적 재정 운용을 통한 복지 지출 확대는 그 어느 때 보다 시급한 요구인데 정부는 긴축 기조를 강조하며 재벌 대기업이 응능부담해야 할 세금을 깎아주는 데 급급하다”면서 “시민의 삶의 질 향상과 공공성을 강화할 예산을 확실하게 반영하고 편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종=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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