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제 탈성장과 지속 가능한 세상을 얘기할 때다
많은 선진국들이 1~2%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공급망 위기와 높은 인플레이션율, 기후위기, 불평등 심화가 겹쳐 삶이 더 어렵다. 한국은 낮은 출생률과 높은 자살률도 안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경향신문이 28일 세계 석학들을 초청해 개최한 경향포럼이 대안적 관점을 제시해줄 수 있다. ‘성장을 넘어-모두의 번영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한 이번 포럼의 핵심어는 ‘탈성장’이다.
탈성장은 경제성장에 집착하지 않고 국내총생산(GDP)에 잡히지 않는 삶의 문제를 들여다보자는 취지다. 성장은 더이상 가능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주류 경제학자인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명예교수는 탈냉전 후 30년간 이어진 세계 경제의 안정기는 2008년 금융위기로 끝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0에 접근하는 각국의 잠재성장률을 보면 탈성장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탈세계화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며 예전 같은 성장률 회복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그는 여전히 많은 세계 인구가 극빈층에 속한 현실에서 모든 나라가 성장을 포기할 순 없고, 기술의 도움과 진보적인 사회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본의 생태사회주의자 사이토 고헤이 도쿄대 교수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50년 GDP와 탄소배출량이 연동돼 움직인 경향을 제시하며 ‘녹색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전기차에 투자하기만 하면 기후위기를 막으면서 성장도 하고 불평등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유층에 중과세하고 대신 대중교통, 돌봄 등 공유재에 재원을 더 배분해야 한다고 했다. 인도의 생태여성주의 활동가 반다나 시바 박사는 성장해야 할 것은 GDP가 아니라 산림, 강, 토양, 생물 다양성, 아이들, 공동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구의 일부이고 주인이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상위 1%가 세상을 좌우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라며 급진적 직접민주주의 실험, 소농에 의한 농업을 더 장려해야 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경제를 축소해야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기후위기의 시급성, 갈수록 심화하는 불평등, 풍요 속에서도 커져가는 불행함을 고려한다면 멈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년마다 아이폰을, 5년마다 자동차를 바꾸는 삶의 양식”을 계속 유지하면서 지구가, 인간이 온전히 남아 있기를 바라는 생각 자체가 유토피아에 가깝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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