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열린 '글로벌 팩트 10'... "사실은 중요하다"
세계 최대 팩트체크 컨퍼런스인 ‘글로벌 팩트 10’이 28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성황리에 개최되며 사흘간 일정에 돌입했다. 이날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축제’엔 74개국 550여명이 참석하며 2014년 행사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를 보였다. 개막 직후 기조발표를 비롯한 여러 패널토크, 사례발표 등이 이어지며 학습의 장이자 연대의 기회로서 의미를 더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와 SNU팩트체크가 공동 주최한 행사는 이날 오전 환영 및 개회사로 시작됐다. 미국 매체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 편집장인 글렌 케슬러 IFCN 이사는 인사말에서 “많은 거짓말과 허위정보가 정교한 기술과 도구를 통해 확산하며 진실과 거짓의 경쟁이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다”며 “때로 팩트체커들은 공격받지만 높은 기준과 명확한 근거에 기반한 팩트체크는 결국 독자들에게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앤지 홀란 IFCN 신임 디렉터는 “많은 국가에서 팩트체커와 언론인이 자신의 일을 했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있는데 결속력을 더 다질 필요가 있다”며 “우린 대중들이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게 도울 수 있다. 우리의 도전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공동의 목표와 사명을 위해 나아가자. 사실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은령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SNU팩트체크센터장은 이날 개회사에서 “글로벌 팩트의 서울 개최는 한국 언론 역사에서도 중요한 기점이지만, 특별한 역사적 정치적 경험을 가진 아시아 각국의 팩트체커들에게 뜻깊은 일”이라며 “(식민지배, 독재지배를 겪은) 아시아의 경험은 사실 추구라는 공통의 목적에 특별한 스펙트럼을 더한다. (중략) 미국의 언론인들이 객관주의 원칙으로 ‘오직 사실만’을 외칠 때 한국의 기자들은 식민 정부의 불의를 폭로하고 동포를 구하는 것으로 기상의 목표로 삼아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언론에 대한 시민 신뢰가 추락하는 양상 속에서 허위정보와 맞서야 하는 팩트체커들의 어려움을 언급, “허위정보에 대처하려는 모든 사람들이 모였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허위정보에 대항하는 사회 능력을 높이자. 열심히 공부하고 뜨겁게 연대하자”고도 말했다.
이어진 기조 발표에선 이은주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가 <힘겨운 싸움?: 허위정보 대응의 도전과제“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발표는 팩트체크 메시지를 접한 이용자의 강한 확증편향이 사실 인식이나 정보공유 의사, 이슈의 중요성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팩트체커들로선 ‘팩트체크에 무슨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담고, 또 어떻게 전달하는 게 사람들의 인지편향을 고려할 때 효과적일 수 있는지’에 대해 팁을 얻을 수 있는 자리였다.
예컨대 이 교수는 유해성이나 위험만을 강조하는 것보다 간단한 실천방법 등을 제시하는 식으로 효용감을 줬을 때 실제 행동이 바뀔 여지가 더 크다는 점을 설명하며 허위정보의 위험성만을 강조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성찰할 지점을 언급했다. 그는 “허위정보의 유해성과 함께 허위정보에 맞설 구체적인 방법을 접했을 때 사람들이 진실을 판단하는 데 더욱 효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참’과 ‘거짓’이란 결론을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현재 일반적인 팩트체크 콘텐츠의 방식이 확증편향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내용도 나왔다. 연구는, 똑같은 팩트체크이지만 말미에 결론을 ‘명시적으로’(explicit) 보여주고 아니고의 차이만 두고 정치 성향에 따른 참여자 반응을 살폈다. 그 결과 명시적으로 판정을 보여주는 방식이 심리적 저항을 유발해 오히려 확증편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아울러 팩트 체크 주체가 전문가나 크라우드소싱일 때보다 인공지능일 때 부분적으로 확증편향이 완화되는 내용도 전했다.
이날 오후 패널 세션에선 <독립성, 신뢰성, 협업을 아울러 한국의 팩트체킹 발자취를 조명하다>는 주제로 한국 팩트체킹의 현주소를 살피고 개선에 필요한 노력을 논의하는 자리가 진행됐다.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사회로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 최원석 미디어정보리터러시 오픈 네트워크 CEO 및 연구원, 이경원 SBS 기자, 정은령 SNU 팩트체크센터장이 토론에 참여했다.
현재 팩트체크 일을 하고 있는 이경원 SBS 기자는 한국 팩트체크 저널리즘 독립성을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정치 양극화’란 사회적 환경을 언급했다. 지난해 대선 토론회 당시 보수 후보 발언 7개, 진보 후보 발언 7개 등을 검증한 자신의 경험을 든 그는 “팩트체크 저널리즘은 적어도 기계적 균형 문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대안을 연상하기 어려웠다”며 “팩트체크의 질보다 정치적 균형을 우선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진영 양극화가 극심한 현실에서 정치 팬덤으로부터 팩트체커가 공격 당하고, 정치권이 비난 수준의 검증을 팩트체크 이름으로 유포한 사례 등에 대해 “팩트체크를 정파 저널리즘의 도구로 여기는 것”이라 진단했다.
박태인 중앙일보 기자는 “한국 정치에서 가장 범람하는 단어가 ‘가짜뉴스’ 아닐까 싶다”면서 “진영이 다른 이들이 서로를 공격할 때 주로 쓰다보니 허위조작정보란 다소 어려운 개념의 단어보다 가짜뉴스가 통용되고 있다”고 했다. 이 맥락에서 가짜뉴스 논란이 소송전으로 귀결되고 “가짜뉴스, 즉 진실의 판정 여부를 언론이 아닌 검찰과 법원 엘리트의 권위에 기대”며 ‘진실 판정의 사법화 현상’이 나타난다고도 했다. 박 기자는 신뢰면에서 팩트체크가 위협받는 부분으로 ’논란형 기사‘의 양산을 말하기도 했다. 특정 사안이 벌어졌을 때 실제 팩트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니 우선 ’논란이다‘라고 쓰는 현상이 거의 모든 뉴스 영역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원석 연구원은 “팩트체크 저널리즘의 중요성과 신뢰성을 강조하는 일”을 한국 상황에서 특히 주목할 과제로 꼽았다. 주요 매체 뉴스가 포털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고 이 구조 밖에서 수많은 인플루언서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신뢰도의 정보를 빨리 많이 콘텐츠로 발행하는 게 현재 우리의 문제라고 봐서다. 그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 강화 중요성을 강조하며 언론사에 “보도 혹은 팩트체크 콘텐츠를 저널리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하게 소개”하고, 팩트체크팀과 팩트체커 역시 공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브랜딩해서 주목도를 높이”라고 제안했다. 또 “사실 검증의 맥락과 과정을 청소년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작성해 달라”고도 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언론사 간 협업, 플랫폼과 협업, 시민과 협업을 함께 제안했다. 그는 언론사들은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지만 코로나19 초기 하나의 검증 대상에 관해 5개 언론사가 각기 검증해 동일한 결론에 이른 사례가 있다면서 “공동체를 위해 협업한다는 공적 가치를 추구한 언론사에 대한 물질적, 비물질적 보상이 주어진다면 좀 더 추진력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플랫폼과 팩트체커들의 관계는 감시하면서도 지원하는 관계”이고 “시민들과 팩트체크를 하는 언론인들이 더 많이 접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IFCN 공동설립자인 빌 아데어 듀크대 실용저널리즘 및 공공정책 석좌교수가 대학교 강의실 하나에 모인 팩트체커들로 시작해 현재에 이른 감회를 얘기하는 <글로벌 팩트가 걸어온 지난 10년애 대한 회고>, 6명의 언론인이 버스 한 대로 40일 간 20개 교외 지역을 다니며 노년층 시민들을 교육한 <불로버스: 미디어리터러시 버스를 타고 스페인 곳곳을 이동하다> 사례 발표, 그 외 플랫폼 업계와 학계를 비롯해 팩트체크에 애쓰는 다양한 집단이 참여한 10여개 분과회의가 진행됐다. 올해 10회를 맞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글로벌 팩트 10’ 행사는 이날을 시작으로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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