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으로 항저우 국가대표’된 오른손잡이, 사격 이원호
20여 년간 총을 들었던 오른팔 대신, 왼 팔로 방아쇠를 당겨 최고가 된 동화 같은 사연. '포스트 진종오'를 넘어 '사격계 전무후무한 존재'를 꿈꾸는 남자 사격 공기권총 국가대표 이원호(23·국민은행)의 이야기다.
■ "국물을 떴는데, 입에 숟가락만 들어왔어요."
201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오른팔이 떨리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전국대회 3관왕을 차지하며 '사격 신동' 소리까지 들었던 오른손잡이 선수 이원호는 당황했다.
"총은 물론이고, 다른 물건을 들 때도 오른팔이 떨렸어요. 나중에는 증상이 심해져서 오른쪽 상반신이 전부 덜덜 떨리더라고요."
떨리는 이원호의 오른팔과 총은 표적지 중앙을 쏘지 못했다. 팔은 팔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요동쳤다.
부산 지역에 용하다는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녔지만, 치료법은 없었다. 어떤 병원에서는 근육 문제라고 했고, 또 다른 병원에서는 신경 이상이라고 했다. 심리적 원인을 진단한 곳도 있었다.
■ 마음을 바꾼 한 마디, "쟤 왜 저렇게 쏴?"
결국 선수 생활의 끝을 각오한 대통령경호처장기 대회. 흔들리는 오른팔을 어쩌지 못해 마지막 시합마저 포기하려던 이원호의 귀에 가슴을 찌르는 말이 들렸다.
"시합하면서 기권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관중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쟤는 총을 왜 저렇게 쏴?' 라는…."
마침 자신도 모르게 대회장을 찾은 부모님 앞에서 이원호는 되뇌었다. '이대로는 못 그만두겠다고, 그만두더라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고.
"왼손으로 총을 쏴보자"라는 비현실적인 조언에 이원호는 선수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다. 부산 온천중 시절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하던 이원호의 비범한 사격 감각을 알아본 은사 권영희 감독이 내민 '입스' 해결책이었다.
선천적 한계를 깨보기로 한 이원호의 선택과 노력은 주효했다. 쓰지 않던 왼쪽 눈과 왼쪽 팔은 이원호의 진심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권총의 두 배 무게의 아령을 수없이 든 덕에, 왼 팔은 떨림 없이 권총을 지탱했다. 20년 가까이 '주시(主示)'가 아니었던 왼쪽 눈으로도 다행히 표적지가 잘 보였다.
몸의 방향을 바꿔 총을 쏜 지 6개월째가 되던 2019년 여름, 왼 팔로 전국대회인 봉황기 2위에 오르며 이원호는 진짜 왼 팔 사격 선수가 됐다.
■ 아시안게임 앞두고 찾아온 성장통, "진종오 형처럼 즐길게요!"
지난 3월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평균 580점(600점 만점)을 쏴, 1위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오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이원호의 메이저 국제대회 데뷔 무대가 될 전망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큰 국제대회 참가는 처음이죠. 새로운 경험이니까 설레고 재밌을 거 같아요. 기대되기도 하고요.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입니다."
왼손 사격 5년 차인 올해 이원호는 남자 공기권총 10M 종목의 국내 최강자가 됐지만, 아직 성장해야 할 부분도 있다. 오늘(28일)경남 창원 국제사격장에서 펼쳐진 국내 최대 사격대회인 한화회장배 전국 사격대회에서 이원호는 573점을 쏴 19위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올해 평균도 582점이 돼, 시즌 랭킹 1위 자리를 소속팀 동료 임호진(평균 584.25점)에게 내줬다.
함께 이 대회에 출전한 한국 사격의 레전드 진종오는 이원호를 직접 찾아 "앞으로 국가대표로서, 실력자로서 받아야 할 관심을 잘 이겨내는 게 중요하다. 이미 사격 실력은 충분하니 더 잘하려는 마음보다, 관심과 응원으로부터 기를 얻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며 애정이 담긴 조언을 건넸다.
이원호 역시 "크게 컨디션이 나쁘진 않았지만, 약간 긴장이 되기도 했다"며 "진종오 형의 조언처럼 대회도, 사람들의 관심도 더 즐길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의미에서 뻔뻔해지겠다."고 대답했다.
사격에서는 흔치 않게 의무 트레이너와 심리상담 박사까지 동원한 소속팀의 철저한 관리 속에, 부상 없이 세계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이원호의 목표는 현재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이원호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실력으로 국내 최고의 사격 선수가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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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형 기자 (nobroth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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