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발자국’을 아시나요?
[IT동아 권명관 기자]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녹이며 솟아나는 녹음을 바라볼 수 있는 봄, 짙은 녹음이 만발해 활기로 가득찬 여름, 높고 맑은 하늘 아래 알록달록한 단풍이 물드는 가을, 코 끝이 시린 바람과 하얀 눈이 흩날리는 겨울을 안고 있다. 봄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덥고, 가을에는 선선하고, 겨울에는 추운, 사계절의 매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다소 이상해졌다. 봄과 가을은 짧아졌고, 여름과 겨울은 길어졌다. 여름 다음 겨울, 겨울 다음 여름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들린다. 자연의 리듬도 깨졌다. 올해 한반도 전역에서 봄꽃은 때 이르게 개화했다. 벚꽃의 경우 3월 21일 대구에서, 3월 26일 서울에서 개화했다. 평년보다 각각 8일, 2주일이나 빨랐다.
벚꽃만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건 무질서한 개화 시기다. 늦겨울 피어나는 동백을 시작으로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그리고 철쭉으로 이어지는 개화 순서는 올해 망으로 꼬였다. 어떤 꽃은 남부지방이 아닌 중부지방에서 먼저 개화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상 개화의 원인은 너무 높은 봄 기온이다. 실제로 올해 3월 평균기온은 지난 30년 평균치보다 무려 3.3도 높았다. 이는 기상관측사상 최대치다.
기후변화,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다. 계속 더워지는 기온은 계절, 날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아프리카 보다 더운 대구’, ‘시베리아 보다 추운 강원도’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지난 4월 19일 환경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에 따르면, 한반도의 폭우와 폭염, 겨울철 이상고온, 한파의 강도 등은 더욱 강해지고 빈번해졌다. 동남아시아 지역과 같은 열대나 아열대 지역에서 나타나는 짧은 국지성 호우인 ‘스콜’도 201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프리카 보다 더운 대구’, ‘시베리아 보다 추운 철원’이라는 농담은 이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때 이른 폭염으로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등 이상고온 현상은 이어졌다. 지난 5월 14일, 태국 북서부 지역의 기온은 45.4도를 기록해 역대 최고 기록을 바꿨다. 체감 온도는 50도를 웃돌았다. 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5월 13일 37도), 베트남(5월초 44.1도), 미얀마(4월말 43도) 등도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북미, 유럽 지역도 마찬가지다. 5월 14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은 32도를 기록, 최고 기록을 뛰어넘었다. 같은 시기 미국 서부를 비롯해 폭염에 시달린 캐나다는 동부 지역에서 산불 피해에 시달렸다. 스페인에서는 4월 역대 가장 덥고 건조한 날씨를 기록해 지난 5월 내각 회의에서 20억 유로(한화 약 2조 9,100억 원) 규모의 가뭄 비상조치를 승인했으며, 인접국인 포르투갈,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알제리 등도 4월 기준 역대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
이상 기후를 막아내기 위한 노력
지구 온난화로 폭염, 폭설, 태풍, 산불 등 이상기후 현상은 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높은 화석연료 비중과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최근 30년 사이 평균 온도가 1.4도 상승하며 온난화 경향이 심해졌다. 이에 국제사회는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에 의무를 부여하는 ‘교토의정서’를 지난 1997년 채택했으며, 이어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파리협정’을 지난 2015년 채택, 이후 2016년 11월 4일 협정을 발효했다. 우리나라는 2016년 11월 3일 파리협정을 비준했다.
파리협정의 목표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 보다 훨씬 아래(well below)로 유지하고, 나아가 1.5도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의 온도가 2도 이상 상승할 경우, 폭염, 한파 등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한다. 상승 온도를 1.5도로 제한할 경우 생물다양성, 건강, 생계, 식량안보, 인간 안보 및 경제 성장에 대한 위험은 감소한다.
지난 1992년 기후변화협약(UNFCCC,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채택 이후, 장기적 목표로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어느 수준으로 억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EU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2도 목표를 주장했으며, 2007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제4차 종합평가보고서에 2도 목표를 포함했다. 2도 목표는 2009년 제15차 당사국총회(COP15) 결과물인 코펜하겐 합의(Copenhagen Accord)에 포함됐으며, 이듬해 제16차 당사국총회(COP16) 칸쿤 합의(Cancun Agreement) 채택으로 공식화했다.
이후 2015년 파리협정에서 2도 보다 아래로 유지하고, 나아가 1.5도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표가 설정됐다. IPCC는 지난 2018년 10월 우리나라 인천 송도에서 개최한 제48차 IPCC 총회에서 논의 끝에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승인하고 파리협정 채택 시 합의된 1.5도 목표의 과학적 근거를 마련했다.
(위 내용은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50 탄소 중립에서 발췌)
이에 IPCC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전지구적으로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최소 45% 이상 감축해야 하고, 2050년에는 ‘탄소중립(Net-zero)’을 달성해야 한다고 경로를 제시했다.
또한, 2도 목표 달성 경로의 경우,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0년 대비 약25% 감축해야 하며, 2070년경에는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로 전환하는 탄소중립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탄소발자국’을 아시나요?
이상기후로 인해 전 세계는 탄소중립 목표를 내세웠다. 탈국가적인 협의체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고,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까지 참여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했다. 전 계 각국은 2015년 12월 파리협정 채택 이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유엔(UN)에 제출했으며, 2021년 파리협정의 본격적 이행을 앞두고 2020년까지 이를 갱신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 6월,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를 감축 목표로 제출했다. 이후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수정로드맵(2018년 7월)’을 마련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시행령’을 개정(2019년 12월)하는 등 감축목표 이행을 위해 노력했으며,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 갱신안을 마련해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10월, 2050 탄소중립위원회(현 2050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는 제2차 전체회의를 통해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안’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을 심의·의결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18년 온실가스 총배출량 대비 40% 감축”으로 기존 감축 목표인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26.3% 감축에서 상향했다.
이른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탄소중립을 실현한 미래상과 부문별 전환 내용을 전망한 것으로, 부문별 세부 정책방향과 전환 속도 등을 가늠하는 역할을 한다. 탄소중립을 위한 기술 혁신 및 상용화, 국민인식과 생활양식 변화를 전제로 경제적 부담과 편익, 식량·에너지 안보, 국제사회에서의 역사적 책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다만, 탄소중립을 향한 국가 차원의 목소리는 계획과 실행, 방안 등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에게 다소 공감하기 버겁다. 당장의 내일, 가까운 일주일을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2030년, 2050년 후의 미래를 위한 노력은 ‘알지만 귀찮은’ 일에 가깝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탄소중립을 실행해야 하는지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게 도입한 것이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이다. 탄소발자국은 개인 또는 기업, 국가 등의 단체가 활동이나 상품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전체 과정을 통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의미한다. 탄소발자국 개념은 지난 2006년 영국의회 과학기술처(POST)에서 최초로 제안했는데, 제품을 생산할 때 발생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을 탄소발자국으로 표시하는 데에서 유래했다(출처: 두산백과).
이는 지구온난화와 그에 따른 이상 기후, 환경 변화, 재난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커지면서, 그 원인들 중 하나로 제시되는 이산화탄소의 발생량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취지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연료, 전기, 용품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한다. 특히, 소비자에게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 정보를 정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환경영향이 적은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지속가능한 소비ㆍ생산체계 구축하기 위한 지표로 활용된다.
쉽게 풀어 보자면, 탄소발자국은 일상에서 구매하는 제품, 평소 즐기는 서비스 등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온실가스)의 발생량을 의미한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생산한 제품을 옮기기 위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등을 표기한다. 즉, 온실가스 배출량을 정확하게 파악해 알려고, 이를 통해 보다 적게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 탄소중립을 실현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제품이나 서비스의 모든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양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환산해 라벨 형태로 표기하는 ‘탄소성적표지’를 2009년 2월에 도입했었으며, 2016년 7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 개정에 따라 환경성적표지(Environmental Product Declaration) 제도에 흡수하며 탄소발자국이라는 명칭으로 변경했다.
탄소발자국, 탄소중립을 위한 또 하나의 지표
탄소발자국은 뜬구름과 같은 탄소중립을 향한 노력을 일상생활 속으로 연장하기 위한 하나의 지표다. 탄소발자국의 표시는 무게 단위인 kg 또는 실제 광합성을 통해 감소시킬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나무 수로 환산해 표시한다. 영국, 캐나다, 미국, 스웨덴 등 선진국에서 적극적으로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의 경우 2009년부터 제품의 제작과정부터 유통과정에 걸쳐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품에 표기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국가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탄소발자국을 활용해 탄소중립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을 시행하고 있다. 탄소 배출량과 감소량을 더한 순수 값(NET)을 0에 가깝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아 ‘스텝포넷제로(Step for NET ZERO)’다. 탄소발자국과 지구의 모습을 담은 로고 표지는 탄소중립을 향한 발걸음을 의미한다. 스텝포넷제로 마크를 표시해 탄소절감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의미를 소비자가 보다 쉽게 알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목표다.
특히, 스텝포넷제로는 단순 마크나 로고가 아니다. 일종의 캠페인이다. 탄소를 얼마나 저감했는지 소비자가 알기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해 국내 여러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향한 노력은 먼 여정길이다. 10년, 20년, 30년 이상의 긴 시간이 필요한 장거리 여행이다. 산업화 이후 상승하기 시작한 지구의 평균온도는 이상기후 현상으로 이어지며 많은 피해를 유발했다.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자구책은 이제 시작이다. 그래서 탄소발자국, 스텝포넷제로와 같은 제도, 캠페인이 중요하다.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한번 더 상기시켜 줄 수 있는 마중물이다.
탄소중립, 탄소절감은 우리 스스로를 지키는 한걸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글 / IT동아 권명관(tornados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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