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전공' 시대 오나… 대학 학과·학부 칸막이 없앤다
# A씨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의료 수술 로봇을 만드는 게 꿈이다. 대학에 진학한 A씨는 4년간의 교과 과정을 진로 관련 과목으로 구성해 'AI의료로봇학'이라는 새로운 전공을 만들었다. AI의 개념과 원리를 배우기 위해 컴퓨터공학 과목을 택했고, 심화 과정은 다니는 대학과 컨소시엄을 맺은 외국 대학 수업을 들을 계획이다. AI를 로봇과 접목하기 위해 기계공학 과목을, 수술 관련 지식을 배우기 위해 해부학 등 의학 과목을 이수하기로 했다. AI를 올바로 활용하고자 철학과 윤리학도 커리큘럼에 넣었다.
가상으로 구성해 본 A씨의 대학 생활이 실현될 날이 머지않았다. 정부가 고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대학이 기존 학과·학부 틀에 얽매이지 않고 학생 통합 선발, 융합학과, 자유전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을 구성·운영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이다.
직접 설계한 전공 수업 길 열려
교육부는 26일 대학규제개혁협의회를 개최하고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심의·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학과 간 장벽 해소, 국내외 대학 및 산업체·연구기관 협력 강화를 위해 대학에 자율권을 대폭 부여하는 방향으로 115개 조문 중 33개(28.7%)를 정비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대학이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대학 안팎의 벽을 허무는 혁신적 대학을 전폭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개정안은 오는 29일부터 8월 8일까지 입법예고 기간을 갖고 각계 의견을 수렴한다.
개정안은 '대학에는 학과 또는 학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9조2항)는 조항을 삭제했다. 교육계에선 일부 대학에서 시행하는 자율전공, 융합학부 제도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대 자율전공학부의 학생설계전공제도가 참고할 만한 사례다. 학생이 각자의 진로에 맞게 수업을 구성해 자신만의 전공을 만드는 제도로, 교수와 전문위원 지도를 받고 학생설계전공위원회 심사를 통과하면 된다. 2012년 졸업생부터 올해까지 국가행복심리학, 지속가능 푸드시스템, 인권학, 소셜컴퓨팅, 놀이문화학 등 개성 있는 전공이 총 117개 탄생했다.
예과 2년·본과 4년 의대 체제 자율화
개정안은 학생 전공선택권 확대를 위해 1학년부터 전과를 허용했다. 의대는 '예과 2년·본과 4년' 규정을 없애고 각 대학이 6년 범위에서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예과·본과 간 교육과정 연계가 미흡하고 본과 4년간 배울 내용이 너무 많아 다양한 분야의 의료인력 양성에 어려움이 크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한 조치다.
일반 대학의 온라인 학위과정도 전면 자율화된다. 지금은 외국 대학과의 첨단분야 공동교육과정에 한해 교육부 사전승인을 거쳐 학위과정을 개설할 수 있는데, 이런 규제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교수는 원칙적으로 주 9시간 수업을 해야 한다는 조항도 연구·산학협력 등 전임교원 역할이 다양화한 점을 감안해 학칙으로 정하도록 개정했다.
대학·산업체 연계 수업의 장애물로 꼽히던 '학교 밖 수업' 규제도 풀린다. 현장 근로를 수업으로 인정하는 식의 교외 학습장 편법 운영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조항이지만, 대학에서 노후한 반도체 실습 장비로 이미 쓰이지 않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식으로 산업 현장과 동떨어진 교육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교육부는 학교 밖 수업 유형으로 '협동수업'을 신설, 산업체·연구기관의 시설·장비·인력을 활용한 교육을 제도화했다. 기업 입장에선 계약학과 외에 현장 적응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경로를 확보하는 셈이다. 대신 협동수업의 학점인정 범위를 졸업학점의 4분의 1로 제한해 편법 운영을 방지한다.
대학이 복수의 외국 대학과 컨소시엄을 꾸려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지금까지는 외국 대학 1곳과만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대학들은 이번 조치에 대해 학생 선택권을 확대하고 산업현장에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자율권을 부여받았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율이 방임으로 변질되지 않게끔 부작용 방지책도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온라인 학위과정, 학교 밖 수업을 금지해온 것은 '학위 장사' 변질 우려 때문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이 늘어나면 취업에 도움이 안 되는 기초학문이 외면받을 수 있어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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