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망국적 사교육, 이번엔 종지부 찍어야

2023. 6. 2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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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前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의 대입시험 '초 고난도 문제(킬러 문항)' 배제 지시로 야당과 학원가가 시끄럽다. 대통령이 알지도 못하면서 대입 출제 문제를 언급,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것이다. 이들은 "수능시험이 5개월 밖에 안 남았는데 혼선을 줘 학생들을 불안하게 한다"며 윤 대통령을 비판한다.

킬러 문항은 교과서 범위 밖에서, 문제를 배배 꽈 지극히 풀기 어렵게 출제된 문제를 말한다.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이런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 변별력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수험생을 골탕 먹이고 떨어트리기 위해 내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고난도의 '문제풀이 기술'이 필요하다. 학원에서 유명 강사 소위 일타강사들은 그런 기술을 가르친다. 그들이 낸 예상 문제집은 거금을 줘야 산다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총 사교육비는 약 26조원이나 된다. 전년 보다 10.8%가 늘었다. 78.3%의 초중고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다. 한 학생의 주당 평균 사교육 시간은 7.2시간이다. 사교육 참여학생들의 1 인당 월평균 과외비용은 52만4000원이다. 일류 학원이 몰려 있는 대치동 학원가에는 방학 기간에 지방학생을 위한 소수 정예 기숙(寄宿)반을 편성, 과외비로 1000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 판교의 영어 유치원 수강료는 사립대 등록금수준이다. 사교육비 부담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리고 과외 망국론이 나올 정도다. 서울 시내에만 2만4284개 학원이 성업 중이다. 편의점, 카페보다도 많다.

고난도 문제풀이 기술로 먹고 사는 학원가가 대통령의 지시에 반발하는 것은 예상됐던 일이다. 사사건건 대통령을 물고 늘어지는 야당의 비판도 낯설지 않다. 그런데 학부모와 수험생, 교육계의 반발은 이해가 안 된다. 변별력이 떨어지고 갑작스런 지시로 학생들을 불안하게 한다는 것은 이유가 안된다. 교과서 범위 내에서도 변별력이 있는 문제를 낼 수 있다. 또 교과서 범위 밖이 아니라 안에서 문제를 내라는 것이기 때문에 수험생이 불안해야 할 이유도 없다. 교과서 밖에서 고난도 문제가 출제되지 않으면 고액 과외를 받지 못한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해져 이른바 '사교육 카르텔'이 무너질 뿐이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대학 수준을 자랑한다. 미국도 우리처럼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나 ACT(American College Testing Program)란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제도가 있다. 칼리지보드(College Board)라는 입시전문회사가 출제한다. 시험 과목은 SAT가 독해, 쓰기와 언어, 수학이고 ACT는 영어 수학 독해 과학 작문(선택)이다. 수험생들은 SAT나 ACT 중 대학이 원하는 시험 성적을 제출한다. SAT는 1년에 7번, ACT는 6번의 시험이 있다. 성적이 나쁘면 다시 봐 좋은 결과를 제출하면 되므로 한 번 실패해도 만회할 기회가 있다. 시험문제는 공교육 과정 내에서 출제된다. 독해시험의 경우 다양한 책을 많이 읽어야 하므로 학원이 결코 성적을 단기간에 올려 줄 수가 없다.

미국 대학은 이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대학은 학교성적(GPA), 자원봉사, 클럽활동, 교사추천서, 에세이 등 다양한 평가항목으로 학생을 뽑는다. 우리처럼 수능성적이 절대적이지 않다. 만점자가 떨어지는 경우도, 저득점자가 고득점자를 제치고 합격하는 경우도 많다. 시험 성적 보다 학생의 장래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선발하는 때문이다. SAT 나 ACT는 해당 대학의 수학능력여부를 보는 참고자료다. 우리처럼 1,2점차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잣대가 아니다. 수험생이 시험성적만을 위해 사활을 걸 이유가 없다. 따라서 학생들을 떨구기 위한 초고난도 문제도 출제되지 않는다.

미국 대학은 이처럼 다양한, 주관적 평가로 신입생을 뽑는다. 심지어 일정 비율로 소수계 학생을 선발하기도 한다. 미국사회의 다양성을 위해서다. 기여입학제도 있다. 부모가 해당학교 출신이면 우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공정성 시비가 일지 않는다. 대학과 고교, 학부모 사이에 신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신입생을 선발하는 미국 대학의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라고 자타가 공인한다. 블랙홀처럼 세계의, 제3세계의 인재를 빨아들여 미국을 세계 최 강국으로 만든다.

우리가 선진국이 된 것은 치열한 교육열 덕분이다. 주입식 교육이었지만 열심히 한 덕분에 선진국을 따라가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지금은 고액 과외로 대변되는 입시과열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대학입시에 진이 빠진 학생들은 정작 공부해야 할 대학에 들어가면 논다. 미국과는 반대다. 이 같은 우리의 교육, 입시제도는 수명을 다했다. 아날로그 시대의 교육으로 치열한 국제사회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성큼 다가온 AI시대에 어떤 교육으로 대처해야 할지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초등학생이 주 3~4일 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우고, 과외를 해야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나라가 정상인가? 공교육의 정상화, 교육개혁이 절실하다.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두고 여야가 킬러문항 등 지엽적인 문제로 정쟁을 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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