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교육에서 사라진 ‘인성’을 되찾는 길

한겨레 2023. 6. 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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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덴마크 자유교원대학 간판. 이병곤 제공

[세상읽기]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

덴마크 교육은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가진다. 인구는 590만명이지만 행복지수는 세계 최상위권이며, 1인당 국민소득 6만2천달러가 넘는 강소국이다. 그곳으로 새 교육을 배우러 가는 이들의 ‘눈’이나 교육 다큐멘터리 제작용 카메라 ‘렌즈’는 행복에 겨운 덴마크 학생들의 표정과 잘 짜인 교육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 시야에서 벗어난 핵심 교육 요소가 있다. 바로 교사다.

두번째로 덴마크 자유교원대학을 찾았던 2018년 겨울. 올레 페데르센 학장이 전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한 사람의 교사가 된다는 것은 인성을 갖추는 일입니다. 인내심, 자기 제어, 호기심, 양심, 의지력을 키워야 하죠. 교사는 자기 존중감, 자신감, 자부심에 바탕을 두고 학습 환경을 창조해야 합니다. 또한 삶의 방식으로서 시민성이 몸에 배도록 애씁니다.”

예비 교사를 가르쳐 시험 중심으로 학교에 임용하는 우리나라의 절차를 떠올려 보자. 너무 당연하게 들렸던 페데르센 학장의 말이 그 과정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취업용 변별력 높이기를 기반으로 한 교육공무원 시험제도로 어떻게 교사의 ‘인성’과 ‘자기 존중감’을 키울 것인가.

5년제인 덴마크 자유교원대학 3학년생들은 1년간 교육 현장으로 나간다. 학생이지만 그 기간에는 교사로서 월급을 받기에, ‘교육실습생’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이 부분에서 나는 무릎을 쳤다. 이들은 본교로 돌아와 ‘교사 됨’을 위한 공부를 2년 더 이어간다. 현장 경험이 쌓인 뒤라서 학습 내용을 ‘몸 전체로 흡입’한다고 봐야 할 거다.

재학생 300여명인 자유교원대학은 사립 교육기관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사실은 연간 운영비 2600만크로네(약 50억원) 가운데 70%를 국가가 지원해준다는 점이다. 스토리텔링, 교육학, 심리학, 그리고 교수법은 필수교과목이다. 전체 교육과정에서 시험은 한번도 없다. 이 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따스한 배움이 있는 공동체 공간으로 ‘순간이동’한 느낌이 든다. 졸업생 대부분은 덴마크 대안학교 교사로 임용되며, 적은 수는 일반 공립학교 교사가 되기도 한다. 덴마크 전역에는 550개 대안학교에 학생 11만여명이 재학 중이다.

덴마크 자유교원대학 교정에 있는 졸업생 전시 작품. 이병곤 제공

우리 대안학교 교사들을 생각한다. 아무런 지원 없던 시절 컬링이나 루지 같은 겨울올림픽 종목의 한국 선수들 이미지와 겹친다. 설상 경기를 길바닥에서 바퀴 달린 썰매 타고 연습하던 그 시절 말이다. 대안학교의 역할과 기여가 사회적으로 또렷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2010년대 초반까지, 대안학교 교사 양성을 위한 공적인 지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2013년 11월, 한국의 대안학교 교사 교육을 위한 협동조합 ‘삶을 위한 교사대학’이 탄생한다. 20여년 동안 덴마크 교육을 연구하고 그곳 실천가들과 연계해오던 송순재 교수, 그와 뜻을 모아오던 대안교육 활동가들이 주축을 이뤘다. 대안교육에 관심을 가진 청년들에게 단기 대안교육 교사 양성 입문과정을 개설해 지금까지 매년 운영해오고 있다. 현직 교사들을 위한 생활기술 교육, 덴마크 에프테르스콜레협회, 프리스콜레협회, 폴케호이스콜레협회와 10년 가까이 교류, 교사 대상 국외 교육문화 기행 조직과 실행, 공교육 교사들을 위한 각 교육청으로부터 연수 위탁 등을 묵묵히 실천해왔다.

대안학교 몇 곳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으나 적은 액수의 조합비만으로는 실무자 급여나 사무실 임대 비용을 감당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길 위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는 주제에 “눈 위를 달리는 루지”라고 우겨온 지 올해로 10년을 맞는다. 눈물과 오기 없이 버티기 어려운 세월이었다. 해마다 교사 양성 입문과정이 끝날 무렵인 6월 말, 회원 현장에서는 ‘좋은 교사 없냐’고 애타게 찾는 문의가 잦다. 그만큼 절박하다.

대안교육을 선택한 것이 무슨 원죄라도 되는가. 정부와 교육부에 말한다. 돈이 없어 대안학교 지원하기가 어렵다는 말은 얼마간 못 들은 척하겠다. 그 대신 교사 양성을 위한 교사대학부터 튼실하게 챙겨 보라. 2023년 교육예산 총액은 102조원이다. 이 가운데 0.001%만 확보해도 10억원 아닌가. 교육 혁신에 투자하는 것이라 여기고 대안교육 교사 양성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기 바란다. 정당한 투자 없이 비인기 종목의 올림픽 금메달을 바라는 심보처럼, 혁신을 지향하는 대안적 교사 양성기관 없이 덴마크 교육 성과의 달콤한 열매만 부러워하지 말자는 얘기다.

덴마크 자유교원대학 복도에 게시된 1회 졸업생들의 사진. 이병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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