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잃어버린 ‘생활동반자법’ 원래 이름을 찾아라

한겨레 2023. 6. 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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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밖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비혼 동거 가족에게 법적 부부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은 첫 발의 이후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보수·종교단체가 동반자 관계를 반드시 이성 간에만 성립한다고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생활동반자법은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법외 가족의 법적 권리 보장에 대한 시민의 요구 속에서 보완 입법으로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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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의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가족구성권 3법’(혼인평등법·비혼출산지원법·생활동반자법) 발의 기자회견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왜냐면] 우태희 | 연세대 IT융합공학과 1학년

제도권 밖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비혼 동거 가족에게 법적 부부와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동반자법은 첫 발의 이후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보수·종교단체가 동반자 관계를 반드시 이성 간에만 성립한다고 전제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생활동반자법은 동성애를 합법화하기 위한 법안”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예고 누리집(pal.assembly.go.kr)의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안’ 관련 의견 목록을 보면, 4월28일~5월12일 등록된 1만8973건 가운데 1만4210건이 반대 의견이었다. 해당 법안을 추진하는 의원실로는 욕설 문자와 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이에 야당에서는 생활동반자법 기존 발의안과 달리 동성 간 동거에 대한 거부감을 감안해 이성 간 비혼 동거만 지원하자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동반자법의 방향 전환은 기존 발의안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 생활동반자법이 이성간 비혼 동거만 지원하면, 이는 외려 생활동반자를 단순히 혼인의 대체 관계로서 바라본다는 사회 인식적 한계를 강화하게 된다. 동반자 관계를 이성 간에만 성립하도록 법안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은 단순히 반대 의견을 잠재우기 위한 차선책이 아니라 기존 법의 취지와 이념을 뒤엎는 선택이다.

생활동반자는 단순히 혼인의 대체가 아니다. 혼인과 혈연이라는 협소한 관계 밖에서도 서로 상호돌봄과 의지를 약속한 동반자를 선택해 법적 인정을 받아내기 위한 제도에 가깝다. 또한 생활동반자법이 가장 절실한 집단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노약자, 여성 등 사회적 약자인 것을 고려하면 야당의 방향 전환은 기존 법안의 취지와 어긋난다.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은 전통적 가족 형태의 틀에서 벗어난 법외 가족으로서 전통적 가족 개념을 전제로 한 현행 가족 관련 법·제도에서 외면받고 있다.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법적 권리를 보장받고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는 극히 제한적이다.

우선 생활동반자는 수술 동의서에 보호자로 서명할 수 없다. 대부분의 병원에서 보호자의 범위를 민법상 부양 의무자에 해당하는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배우자, 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 정도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 지원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특히 주택공급 정책은 '법률혼'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비혼 동거 가족은 혜택을 받기 어렵다. 고용보험이나 건강보험의 피부양자로도 등록할 수 없고, 동반자가 사망하더라도 법적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장례를 위한 휴가 등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를 규정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를 보면, 동성 동거 가족을 포함한 모든 법외 가족은 성적 지향이나 가족 형태, 혼인 여부를 이유로 가족 관련 법·제도 혜택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법외 가족의 법적 권리 보장에 대한 시민의 요구 속에서 보완 입법으로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던 것이다. 앞으로 ‘생활동반자법’ 개정에 대한 논의에서 잊지 말아야 할 건 기존 법의 취지다. 보수단체나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해 방향 전환을 논의하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을 잊어버린 듯하다. 앞으로 해당 법안에 대한 논의가 중심을 잃지 않고 법외 가족에 대한 보호를 수행하는 역할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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