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11의 목소리] 나는 요양보호사입니다
[6411의 목소리]
김문희 | 요양보호사
내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 요양보호사는 “나의 손길이 있으므로 살 수 있는 분들이니 훌륭한 일을 하는 거다”, “자식들도 못 하는 일을 우리가 하는 거”라며 다독여줬지만, 그런 사명감이나 자부심만으로 버티기엔 노동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결국 일을 시작한 지 반년쯤 지나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20년 동안 자영업을 하던 나는 2021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2022년부터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첫 직장은 요양원이었다. 구인사이트에서 초보 요양보호사도 가능하다기에 지원한 곳이었다. 100명 조금 안 되는 입소자들은 모두 장기요양 1~4등급을 받은 어르신으로 가벼운 치매 증상부터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는 분까지 건강상태가 다양했다. 근무는 주간 이틀, 야간 이틀, 휴무 이틀 이렇게 3교대로 돌아갔다. 요양보호사 한 명이 담당하는 어르신은 평균 7명 내외였다. 어르신 건강상태에 따라 기저귀 케어부터 보행보조, 프로그램 수행보조, 식사준비 등을 도왔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은 2시간마다 한번씩 기저귀를 교체하고 욕창 예방을 위해 자세를 자주 바꿔줘야 했고, 치매 어르신들은 조금만 한눈을 팔아도 쉽게 다칠 수 있기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첫 출근 날, 과연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져 갔다.
일 가운데서는 장루주머니 교체가 가장 힘들었다. 인공항문에 부착하는 배변 주머니인 장루주머니는 일정 시간이 되면 교체해줘야 하는데,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퇴근하고 난 뒤 야간에는 내가 교체해줘야 했다. 의학적 지식도 경험도 없는 내가 혹시라도 잘못했다가 세균감염이나 탈이라도 날까 두려웠다.
더 힘든 일은 따로 있었다. 첫째는 어디까지인지 애매한 업무 범위였다.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 배웠던 요양보호사 업무는 신체활동 지원, 개인활동 지원, 응급 및 간호처치 서비스, 시설환경 관리, 정서 지원, 방문목욕 서비스, 기능회복 훈련 및 치매관리 지원 등이다. 그러나 시설관리, 개인활동 지원, 정서 지원 같은 모호한 문구는 요양보호사 업무를 쉽사리 과중하게 만들었다. 어르신들 보호와 돌봄에 필요한 물품들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때그때 말하기 번거롭고 눈치 보여 사비로 사는 일도 허다했다.
쉽게 성폭력에 노출된다는 점도 나를 힘들게 했다. 아무리 노인이라도 성인 남성을 여성이 돌보는 일은 여러가지 난관이 많다. 기저귀를 간다거나 옷을 갈아입힌다거나 목욕시키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접촉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민망함을 넘어 당혹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요양원에서는 웬만하면 초보 요양사에게는 남자 어르신 병실을 배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을 꼬박 일하고 나면 손에 쥐는 급여는 최저 시급에 주휴수당을 더해 172만원.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돈일 수 있지만, 이 사회가 돌봄노동의 가치를 최저로 보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했다. 내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 요양보호사는 “나의 손길이 있으므로 살 수 있는 분들이니 훌륭한 일을 하는 거다”, “자식들도 못 하는 일을 우리가 하는 거”라며 다독여줬지만, 그런 사명감이나 자부심만으로 버티기엔 노동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결국 일을 시작한 지 반년쯤 지나 몸에 이상신호가 왔다. 식사시간과 프로그램 수행 때마다 4~5명 어르신을 휠체어에 태웠다 다시 침대에 눕히기를 반복해서였을까. 디스크 질환이 찾아왔고 그렇게 첫번째 직장을 그만뒀다.
어느 정도 쉬다 ‘재가방문 요양센터’를 통해 방문요양 일을 시작했다. 하루 3~4시간 정도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이 있는 가정으로 찾아가는 방문요양은 근무시간이 적은 만큼 급여도 요양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대신 요양원처럼 사방으로 뛰어다닐 일 없고, 담당해야 할 어르신도 한분이라 그나마 수월할 거라고 센터에서는 설명했지만, 여기는 여기대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돌봄대상 어르신과 보호자가 함께 있는 집에서 가사도우미 일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르신이 머무르는 공간 정리정돈을 넘어 집안 청소와 빨래하기는 물론 음식 장만과 준비, 세탁기 청소, 수납장 정리까지 요구됐다. 보호자 일정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고무줄처럼 왔다갔다 했다. 나름 전문 돌봄인력이라고 여겼던 요양보호사가 현장에서는 ‘돈을 주고 부리는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혹시라도 언젠가 부모 간병이 필요할 때가 오면 직접 하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돌봄 대상자들도 모두 누군가의 부모일 테니, 부모님을 돌보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경험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자존감도 자신감도 유지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돌봄도 엄연한 노동이고, 요양보호사는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한 전문직업인이라는 것을 언제쯤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4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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