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투표권 뺏자? 여당, 조총련·재특회 따라가나

한겨레 2023. 6. 2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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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3월28일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이범준 | 서울대 법학과 박사수료 연구생·논픽션 작가

지방자치선거 투표권자에서 중국인을 제외해야 한다고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주장했다. 이를 두고 이른바 진보 언론에선 이들 상당수가 동포라고 지적했다. 두 주장은 모두 국민 또는 동포인 주민에게 투표권이 있다는 것으로, 같은 근거에서 출발해 결론만 달리하는 것이다.

부산시민은 서울시장을 뽑지 못한다. 서울시에 주소가 있어야 서울시장을 뽑는다. 그리고 이 거주가 지방선거 투표권이 주어지는 유일한 요건이다. 근대 이후 투표권이 요구하던 요건은 남아 있지 않다. 남자가 아니어도, 납세를 거부해도, 병역을 거부해도 투표권이 있다. 유일한 요건인 거주는 현재를 뜻하기에 과거를 묻지 않는다. 주민이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않는다. 다른 지역 출신이라 본적이 달라도, 다른 나라 출신이라 국적이 달라도 상관없다. 언제 왔는지도 묻지 않는다. 거주기간 제한이 없기에, 선거인명부 작성에 필요한 22일 전에 서울에 살면 된다. 다만 외국인은 영주권 취득 이후 3년이라는 요건이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지방선거 제도이고, 주민의 복리가 지방자치의 목적이라는 헌법 이념을 구현한 것이다.

지방선거 투표권자가 ‘국민인 주민’에서 그냥 주민으로 바뀐 계기는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자이니치’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요구하면서다. 자이니치는 식민지를 계기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과 그 후손이다. 일본은 ‘국민인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모범을 보이겠다며 외국인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도입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005년부터 외국인 주민도 선거하게 됐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지금도 ‘국민인 주민’에게만 지방선거 투표권을 인정하는데, 이유는 상호주의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 영주권자의 숫자와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 영주권자의 숫자가 차이가 커서 상호주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상호주의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 설명이 궁색할 때 붙이는 구실이다.

자이니치는 김대중 정부 이전부터 지방선거 투표권을 일본에 요구해왔다. 이를 방해해온 두 조직이 있다. 하나는 북한의 공민 단체인 조선총련(조총련)이다. 지방선거 투표권은 일본에 동화하는 과정이라고, 일본에서 주민으로 인정되면 조국 소속감이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방선거 참여는 일본에 대한 내정간섭이라고도 한다. 다른 조직은 자이니치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 바로 재특회다. 외국인 투표권 논의가 나올 때마다 폭력 난동을 벌였다. 2009년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재특회의 투표권 반대 시위에 반대 펼침막을 내건 시민을 집단으로 폭행했다. 하지만 경찰이 크게 문제 삼지 않자 이후 교토 조선학교 습격, 위안부 사과 요구 집회 공격을 벌이며 조직을 키웠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우리가 외국인 주민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이유는, 일본의 자이니치 차별에 못지않은 한국의 화교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바다 건너 일본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를 바로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방선거 첫해 외국인 투표권자 가운데 99%가 화교였다. 외국인 6579명 가운데 타이완인이 6511명이다. 자이니치 문제 연구자 정인섭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었다. “화교들이 사회의 실질적 구성원으로서 훌륭한 대우를 받고 있어 지방참정권 같은 것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일 것이다. 화교의 현실을 감안할 때 지방참정권에 대한 당사자의 요구 부재를 탓한다거나, 요구 부재를 이유로 외면하여서도 아니된다.” 이처럼 외국인 주민의 지방선거 투표권은 자이니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한 제도로 시작한 것이다.

나는 자이니치 연구를 위해 두 차례 일본에 체류했다. 오사카의 법률사무소에서 1년, 도쿄의 대학원에서 1년씩 있었다. 조선총련 동포 가운데 탈세로 기소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본 공안의 표적 수사 탓이기도, 자영업자가 많아서이기도 하다. 근본 이유는 일본 사회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이 없어서라고 했다. 이들이 탈세하도록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주고 뒷돈을 챙긴 곳이 지방선거 투표권에 반대하는 조선총련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국민이 아닌 주민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없애야 한다며 일본 정부가 하던 대로 상호주의를 주장했다. 하지만 20년 가까운 외국인 지방선거 투표권을 빼앗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적대감뿐이다. 그리고 적대감은 조총련과 재특회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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