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학 문제는 지금도 진행형
[왜냐면] 이순일 | 식민사관청산 가야국사경남연대운영위원장
이영식 인제대 명예교수는 기고 ‘식민사학 시비에 발목 잡힌 역사서’(<한겨레> 6월13일치 25면) 첫머리에서 ‘구태의연한 식민사학 시비가 새로운 지역사 편찬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식민사학 문제는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이 땅에서 진행형이다. 1955년 출생인 필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국사를 접하면서 처음 배운 것이 ‘단군’은 신화라는 것이었다. 지금 한국의 고대사학자들이 가르치는 역사는 여기에서 얼마만큼 벗어났는가? 한국사를 과거보다 더 주체적 시각에서 서술·해석하고 있다 보지 않는다.
사학자들은 많은 국민이 품고 있는 역사학에 대한 불신이 어디서 오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뿌리는 일본 제국주의 식민 시대에 ‘조선사편수회’가 엮은 <조선사> 35권에서 연유하고 있다. 조선사편수회의 고문이 매국노 이완용이었고, 수사관보가 우리나라 역사학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였다. 1980년대 경북 경주의 어느 재야 사학자는 이 교수를 ‘일본의 문화 간첩’으로 검찰에 고발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이영식 교수는 기존 역사학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시끄러운 소수’로 치부했다. 많은 국민의 지적이 있으면 자신의 학문을 돌아보고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지 따져보는 것이 모든 학문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다. 일반 시민이 역사에 그만큼 관심을 갖는다면 그 분야 학자로서는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전문가로서 자신만이 역사를 바로 알며 해석해야 한다는 이러한 오만한 태도가 ‘한국 고대사 학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해악이다. 모든 국민이 전문가들의 학설에 따라야 할 까닭도 없고 누구나 비판할 자유가 있다. 학문이 도그마에 빠져 비판과 토론을 거부할 때 그 학설이나 학문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영식 교수는 사실에 근거해 글을 써야 한다. 첫째, ‘식민사관청산 가야사 전국연대’는 가야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를 단 한 번도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검증 안 된 <일본서기>를 근거로 전북 남원 유곡·두락리 고분군을 ‘기문국’의 유물로, 경남 합천 쌍책면 옥전 고분군을 ‘다라국’의 유물로 둔갑시켜서 등재하는 것을 반대했을 뿐이다. 명확한 우리 사료에 근거해 남원이 ‘기문국’이고 합천이 ‘다라국’임을 입증해야 한다. 아니면 넘겨짚기식의 추론은 중지하라. 이렇게 논증이 덜된 지명으로 구태여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둘째, 우리는 <일본서기>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이마니시 류, 쓰에마쓰 야스카즈 등의 지명 비정(추정)에 따라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지명을 한국 학자들이 한반도에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행위를 비판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일본 식민 사학자들은 <일본서기>의 지명들을 ‘발음만 비슷하면 같다’는 우스꽝스러운 논리로 우리 땅에 비정했다. 학문도 아닌 이런 조잡한 행위를 비판한 한국 사학자들의 논문이나 저술이 있는가? 일제의 관제 사학자들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우기는 임나의 위치를 이병선 교수나 북한의 조희승 박사는 현지답사와 연구를 통해 모두 대마도나 일본열도에 있다고 밝혀냈다. 이를 부정할 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셋째, 우리 단체의 지역사에 대한 의사 표시를 ‘지역사에 대한 의도적 왜곡과 마녀사냥 선동’이라고 규정했다. 지방의 역사를 기술하자면 당연히 공개를 원칙으로 지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밀주의를 비판하고 그 내용에 대해 이견을 낸다고 이를 마녀사냥이라고 치부하는 일은 설득력이 없다. 역사는 전문학자들 몫이니 국민은 함부로 입대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이영식 교수는 가야사학회 직전 회장이자 현재 ‘김해시사’ 편찬 부위원장이다. 시사는 여러 시대를 아울러야 하는데 현재의 김해시사는 마치 여러 학자의 다양한 주장을 모은 논문집 형식과 같다. 역사서로서 김해시의 정체성을 세우는 논지가 부족하다. 또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의 북방 불교 전래보다 300여 년 앞선 가야불교의 전래를 부정하고 있다. 김해시사의 목적이 김해시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일진대 오히려 있는 역사를 부정하기 위해 시민의 혈세를 쓰는 듯하다.
지역 구성원들은 자기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많게 마련이고 애정을 가지고 오랜 시간 공부하면 전문가들이 놓치는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안목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영식 교수는 학자적 양심과 진실의 힘이 아닌 학문적 권위를 무기 삼아 정치인이나 행정관청, 시민을 협박하지 말고 사실과 논리로써 상대를 설득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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