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해외발행 조선 개화기 古書 1200권… "많은 사람과 역사 공유하고 싶어"
외국 시선으로 본 조선에 관심
서적정보 꼼꼼히 적어 비닐포장
무려 260년전 佛발행 역사서도
아직 이름없는 '무명 도서관'에
가치 알아주는 400여명 다녀가
오픈 라이브러리 운영 '고서수집가' 김홍석
"우리의 시선으로만 역사를 한정하는 게 아쉬웠습니다. 특히 조선의 개화기는 외국인의 눈을 빼고 역사를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개화기 고서를 중심으로 역사와 관련한 특별한 '오픈 라이브러리'를 운영 중인 김홍석(56·사진) 대표는 타고난 수집가다. 여느 수집가들처럼 우표나 도자기 등을 모으는 취미로 시작했던 그의 수집벽은 현재 고서(古書)에 꽃혀있다. 특히 조선시대 개화기를 전후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 풍속, 지리 등을 기록한 책을 주로 모으고 있다. 그의 수집품이 특별한 이유는 그 고서들이 우리나라, 즉 조선이나 한국에서 발행된 것들이 아니라 서양 등 외국에서 발행된 책들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가 역사를 좋아해 조선시대 역사를 많이 읽고 공부하다보니 개화기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무엇보다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개화기를 바라보는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그 시기의 조선을 기록한 외국의 서적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본 조선의 개화기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이쪽 분야에 대한 연구가 너무 미진하니 '한번 해보고 싶다,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가 자료 수집에 매달린 지도 어느 덧 10여년이 흘렀고, 그가 모은 고서는 1200권에 달한다. 1700년대부터 1950년대에 발행된 책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에 발행된 책들이 2000권이 조금 넘는 정도라 하니 그가 얼마나 열심히 고서를 찾아다니면서 모았을지 상상이 된다. 책도 어찌나 소중히 보관하는지 한권한권 모두 비닐 포장을 하고 있고, 발행년도와 저자, 발행된 국가, 담고 있는 내용 등을 깨알같이 적어 붙여놨다.
김 대표는 "초반에는 그래도 띄엄띄엄 했는데 최근에는 더 집중적으로 모으고 있다"면서 "이쪽 분야의 수집가들이 많지는 않아도 다들 열심인 분들이라 경쟁이 치열하다"고 전했다. 3~4년 전과 비교하면 고서 가격은 10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이쪽 분야 수집가가 극소수이긴 하지만, 개화기 조선을 담고 있는 외국의 서적 자체가 워낙 양도 적다. 서양인들에게 동양의 작은 나라인 조선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보니 발행량도 적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책도 많지 않은 탓이다.
그가 모은 책 가운데 가장 오래된 책은 1763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역사서인 '창세부터 현재까지 세계역사'다. 무려 260년 전에 발행된 책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고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사민필지' 2판(1906년)이다. 1890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 발간된 책이지만 저자는 미국인인 호머 헐버트 선교사다. 한글을 사랑했다는 헐버트 선교사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로 훈장도 받은 인물이다. 김 대표가 소장한 책 중에는 1895년 미국 인류학자인 스튜어드 컬린이 조선과 중국, 일본의 전통 놀이문화를 집대성한 기록서가 있다. 조선을 중심으로 기술했을 뿐 아니라 책 표지가 태극기다. 그는 이 책으로 TV 프로그램인 '진품명품'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에게 조심스레 가장 비싸게 구한 책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대부분의 고서가 수백만원을 호가하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것도 있는데 가격을 모른다니 의아했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구입했던 가격은 기억하지도 않았고, 적어두지도 않았다"면서 "가격을 생각하면 본전을 생각하게 되고 나중에는 값을 따져 팔고 싶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머릿속에서 값을 지웠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동안 책 모으는데 쏟은 돈이 '집 한채 값 정도 된다'는 것만 귀띔했다.
김 대표는 원래 역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어릴 때는 사학자를 꿈꿨지만 대학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했다. 그럼에도 그의 마음 속에는 항상 역사 책을 즐겨 보고, 역사 이야기에 눈을 빛내던 소년이 살아 있었다. 수집을 취미로 하던 그가 역사서에 푹 빠진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김 대표는 "고서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수집했던 모든 것을 처분했다"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이고, 큰 즐거움인지 새삼 깨닫는 요즘"이라고 전했다.
1200권이나 되는 책을 집안 곳곳에 쌓아뒀던 그는 책을 더 제대로 정리하고 보관하고자 따로 사무실을 얻어 자신만의 도서관을 꾸몄다. 그러자 새로운 욕심이 생겼다. 그 대단한 수집품을 혼자만 즐기지 않고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초부터 자신의 도서관을 '오픈 라이브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흘에 걸쳐 주변의 지인들 중 관심을 보인 이들을 초청해 책 하나하나를 소개해주고, 직접 만져보거나 넘겨볼 수 있도록 했더니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김 대표는 "박물관 같은 곳에 가면 유리관 안에 전시된 책을 눈으로만 봐야 하지만 저의 '오픈 라이브러리'에서는 페이지마다 넘겨보면서 내용과 그림까지 다 볼 수 있다"고 긍지를 나타났다. 지금은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져서 2달에 한번 꼴로 '오픈 라이브러리'를 운영한다. 한 번에 5명에서 10명 정도가 참여한다. 지금까지 400여명이 다녀갔다. 귀한 책인데 훼손되거나 도난 걱정은 없느냐고 했더니 "당연히 도난이나 훼손 위험이 있지만, 책의 가치를 잘 아는 분들은 책장도 조심조심 다룬다"면서 "오히려 책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훔쳐갈 생각도 안한다"며 웃었다. 문을 연지 1년이나 된 그의 도서관에는 아직 이름이 없다. 도서관에 잘 어울리면서도 의미있는 이름을 짓고 싶다는 고민이 길어지다보니 이제껏 '무명' 도서관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오픈 라이브러리'를 계속 운영하면서 자신의 소장 고서를 토대로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더 많은 이들과 자신이 좋아하는 역사를 공유하고 싶다는 게 그의 소망이다.
김미경기자 the13ook@dt.co.kr
사진=이슬기기자 9904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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