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프리고진 살해 계획…프리고진에 ‘벌레처럼 박살난다’며 설득”

파리=조은아 특파원 2023. 6. 2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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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 대통령이 밝힌 ‘반란’ 뒷얘기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포럼 전체회의에 앞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만나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2023.05.25. 모스크바=AP/뉴시스
러시아 민간 용병회사 ‘바그너그룹’의 ‘36시간 무장 반란’을 중재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반란이 극적으로 종료되기까지 24일(현지 시간) 하루 동안 이어진 줄다리기 협상의 막전막후를 생생히 밝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도중에 살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공개해 앞으로 프리고진의 운명이 순탄치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정의의 행진’ 선언 이후 거침없이 모스크바로 돌진하던 프리고진에게 “벌레처럼 박살날 것(crushed like a bug)”이라며 거친 욕설과 함께 경고하는 동시에 “(철수하면)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달래며 모스크바 진격을 막았다고 밝혔다. 그는 프리고진이 벨라루스에 도착했다고 발표한 직후인 27일 이 같은 뒷얘기를 공개했다.

● “나쁜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푸틴 설득

벨라루스 국영통신 벨타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바그너그룹이 러시아 남부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의 군 남부군관구 사령부를 점령한 뒤인 24일 오전 10시 10분 푸틴 대통령과 첫 통화를 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이 전화를 계속 받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프리고진을 살해하는 안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어 “‘나쁜 평화가 어떠한 전쟁보다 낫다’면서 서두르지 말라고 푸틴 대통령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루카셴코와 프리고진은 ‘20년지기’로 서로 신뢰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프리고진을 설득한 과정도 소개했다. 24일 오전 11시경 프리고진과 통화가 성사된 그는 “‘당신은 (모스크바로 가는 과정에) 벌레처럼 박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통화 초반 30분간 특히 욕설을 많이 했는데 나중에 (통화 내용을) 살펴보니 보통 어휘보다 욕설이 10배는 많았다”며 험악했던 분위기를 전했다.

또 반란의 배경에 대해 그는 “전선에서 싸운 두 사람이 충돌했다”며 프리고진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갈등이 직접적 원인이었음을 공식화했다. 프리고진은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참모총장의 경질을 바랐지만 루카셴코 대통령은 “아무도 당신에게 두 사람을 내주지 않을 것”이라며 “모스크바는 어쨌든 방어될 것이고 당신이 반란을 계속하면 러시아는 혼란과 슬픔에 빠질 것이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이후 프리고진은 이날 오후 5시 전화를 걸어와 “당신의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멈추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루카셴코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내가 당신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통화해 이같은 사실을 전하자 “내가 약속한 대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순순히 응했다고 밝혔다.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行)과 형사기소 철회 등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 “프리고진에게 안전 보장 강조”

지난 2010년 9월 20일(현지시각) 바그너 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왼쪽)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곽에 위치한 학교 생산시설 공장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2023.06.25.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대로 푸틴 대통령이 프리고진을 살해하는 안을 제안했다면 이는 그의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신변 안전을 보장받고 벨라루스로 건너온 프리고진이 언제든 암살 위협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푸틴의 꼭두각시’로 불릴 정도로 러시아에 의존적인 데다 푸틴 대통령이 바그너그룹 자금 수사 등 처벌의 명분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28일 항공기 추적 전문 웹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를 인용해 프리고진 소유의 항공기가 이미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를 떠나 모스크바로 향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편 루카셴코 대통령은 앞서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배치하기로 결정한 전술핵무기가 상당 부분 이전됐음을 밝혔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루카셴코 대통령은 이날 승진 군 장성들에 대한 견장 수여식에서 “이미 상당한 핵무기가 벨라루스로 반입됐기 때문에 그것을 보호하고 있고 보호할 것”이라면서 “러시아인들과 벨라루스인들이 함께 (핵무기를) 경비하고 있다. 바그너는 어떤 핵무기도 경비하지 않을 것”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의 핵무기가 외국에 배치되는 건 옛 소련 붕괴 이후 해외 배치 핵무기의 자국 내 이전이 완료된 1996년 이후 27년 만이다.

서방에선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이 새로운 위험의 시작임을 예고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프리고진 때문에 벨라루스가 불안정해지고 우크라이나에 위협이 되며 유럽 전체에도 문제가 된다”고 분석했다. 해외로 망명한 벨라루스 야당 지도자 스베틀라나 티하노브스카야는 “벨라루스 국민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프리고진이 범죄자들을 데려와 폭력을 일상화할 것이다. 벨라루스의 안정을 해치고 국경도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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