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 18분만에 집도…한숨 돌린 의사는 두번째 수술방 향했다

유주연 기자(avril419@mk.co.kr), 심희진 기자(edge@mk.co.kr) 2023. 6. 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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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서울병원 응급수술실 르포

◆ 무너지는 필수의료 ◆

지난 20일 오전 이대서울병원 산하 대동맥혈관병원 수술실에서 송석원 심장혈관외과 교수(왼쪽 셋째)가 20명가량의 의료진과 함께 김포뉴고려병원에서 전원한 70대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복부 대동맥 치환술을 실시하고 있다. 이대서울병원

지난 20일 오전 8시 31분.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에 긴급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경기 김포의 뉴고려병원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다는 것. 환자는 70세 남성으로 이날 새벽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며 뉴고려병원을 찾았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보니 복부 대동맥류 파열이 의심돼 급히 종합병원으로 전원을 의뢰한 것이다. 대동맥류 파열은 늘어난 대동맥 혈관 벽이 터져서 생기는 초응급질환이다. 이날 이대서울병원에선 이미 오전 8시에 송석원 심장혈관외과 교수(50) 집도로 흉복부 대동맥류 수술이 시작된 상황. 송 교수는 즉석에서 수술방을 추가로 열고 응급수술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대서울병원의 '익스프레스 패스트트랙 시스템'에는 이런 식으로 하루 평균 2~3건의 응급환자 요청 메시지가 뜬다. 외부에서 대동맥 환자가 발생하면 의료진에게 문자가 전송돼 환자 도착 전 수술 정보를 공유하고 도착 즉시 수술장으로 이동하는 시스템이다.

오전 8시 56분 뉴고려병원에서 119구급차로 출발한 환자가 이대서울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27분. 그 사이 CT 결과를 비롯한 의료 정보가 전달돼 급하게 수술팀이 꾸려졌다. 송 교수를 비롯해 마취과 교수와 간호사 등 약 20명의 추가 수술팀이 급박하게 움직였다. 환자는 도착 즉시 3층 수술실로 옮겨졌으며 마취 후 수술에 들어간 시간은 오전 9시 45분. 수술실에 동행한 류상완 심장혈관외과 교수(53)는 "환자의 복부 대동맥이 터져 아주 위급한 상태"라며 "시간과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수술 초반에는 출혈이 심해지며 환자 혈압이 순간적으로 70/40mmHg까지 떨어졌다. 혈압이 떨어졌다 정상으로 올라오기를 수차례 반복할 때마다 수술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 10시 17분. 장기 아래쪽에 눌린 복부 대동맥 파열 부위를 찾아 인공혈관을 잇고 봉합에 들어갔다. 수술은 10시 52분께 무사히 마무리됐다.

응급수술이 마무리되자마자 송 교수는 숨 돌릴 틈 없이 맞은편 수술방으로 돌아가 원래 예정됐던 흉복부 대동맥류 수술을 이어갔다. 이 환자는 71세 남성. 대동맥이 흉부와 복부에 걸쳐 늘어나 있어 흉부에서 복부까지 전체를 열고 들어가는 상당한 고난도 수술이다. 보통 수술에 8시간이나 소요된다.

문제는 전국에 이 정도 난도의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많지 않다는 것. 류 교수는 "환자 배를 직접 열어본 의사가 많지 않은 게 한국 의료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렵고 힘든 진료과는 피하는 추세이다 보니 전국적으로 대동맥, 뇌혈관, 간담췌외과 등 고난도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거의 없다"며 "한국 필수의료 위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대동맥 박리로 야간에도 응급수술이 가능한 곳은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이대서울병원 등 서너 곳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서울병원은 최근 대동맥 수술 권위자 송석원 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를 영입해 대동맥 혈관 치료를 전담하는 이대대동맥혈관병원을 열었다. 이대서울병원은 심장혈관외과 전공의가 없어 100% 교수들이 365일 당직을 돌아가며 선다. 현재 류 교수를 비롯해 교수 4명이 당직 순번을 돈다. 류 교수는 "과 특성상 응급환자가 많아 당직이 아니어도 당직 같은 생활이 이어지고 있다"며 "보통 점심은 거의 못 먹고, 24시간 혹은 38시간 물만 마실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1년 전문의를 딴 이후 20여 년간 이런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술이 끝나도 고비가 이어지기 때문에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다. 류 교수는 "일주일 밤샘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당직은 의료행위가 아니어서 수가 자체가 없다. 의료행위를 해야 수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수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보니 병원마다 자체 예산으로 시간당 일정 금액을 당직 의사에게 지급하는 식으로 간신히 필수진료 과목을 운영하는 실정이다.

더 큰 문제는 고령화로 수술 수요는 급증하는 데 비해 가뜩이나 부족한 필수의료과 전문의가 더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이다.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에 따르면 내년 은퇴 예상 전문의(32명)가 신규 배출 전문의(21명)보다 많아진다. 또 최근 5년간(2018~2022년 7월) 흉부외과 전공의 이탈률은 14.1%로 필수의료 진료과목 중 가장 높다. 다른 필수의료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 14개 중 전임의가 근무하는 곳은 분당서울대병원 한 곳뿐이다. 나머지는 전공의 없이 교수가 당직을 선다. 뇌졸중집중치료실에서 24시간 근무해도 전담의 수당으로 지급되는 금액은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2만7730원에 불과하다.

[유주연 기자 /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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