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되는 소아의료 … 동네병원부터 응급실까지 '연쇄인력난'
의사 이탈 → 근무악화 악순환
주말·야간진료 한달만에 포기
의사들 "미용의료 전환 유혹"
◆ 무너지는 필수의료 ◆
지난 16일 찾은 경기 김포아이제일병원 앞에는 '의료진 이탈 및 구인난으로 평일 달빛 진료를 시행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문이 붙어 있었다. 지난 1년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구인난에 시달리다 최근 극적으로 충원에 성공한 이 병원은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지정하는 달빛어린이병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지정된 지 한 달도 채 안 돼 오후 9시부터 2시간 동안 이뤄지는 달빛 진료를 포기한 것은 간호사의 이탈 때문이었다. 이홍준 김포아이제일병원장은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 전 의료진이 일부 보호자의 폭언 등에 시달리다 결국 소아과를 떠났다"며 "남은 인원이 빈자리를 채우거나 진료 시간을 줄이는 고육책도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으로 근무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달빛 진료를 하지 않더라도 소아청소년과 의사에게 격무는 일상이 된 지 오래다. 40여 개 병상을 운영 중인 이 병원 의사의 일주일 평균 근무 시간은 70시간에 달한다. 공식적인 진료 시간은 40시간 남짓이지만 바이털(Vital)과의 숙명처럼 여겨지는 당직에 '비공식' 근무 시간까지 모두 합하면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난다. 하지만 다른 어린이병원과 비교하면 이곳의 상황은 '매우 좋은' 편이다. 대한아동병원협회가 전국 60개 아동병원 의사의 진료 실태를 조사한 결과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78시간에 달했다. 구인난이 심화함에 따라 당직 횟수가 늘면서 근무 시간도 길어졌다. 과중한 업무는 의료진의 추가 이탈로 이어져 인력난이 심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원장은 "인력 부족이 심각한 지방에서는 주당 100시간을 웃도는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는 의사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소아의료 위기는 수년 전부터 예견돼온 비극이라는 평가다. 저출산으로 진료 수요가 감소하자 의료계에서 소아청소년과는 '비전이 없는 과'라는 인식이 높아진 지 오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환자 수 급감으로 문을 닫는 소아과가 늘었고 전문의 이탈에도 가속이 붙었다. 팬데믹 기간 피부과에서 근무했다는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소아과 줄폐업으로 봉직의(페이닥터) 자리가 없어 잠시 진료 과목을 전환했는데 실제 피부과 개원까지 고민했다"며 "주변에서도 낮은 수가와 보호자의 폭언 등에 지쳐 전공 대신 미용과로 개원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더 큰 문제는 의료업계 위기가 종합·대학병원 응급실로까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갈 곳을 잃은 소아환자가 응급실로 몰리면서 소아 응급의료 체계 붕괴로 이어지는 형태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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