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 제정 25년…“‘중간착취의 나라’에서 파견 규제 완화라니”

김지환 기자 2023. 6. 2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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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갑질 119와 비정규직 이제그만이 28일 서울 중구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파견법 제정 25주년을 맞아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저는 2008년부터 지금까지 현대자동차 2차 하청노동자로 물류 업무를 하고 있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1차, 2차 하청이라는 개념이 뭔지 몰랐다. 업무방식과 구조 모든 것이 동일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에 가입하고 불법파견 해결을 위해 투쟁과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병행했다. 1·2심에서 승소했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2차 하청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파기환송을 했다. 손바닥 뒤집히듯 뒤집힌 결과에 정말 황당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

다음 달 1일 파견법(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25년이 된다. 기업들은 사내하청, 용역 등의 이름으로 불법파견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원청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와 ‘비정규직 이제그만’은 28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파견법 제정 25주년을 앞두고 ‘대한민국 중간착취 왕국’ 기자회견을 열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강화하는 노조법 2조 개정안 통과, 상시·지속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 금지 등을 요구했다.

현장증언에 나선 병원 보안경비 노동자(용역업체 소속) A씨는 원청인 병원으로부터 보안경비뿐 아니라 환자 이송 업무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용역업체 소속 노동자가 원청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점을 노린 것이다. A씨는 형식적으로는 용역업체 소속이지만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고 일을 했기 때문에 불법파견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A씨는 “갑을관계로 인해 관행적으로 업무를 떠맡는 경우가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김현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진정을 제기한 지 19년 만에 현대차가 벌금 3000만원을 내야 한다는 울산지법 판결이 지난 5월 나왔다”며 “이 솜방망이 처벌은 불법파견을 계속하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이어 “법원이 시간을 끄는 동안 현대차는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를 부품사와 현대차 사이에 끼워놓고 다단계 하청구조를 만들었다. 2·3차 하청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무관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이환태 현대제철 당진 비정규직지회 법규부장은 원청이 2021년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하급심에서 승소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자회사를 통해 고용한 ‘꼼수’를 지적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고 원청에 비해 임금 등 노동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자회사에서 일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환태 법규부장은 “현대제철에 이어 현대모비스도 자회사를 추진했다”며 “원청은 자회사도 정규직이라고 떠들지만 비정규직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현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이 28일 서울 정동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열린 파견법 제정 25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다단계 하청 구조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직장갑질119 제공

직장갑질119는 더불어민주당 김영진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파견법 위반 유형별 진정 현황’도 공개했다. 현황을 보면 지난해 파견법 위반 진정사건 401건 중 파견법 5조와 7조 위반인 ‘불법파견’(파견금지업종 파견 및 무허가 파견)이 232건으로 57.9%를 차지했다. 파견금지업종 파견 및 무허가 파견이 현장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뜻이다.

파견법 위반 처리 결과에서 제일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정완료에 의한 행정종결’이다. 지난해 기준 행정종결은 48.6%로 절반에 육박했고, 파견법 위반으로 사건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은 50건(12.5%)에 불과했다. 불법파견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파견법 위반 사건 10건 중 88%는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직장갑질119는 “파견근로자보호법은 비정규직 양산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파견 허용 업종을 더 늘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상시·지속 업무에 대해선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하는 법·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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